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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오후 4시 37분.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종료의 한숨도 기쁨의 함성도 들리지 않는 어느 고등학교 교문 앞, 학부모들은 시간을 확인하고 조용히 자신의 아이를 기다린다. 30분이 지나서야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내려온다. 크게 소리 내 웃으며 내려오는 아이, 땅바닥만 쳐다보며 내려오는 아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내려오는 아이.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까맣고 하얀 점퍼의 무리 가운데 저 멀리, 내 아이가 보인다.
저자 앤 헬렌 피터슨은 이 책을 통해 부모처럼 살기 싫지만, 부모만큼 되기도 어려운 ‘밀레니얼’ 세대 분석을 시도한다. 물질적 풍요와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자라났지만, 기성 세대에게는 ‘노력하지 않고, 책도 안 읽는 무식한’ 세대로 인식되는 밀레니얼의 노력과 고충을 여러 방면에서 살펴본다. 밀레니얼은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2000년대 중반 밀레니얼 첫 세대가 노동인구로 진입했을 때, 그들은 ‘기대치가 높은데’ 반해 직업에 대한 ‘충성도’가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온실 속 화초 같다고, 열심히 일하지 않고 ‘누리려고만’ 한다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전 세계적 경제 침체의 한복판에서 일자리 감소와 고용 불안, 학자금 부채 상환을 위해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베이비 부머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완벽하게 무지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교육받은 대로, 부모의 가르침대로, 사회가 강요한 대로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에게 제시된 성공의 모델에 부합하고자 밤낮으로 애쓰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들은 번아웃을 경험한다. 저자는 이것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진단한다.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신의 힘으로 3루에 도달했다고 믿는 베이비 부머 세대들과는 달리, 밀레니얼에게는 타석에 들어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산층 재생산을 위한 가장 쉽고 확실한 투자는 자녀의 집중 양육과 대학 진학이라고 여겨졌다. 부모의 간섭 없이 친구들과 함께 탐험의 오후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은 이제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해야 했다. 보호와 감시의 모호한 경계를 넘어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특별히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에 유리한 교내외 활동만 권장되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 시간에 맞춰 비행 스케줄이 조정되고, 공공기관과 초등학교의 등교 시간마저 조정되는 한국에서 당연시되는 ‘명문대 환상’은 미국과도 비슷한데, 문제는 명문대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명문대 진학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하나,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턴이라는 이름 아래 무급 노동을 조장하면서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거라는 거짓 희망을 내비치고, 발전을 위한 비용을 회사가 아닌 개인이 부담하게 하고, 다운사이징을 통해 해고를 쉽게 만들고,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원의 수를 축소하고, 고용 안전성을 파괴하고, 도급 계약을 통해 하청 인력의 비율을 늘리고, 규제 완화와 반노조 입법을 강행하는 거대 기업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뿐이다. 비용 절감을 위한 기업의 기민한 노력은 소수의 사람에게 거대한 이익을 돌려주고,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고민하는 밀레니얼은 ‘더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게 된다. 밀레니얼,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저자는 말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과도한 거짓 술수에, 성과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에, 이제는 다른 답을 내주어야만 한다고. 돈을 숭상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급진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업무 역량이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음을 말해야 한다고. 미친 경쟁의 허들 하나를 이제 막 뛰어넘은 내 아이에게도, 변화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온 밀레니얼 ‘요즘 애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 점수와 역량과 성과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이 순간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가치 있다. 충분히, 넘치도록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