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에게 성경 읽기는 매년 ‘올해의 계획’ 중 첫 번째인데, 나도 물론 계획을 많이 세우기는 했지만, 항상 실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 애궃은 <창세기>만 열심히 읽다가 보통은 <레위기>에서 절망하곤 했다. 대학교 다닐 때 성경을 1년에 한 번씩 읽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비법이 새삼 간단했다. 보통 신자들은 각양각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예쁘게 색칠된(?) 손때 묻은 오래된 성경책을 자랑스러워하는데 반해, 그분은 매년 새로운 성경을 구입하신다고 했다. 비싼 거, 예쁜 거, 좋은 거 말고. 찬송가, 해설, 주석 달린 거 말고. 그냥 딱 성경만 있는 얇은 성경책을 새로 구입해서 매년 연초마다 새 성경으로 읽기를 시작하신다고 했다. 작년에 읽었던 그 말씀이 올해는 새롭게 읽히고, 작년에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구절을 발견하는 기쁨이 1년에 1번 읽기의 동력이 되어준다 하셨다. 비법을 전수받았으나 실천은 요원했다. 나 나름의 실천이라면, 그 후로 새 성경을 많이 사기는 했다.
프랑스어 책읽기 친구들과 『제2의 성』을 읽고 있다. 나는 전에 한 번 읽은 터여서 ‘깍두기’ 형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다시 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꺼내놓은 책도 예전보다 더 무거운 것 같고, 밑줄과 인덱스가 너무 많아서 (실제와 사뭇 다르게) 이 책을 이미 샅샅이 이해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제2의 성』 을유판. 내 돈 안 내고 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공짜 좋아하는 편), 내게 그런 좋은 기회는 오지 않았고, 마침 친구가 생일에 선물해준 상품권이 있어, 이 책이야말로 생일선물로 ‘기념’할 만하다 싶어 구매했다. 오른쪽의 김초엽 소설은 동네서점에서 샀고, 『The Queen’s Gambit』 구입해야 휴대가 편한 장바구니(네이비 선택) 준다 해서 구매했다. 나란히 책들을 세워 사진을 찍고 비닐 커버를 벗기고 스스르 책장을 넘겨 냄새를 맡아보니. 아, 너무 좋다.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이 예쁘고 좋은 책을 내 책으로 할 수 있어서, 새 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내가 행복해하는 걸, 내가 알아서.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어서, 어젯밤에는 많이 행복했다.
저번 주에는 도서관에서 나오다가 1층 어린이실에 투명 액자 속 인형이 보였다. 가까이 걸어가면서 ‘아, 정말 비슷하게 잘 만들었네. 백희나 작가 작품하고 진짜 비슷하다’하고 생각했는데, 밑에 설명을 보니 전국에 3개뿐인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란다. 사진을 찍고 집으로 가던 길에,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님과 카톡을 하게 되어 ‘방금 백희나 작가 작품 보고 왔어요’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애하는 이웃님이 ‘나 백희나 작가 좋아하는데, 여러 각도로 사진 좀 찍어줘요. 사진 찍어서 페이퍼 써줘요’ 하시는 거다. 아! 나는 너무 놀랐는데, 나도 백희나 작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의 그 귀한 작품을 보고서도 그걸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여러 각도라니... 입체의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을 단면으로 이해하는 나는, 정면 사진만 6장을 찍었던 것. 크게 작게, 멀리 가까이. 추석 준비하는 의미로, 어제 상호대차 도서 빌리러 가서는 백희나 작가 작품을 이렇게 앞, 뒤, 옆모습을 찍어 보았다. 여러 각도로.
입체의 세상 속에서 입체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좋아하는 작가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줄 아는, 이제 추석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마음 준비를 위해 이 시간에도 독서에 매진하고 있을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님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