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만이 진정한 백인이라고 믿었던 앵글로 색슨은 독일계 이민자조차도 순수한 백인이 아니라고 믿었다. 작은 키, 가무잡잡한 피부의 이탈리아인들에게 부여된 명칭은 백인 검둥이였다. 유럽 역사에서 오랫동안 멸시의 대상이었던 유대인 역시 검은 동양인’, ‘하얀 검둥이로 불렸다. 백인의 범위를 최대한 제한하고 싶었을 때, 그들은 흑인을 멸시하기 위해 사용하던 단어로 그들을 불렀고, 그렇게 아일랜드 이민자, 동남부 유럽 이민자, 유대인은 백인이 아닌 비백인으로 규정되었다.

 

백인 계약노동자, 백인 자유민, 흑인 노예, 흑인 자유민이 공존했던 초기 버지니아주에서 노예와 피부색과의 연관성이 제조된 것은 베이컨 반란때문이다. 영국의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가 식민 정부의 억압적이고 엄격한 법률에 항거하면서 공동행동에 나서자, 농장주들은 영국계 노동자와 아프리카계 노동자의 교란을 시도한다. 유럽계 계약하인의 신분을 격상하고 참정권 요건, 세금, 토지 및 가옥 소유, 고용 상태 등 다른 관련 요건들을 대폭 완화함으로써 영국계 노동자가 자치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202) 진심으로 원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백인 중의 백인은 백인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흑백의 단결을 교란했다.

 

 

앵글로 색슨이 다른 백인들을 멸시할 때 사용하던 명칭은 대부분 흑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흑인에 대한 편견은 지속적으로 가공되었는데, 모험담, 여행기 등의 극히 사적이고 불확실한 자료를 통해 얻은 정보에 기반해 계몽 철학자들은 인종주의적 견해를 거부감 없이 가지게 되었다. “검둥이는 열등하며, 이성적 사유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볼테르다.(175) 흑인의 열등성의 근거는 동물성이다. 흑인은 백인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주장인데, 그러한 흑인의 동물성은 성 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다.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말이다.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가부장제의 신화』, 138)  

 















자본주의로의 이행에서 젠더관계를 이념적으로 재정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였던 여성 논쟁에서는 두 개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 첫째로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를 극대화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형을 더욱 명확하게 구분 지은 새로운 문화적 규준이 구축되었다. 둘째로 여성은 과도하게 감정적이고 욕망이 넘치며 자기통제능력이 부족한 만큼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남성의 통제 아래에 놓여야 한다는 명제가 확립되었다. (『캘리번과 마녀』, 164)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는 동일한 집단내에서 여성을 노예화한 경험을 통해 남성들은 타민족의 여성을 노예화하고 이후 타민족의 남성까지 노예화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노예화 과정에서는 그들우리다르다는 설정이 중요하다. 당연하게도 여성을 노예화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가 대량 생산되었으며, 이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통념으로 자리잡았다. 고대신화에서부터 시작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사유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며, 감정적이고, 동물적이다라고 결론지어졌다.


백인 중의 백인은 흑백단결을 교란시키기 위해 비백인 남성’이라고 멸시했던 일부 남성들백인으로 받아들였다. 백인 남성들은 백인여성들의 참정권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흑인 남성에게까지 인간의 범주를 확장했다. 이제 ‘열등하고, 감정적이며, 동물적"이라고 설명되고 이해되는 범주는 오직 하나, 여성 뿐이다.   

 


차별은 심한데 인식이 낮은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다. 남성의 자연스런 일상이 여성에게는 황당, 모욕, 차별, 생명 위협이다. 남성은 자신의 행동에 대응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행복권 침해’로 생각하고 증오와 피해의식을 갖기 쉽다. 얼마 전 남자 동창이 여성의 고시 합격률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기에, “너는 오바마가 목화 농장에서 일하지 않는 게 불만이겠구나,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네가 안 변한 거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나는 ‘가해자’가 되었다. 인권, 평등, 사회의식 전반에 있어서 남성들의 문화 지체 현상은 ‘국가경쟁력’은 물론 개인 차원에서도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저출산(비혼 여성 증가)이 대표적 결과다. (원문보기: 한겨레신문, 2016 5 27, <정희진의 어떤 메모>,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45775.html#csidx159172e47423ffc959669f118a52949)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찾아보고 확인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꺼낸 김에 정희진 선생님 책을 두 세 쪽 넘겨본다. , 선생님이 이미 다 써 놓으신 것을, 이미 다 정리해 놓으신 것을. 다시 할 수 있는 건, 읽는 일. 새 책도 나온 김에. 외출도 못하는 김에 읽어야겠다. 읽어봐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1-24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4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11-2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고
하니 당장, 달려가 빌려다 보고
싶어지네요.

흑인 남성까지도 아우르는 미국
사회의 여성 포위망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남자 흑인 대통령은 되도, 여자
대통령은 안된다는 프로파간다가
몬스터 탄생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네요.

단발머리 2020-11-24 19:45   좋아요 0 | URL
저자가 미국 박사이신데요. 생활밀착형 표현이 좀 많습니다. 뭐랄까요, 약간 뻔하면서도 식상한 표현이 자주 눈에 띄는데 ‘백인성‘에 대한 연구가 촘촘해서 제가 리뷰에서 그 이야기는 안 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남자 흑인 대통령은 되도 여자 대통령은 안 된다는 프로파간다, 레삭매냐님이 지적하신 그 점 때문에 힐러리가, 그 똑똑한 힐러리가 트럼프에게 졌다고, 강준만 교수님도 그러시대요. 동네 도서관이 휴관없이 안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