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재미있게 잘 읽었다. 분명 무섭지 않은 책이라 들었는데, 빠르게 책장을 넘기면서도 나는 불현듯 무서워져, 아빠의 안내에 따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열 권 넘게 읽었다는 중학생에게 재차 물었다. 너, 진짜 안 무서웠어?
나는 무서웠다. 밤은 자꾸만 깊어가고 범인은 누군지 모르겠어서 잠들기 전에 에라 모르겠다, 결말을 확인해 버렸다. 30퍼센트의 확률로 의심했던 사람이 범인이었다. 그건 상도덕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그렇게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거라고, 히가시노 게이고 팬 2명이 야단 치는 가운데 나만 홀로 고요히 잠에 들었다.
원래 여름 휴가는 매해 가는 편이 아니라 집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정해져 버려 아무데도 가지 못한다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려고 한다. 슴슴한 된장찌게에 참치김치볶음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건조기 속 빨래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나니 12시. 죽는 순간까지 살림에 익숙해지지 않을 테지만, 혹 살림을 못 하는 사람도 집안일을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 아닌가. 집에 살림살이가 적으면 청소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도 같아 새로운 마음으로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해볼까, 샤워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읽고 있는 책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수연님 서재에서 알게 된 책인데 무서운 책이 아닌데도 가슴이 너무 콩콩거려 도대체 빨리 읽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는 내 삶을 바꾸기 시작했고 우리는 동등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의 이혼과 남편의 자살을 함께 겪어냈다. 우리 네 사람은 생존자가 되었고 각자 개별적인 존재로서 강한 유대감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 아이들이 나의 분노와 자책을 견뎌냈으면서도 여전히 나의 사랑과 서로의 사랑을 신뢰한다면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삶은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그 생명력과 유머, 지성, 다정함, 삶을 향한 사랑, 여기저기 흩어져 살지만 내게로 흘러들어오는 개별적인 삶의 흐름이, 내게는 전부 선물 같다. (152쪽)
에이드리언 리치라는 이름은 <분노와 애정>이라는 글을 통해 처음 들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 셋을 낳고 더럽지 않은 바닥을 빗질하며, 나는 여자야, 이제 나는 여자야,라고 속으로 되뇌이던 그가, 시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분노와 한숨, 그리고 여성들의 공통 운명에 맞섰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해 읽는다. 여성성에서 혹은 모성에서 도망쳤고, 도망치고 싶어했으며, 지금도 도망치려 하는 내가, 에이드리언 리치를 읽는다.
나는 생후 2주일 아기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그 느낌이 부러운 것이지 어린아이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의 소동과 빨래방에서 울어대는 아기들과 일고여덟 살 아이들이 엄마에게만 매달려 자신의 짜증을 받아주고 달래주고 삶의 토대가 되어주길 바라는 겨울철의 아파트가 부러운 게 아니다.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