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쪽에 빛나는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을 읽는다.
열 가지 범주의 페미니즘이 형성된 시대적 맥락과 그 안에서 싸웠던 실천가들의 고민을 생생하게 그려낸(알라딘 책소개) 이 책은, 다락방님 표현대로 ‘페미니즘의 참고서’라 불릴 만하다.
첫번째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다.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그리고 제3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중심은 정치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법적인 평등이며, 그 핵심은 여성 참정권 획득이다. 첫번째 물결 시기 동안 노예 제도 폐지 운동과 연결되어 있었던 여성 권리 운동은 남북전쟁의 발발로 여성들은 ‘잠시’ 뒤로 미뤄질 것을 요청받는다. 마지못해 응한 여성들은 남북전쟁이 끝나도 여성 해방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1890년부터 미국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된 1920년까지 전미여성참정권협회는 거의 모든 활동을 여성의 투표권을 획득하는 일에 국한했다. 기진맥진해진 대부분의 참정권론자들은 52년간의 집중된 투쟁으로 획득한 승리감에 젖어 단지 투표권을 획득함으로써 실제로 남성과 동등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기로 결심했다. (35쪽)
너무 많은 힘 혹은 가지고 있는 힘 전부를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했을 때의 한계와 아쉬움은 여성운동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읽었던 거의 페미니즘 도서 대부분은 『여성성의 신화』를 소개하자마자, 그의 한계에 대해서 비판하기 바쁜데, 그렇게 하지 않은 책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부르주아, 이성애자, 고학력 백인 여성의 관점 이외에 다른 견해에 대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수긍하지만, 한꺼번에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억압과 멸시는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나타났던 것이 아니다. 경제 체제, 사회 제도, 관습과 문화의 이름으로 여성은 억압받고 통제되어 왔다. ‘벽돌 던지기’가 전체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그 견고한 성채에 작은 틈을 내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통합된 힘이 단일하게 작동되었다는 점에서, 이론적 근거가 되어 준 그의 공로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모먼트라고 기억나는 몇 개의 장면 속에서 『여성성의 신화』 (구판: 『여성의 신비』)는 항상 등장하는 책이다. 개정판이 발간되기 전이었고,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그 책을 찾을 수 없었는데,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도서관, 그것도 그 도서관의 서고에서 헌책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와 첫 장을 펼쳤을 때의 감정이 지금도 또렷하다.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한가한 전업주부들의 넋두림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걸 안다. 남성 뿐 아니라 여성중에서도 말이다. 최근에 전업맘이며 워킹맘인 여성이 오마이뉴스에 (현재) 전업주부 삶에서의 애로사항에 대해 무겁지 않은 기사를 썼는데, 직장맘들의 조롱에 가득 찬 댓글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글을 오늘 아침에 읽었다. 워킹맘은 전업맘을 미워하고, 전업맘은 워킹맘을 따돌리는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여성간의 끈끈한 연대일 것이나, 계급, 인종, 성적취향 등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는 여성들을 어떻게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그게 가능한가. 폭발적이고 혁명적인 단일 대오가 아니고서 여성 혐오의 이 오랜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는가. 그게 가능할 것인가.
2장을 읽기 시작한다. 답을 찾기 위해,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그 답을 확인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