포르노가 전달하는 남자에 관한 메시지는 훨씬 단순하다. 포르노 속 남자는 영혼도, 감정도, 도덕 관념도 없이 발기한 음경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 유지 체계로,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여자를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 (42쪽)
이 세계에서 남자는 낭만적인 저녁 식사나, 바닐라 섹스, 성교 후 애정 표현의 수고를 덜고 곧장 '박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 포르노에서 섹스는 남자를 강력하게, 여자는 무력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남자는 여자가 남자의 성적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지 보게 된다.(155쪽)
포르노가 보여주는 세계 속에서 남자는 영혼도, 감정도, 도덕 관념도 없이 발기한 음경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 유지 체계이다. 남자라는 존재가 음경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포르노 세계에서 여자는 음경이 드나드는 구멍으로 수렴한다. 존재의 목적과 이유가 한 가지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명령 없이도 수단으로서만 나를 대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정확히는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 나를 목적으로 대하는 사람, 존재 자체로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사랑에 빠진 사람 사이의 긴장감은 꼭 성적인 부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기의 접촉이라는 지극히 좁은 의미의 성적 접촉이 아니더라도 성적인 긴장감(sexual tense), 그 자체는 사랑에 빠진 사람을 전능하게 만드는 동시에 무력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취약하고(vulnerable) 무력하다(powerless). 그 상대편이 강건하고(invulnerable) 힘을 가지는(powerful) 것에 비례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초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외모, 비슷한 나이, 비슷한 조건, 비슷한 환경의 사람이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없는 이유이다. 죽음과 소멸이 두려운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닮은 사람, 그와 비슷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내가 원하는 바로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르노 세계에서는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서의 ‘너’가 필요하지 않다. 발기한 음경에게 필요한 것은 사정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구멍일 뿐이고, 그 구멍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 구멍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 대체가능하다.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음경을 가진 자만이 힘을 가질 수 있고, 그래서 남자만이 힘을 가진 존재로서 기능한다. 포르노 세계의 일이다.
포르노가 유포하는 여성에 관한 메시지는 몇 가지 핵심적인 특성으로 수렴된다. 여자는 언제나 섹스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남자가 원한다면 그 행위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굴욕적이고, 해롭더라도 뭐든 하려고 안달 나 있다. (41쪽)
포르노 세계에서는 여성이 섹스에 언제나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강조한다. 적은 돈으로도 여성은 쉽사리 성관계에 응하며, 폭력적이고 몸과 정신을 학대하며 모욕과 멸시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거부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여성이 그런 과정을 즐기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건 여성이 ‘원래’ 그런 성관계를 좋아하고, 그런 관계에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묘사한다. 강압적인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지독하게 폭력적인 순간에서조차 여성의 ‘동의’를 갈구하는 그 심정의 가장 밑바닥에는 도대체 어떤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괴롭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희망을 품게 해주고 환하게 웃게 해주는 인간의 이면에 이런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이 그렇다. 그 다른 한쪽 면에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 너처럼 근사한 사람을 만나서 너무 좋아, 라고 말하는 순간의 따뜻함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힘들게 책장을 넘긴다.
고군분투하고 있을, 이 책을 읽고 계신 모든 알라딘 이웃님들에게 화이팅을 전한다.
읽기 힘들죠ㅠㅠ 저도 그래요ㅠㅠ 우리 다 같이 힘내요!!
포르노 배우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용자들이 세운 여자와 포르노에 대한 판타지는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며, 이들은 어쩌면 그 여자들이 ‘떡치는 인형‘이 아니라 진짜 감정과 기분을 느끼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할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이용자들은 자기가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여자의 이미지를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성적으로 잔인하거나 가학적인 성향이 없는 남자라면 자기가 그런 인간이라는 점을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을 테니, 이들은 열띤 노력을기울여 ‘야동녀‘들이 자기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대다수 여자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판타지를 붙들어야 한다. - P161
우리의 주장은, 포르노 이미지가 총체적으로 작용할 때, 최소 여자에게 적대적이고 최악의 경우 여자의 신체와 정서 건강에 매우 위험한 세계를 구축한다는 논리다. 편협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반포르노 페미니스트의 연구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한 상징적인 기사에서, 대니얼 버나디 Daniel Bernardi는 앤드리아 드워킨Andrea Dworkin과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이 "포르노는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 P191
흑인 민권운동이 미디어에서 꾸준히 토해내는 인종차별적 메시지 -영화 「국가의 탄생 Birth of a Nation」에서부터 돈 아이머스Don Imus까지를꾸준히 반대해 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집단이라면 누구나, 미디어 이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사실, 즉 미디어 이미지가 억압당하는 집단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안다. 이 이미지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집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의 더 광범위한 체계 안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가진 권력은 대개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묵인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나온다. - P194
그러나 원나잇 섹스에 성공한다 해도 그 나름의 불만이 생기는데, 이는 그들이 기대해 왔던 자극적인 포르노 섹스와 실제 섹스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포르노가 젊고 영향받기 쉬운 남자 대다수에게 거의 유일한 성교육의 창구가 되어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가 보고 자위해 왔던 섹스, 즉 상대의 구멍 여러 개에 깊이, 격하게 삽입하는 행위가 끝도없이 이어지며,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그런 섹스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는다. 이러한 섹스가 가능한 수준의 발기는 예상보다 유지하기가 힘든데, 이들의 음경은 포르노 속 비아그라로 강화된 음경과는 달리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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