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면서, 그동안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과거의 나를, 참 많이도 혼냈다. 두 번 도전했다가 실패했고, 이번에는 반드시 읽어야만 했기에 완독하기는 했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하지 않았던 컨닝 모드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인류 소설사에서 최고의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등대로』를 꼽겠다’는 폴 오스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의 저자 이택광도 울프 최고의 작품으로 『등대로』를 골랐다. TED-ED 동영상 <Why should you read Virginia Woolf>에서는 『올랜도』를 젠더 연구에서 의미있는 작품으로 소개했고, 등장인물 6명의 목소리를 하나에 집어 넣은 집단의식의 실험이 『파도』였다고 평가한다. 『파도』라고 한다면 이전에 수연님 서재에서 봤던 사진이 떠오른다. 『파도』를 읽는 나탈리 포트만.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배우라니. 정말 근사하다.
“매일같이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등대로』를 쓰고 난 다음에, 나는 그들을 내 마음 속에 묻어 버렸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선언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가 되살아나게 될지,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적어도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를 쓴 이후 과거의 일부분에서 자유를 얻은 듯 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매여 있지 않게 되었다. 비로소 해방되었다. 나도 『등대로』를 읽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3기니, 등대로, 파도 그리고 올랜도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클러리서와 셉티머스는 소설 속에서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블(double)로서(역자해설, 264쪽),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나왔다. 쓸데없는 일에 둘러싸여 사그러지는 삶에 대해 죽음으로 도전한 셉티머스와 부모가 쥐어 준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라 여기는 클러리서의 독백은 모두 버지니아 울프의 속마음이다.(247쪽) 클러리서는 인생이라는 파티에서 조금 더 주인공으로 지내기 위해 두려움을 참아냈고, 셉티머스는 팔을 벌려 다가오는 죽음을 껴안았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클러리서가 이겼다. 클러리서의 울프가 셉티머스의 울프를 이겼다.
‘의식의 흐름 기법’은 사건과 사건 중심의 해석을 포기하는 순간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우리의 생각은 이런 방식으로 펼쳐진다. 거실을 청소할 때, 진공청소기에 흡입되는 먼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를 안 했네. 제습제 남은 거는 어디에 넣어야 되지? 점심에 뭐 먹을까. 택배가 오늘 온다고 했는데, 왜 배송출발 카톡이 안 오지? ‘의식의 흐름’이 “내적 독백”이나 “무의식적 기억”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집 꼭대기 층에 있는 그녀의 침실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이야기했다.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이 세상을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사유 재산을 폐지하는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었다. 비록 보내지는 않았지만 실지로 편지를 썼다. 물론 그것은 샐리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녀 또한 똑같이 흥분했다. 아침식사 전에 침대에 누워 플라톤을 읽었고, 모리스를 읽었으며, 몇 시간이고 쉘리를 읽었다. (50쪽)
젊은 클러리서는 자신과 샐리 시튼과의 관계를 나중에야 깨닫는다. 결국 그게 사랑이 아니었던가? 아침에는 플라톤을, 모리스를 그리고 오랫동안 쉘리를 읽는 것. 함께 읽는 것.
아침에는 버지니아 울프를, 로즈마리 퍼트넘 통을, 저녁에는 박영숙을 읽는다. 오늘은 혼자. 혼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