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책읽기 모임의 책이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한글책을 먼저 읽고 원문을 같이 읽는데 (정확히는, 책 두 권을 나란히 두고 단어를 맞춰보는데), 이 책은 저절로 책장이 넘겨져 이 문단까지 오게 됐다.
그녀는 글을 쓴다. 온갖 색깔의 노트에다, 온갖 피로 만들어진 잉크로, 글은 밤에 쓰는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 장을 보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의 학과 공부를 돌봐준 뒤이다. 그녀는 저녁상을 치운 뒤 같은 식탁에서 글을 쓴다. 밤늦도록 언어 속에 머무른다. 아이가 깜박 잠이 들거나 놀이에 빠진 사이, 그녀가 먹이는 이들이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순간에 글을 쓴다. 이제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녀 자신이 되어 있는 순간 그녀는 홀로 종이 앞에 앉는다. 영원 앞에 나와 앉은 가난한 여자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얼어붙은 그들의 집에서 그렇게 글을 쓴다. 그들의 은밀한 삶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렇게 쓴 글들은 대부분 출간되지 않는다. (83쪽)
읽는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혹은 대단하지 않은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읽는 일이 즐겁고, 내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다. 읽고, 다른 세상을 만나고, 똑똑하고 혹은 멍청한 저자를 만나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 그 세상 속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울 뿐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쓰는 일은 다르다. 근사한 작업실에서 멋진 노트북을 펼쳐놓고 쓰는 삶이 아니라, 그냥 쓴다는 것. 쓰는 일 자체가 던져주는 두려움이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자판 위에 글씨가 새겨지고 그리고 지워질 때, 내가 모르는 내가 튀어나올 때 얼만큼 후련하고 딱 그만큼 두렵다.
이 문단을 읽으면서는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큰아이 낮잠 시간에 나란히 누워 끄적였던 나의 쓰기를, 고양이를 벗으로 삼아 외로움을 이겨냈던 친구의 하염없는 쓰기를, 아이를 재워야 비로소 쓸 수 있다는 젊은 엄마의 쓰기를. 출간되지 않겠지만 멈춰지지 않는 외로운 쓰기를 떠올려본다. 쓰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을, 혼자가 된 뒤에야 쓸 수 있는 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보뱅을, 보뱅을 더 많이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