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상, 저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다니던 『오리엔탈리즘』은 어제 책장에 꽂혔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해서 구입한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도대체 나는, 구입한 책을 읽지 못 한다. 정해진 기한 내에 읽어야만 하는 도서관 책들의 뒤를 쫓아다니다 보면 내 책, 내가 구입한 책은 언제나 뒷전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기대와 환희 속에 시작했던 그 훌륭한 책은 결국 책장에 꽂히고 말았다.

 

쉽게 구입이 어려운 두꺼운 책을 몇 권 사보자 고민하다가비평이론의 모든 것』을 구매했다. 필요할 때마다 찾아볼 수 있는 책이겠다 싶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같이 구입하려다  마지막 클릭에서 탈락해 다음을 기약했는데, 페이퍼를 6개나 썼다는 걸 알게 됐다. 책 내용은 거의 없고 대출했다, 반납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 뿐이다. 오늘밤부터 내일까지는 에드워드 만나기로 해서 어제, 오늘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읽는다. 조금 더 읽어본 후에 구입하려고 한다. 구입이 두렵다. 나는 구입하면 읽지 않는 사람이니까.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자유를 부제로 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낸시 홈스트롬이 성, 섹슈얼리티, 가족, 임금노동, 경제학, 정치, 자연에 관한 전문가들의 글을 엮어 만든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로 2012년 출간되었다가 2019년 새 제목, 새 표지로 다시 나왔다.   


 

제일 먼저 읽은 글은 『캐롤라이나의 사생아』의 도로시 앨리슨이 쓴 <계급의 문제>이다.

 

 

공개적인 혐오와 공격의 대상이 되고, 개인적인 관심사보다 더 고귀하고 중요한 대의를 위해 내 욕망이나 애인, 가족은 뒷전으로 밀어두어야 한다는 것도 예상했다. 동시에 여성이자 레즈비언으로서 나의 욕망, 나의 섹슈얼리티, 나의 욕구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매순간 개인적인 정치혁명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보육시설 마루를 닦을 때든, 대학에 여성학 연속강좌를 개설하기 위한 새로운 예산을 짤 때든, 지역 페미니즘 잡지를 편집할 때든, 여성을 위한 서점을 열 때든, 언제든 간에. 나는 늘 지쳐 있었고, 의료보험 따위는 있을 리가 없었고, 돈 한 푼 못 받으면서 따분한 일을 했다. (95)

 

 

페미니즘이라는 질문과 해답을 앞에 두고 유능하고 헌신적인 혁명가로 살기 원했던 도로시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겨야 했던 건 그녀의 계급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자들은 감옥에, 여자들은 출산의 감옥에 갇히는 걸 보고 자랐고, 지독한 가난을 당연시했다. 진보적이고 깨어있는 페미니즘 공동체 속에 살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계급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성적 취향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나와 그들 중, 항상 그들이어서 경멸의 대상이 되는 데에 익숙했던 그녀가, 분노와 슬픔을 시와 소설로 풀어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더 이상 스스로를 숨기지 않기로 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로 했다.

 


 

<생존의 이야기 : 계급, 인종, 가정폭력>은 포틀랜드 주립대학 명예교수인 재니스 하켄의 글이다. 그는 베스 리치의 주장을 인용해 젠더 폭력이 인종, 계급적으로 중립적이라는 가정 때문에 저소득층 여성과 유색인 여성이 지배적인 관점에서 삭제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211) 봉건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가부장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남성 폭력은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억압 등의 기본 원형이다.(213) 최근의 페미니즘 담론에서는 남성 폭력과 관련해 남성의 권력 동기에 중점을 두는데, 저자는 데이비드 레빈슨의 주장을 인용해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노동 집단의 존재는 여성의 유대나 경제적 힘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아내 구타를 제어하거나 예방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220) 여성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필요한 두 개의 요인 중 한 가지가 경제적인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여성혐오적인 내용의 가사에 몸을 흔드는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 오리엔트에 대한 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하고, 젠더, 계급, 인종이 복합적 동인이 되어 소수자의 삶에 작동하는 억압에 대해 생각하고,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경제적 자유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이성애의 이상화에 끌린다. 역사, 사회, 문화, 매스미디어는 이렇게 또 나를 구속한다. 그 유혹에, 나는 너무 쉽게 넘어간다.  

 

 














오늘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에드워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불멸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영원에 대한 기대, 그리고 사랑에 대한 사랑. 주체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사랑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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