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이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대. 거실 한복판에서 외친다. 엄마, 10번째야. 엄마는 맨날 그 얘기만 해? 아롱이가 말한다. 끊이지 않는 확산의 고리, 확진자 발생과 방역, 건물 폐쇄가 이어진다. 언제쯤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조차 말끝을 흐린다. 우리 모두 내일을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산다. 거리를 스쳐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영화에서나 본듯한 장면. 황사와 미세먼지에 예민해 항상 마스크를 챙겼던 내가, 이제 마스크를 쓴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본다. 이젠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얼굴에 부딪히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없게 된 걸까.
대구 집단 감염으로 신천지가 주목받았을 때, 자료화면으로 집회 장면이 나왔다. 기자가 말한다.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장시간 열광적인 찬양을 하고. 쩜쩜쩜. 내가 그랬다.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장시간 열광적인 찬양을 하고 기도를 했다. 이십여 년 전 일이다. 여름마다 있는 전체 집회에는 전국에서 천 명 이상의 참석자들이 모였다. 일주일을 함께 먹고 자고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씩 집회를 했다. 이젠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식당에서는 반드시 개인 접시를 사용해야 한다. 유흥업소, 노래방, 피씨방 등에서는 곧 QR코드를 활용해 출입자를 체크해야 한다.
오프라인수업 3일차 고딩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기는 온라인 수업이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을 여러가지 이야기하다가 ‘딱 수업에 관한 내용만 들을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말한다. 동석했던 어른은 온라인 수업에도 장점이 있지만, 그게 곧 단점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수업 ‘이외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 수업에 ‘관련된’ 내용만 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덧붙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수업내용 아닌 것에서 배웠던 것, 느꼈던 것, 그리고 기억나는 것에 대해서 이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오프라인수업 3일차 고딩은 그래도 온라인수업이 더 좋다고 마무리한다.
그래, 학교가 싫겠지.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군대처럼 학교도 교도소와 비슷하다. 학생을 학교생활의 주체로 보기보다는 관리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당연히 억압이 존재하고, 억압의 장소에 가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미 ‘학업’이라는 임무는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 담당하고 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이미 학과수업에 대해 선행을 해왔다는 전제하에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그리고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수행평가와 중간, 기말고사의 출제방향과 채점 형식 뿐이다. 이미 사교육이 학업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면, 현재 우리의 삶에서 ‘학교’란 어떤 의미인가. ‘선생님’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란 무엇인가. 친구도 학원에서 사귀는 현실에서 ‘학교’는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 당장 내일의 상황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면, 학교는 도대체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먹물 리조또를 앞에 두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한달 전쯤에 마이페이퍼가 1편인 모르는 사람이 댓글을 남겼다. <미드 영어회화 233>이던가 하는 책에 대한 리뷰를 읽으려고 들어왔는데, 책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 왜 책을 링크했느냐는 항의성 댓글이었다. 여기는 내 공간이라 내 맘대로 꾸려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하여 오늘은 코로나 책을 하나 걸어두려고 하는데, 앞의 이야기 모두 코로나 이야기니 참으로 적합하다 하겠다. 부디 이 연관성을 보라. 한달 전에 관심있게 들었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라는 방송내용이 책으로 편집되어 나왔다.
정관용 : 아까 금융화 설명하시면서도 그런 얘기하셨잖아요. 예측을 못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어떤 액터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야할지 방향을 못 잡겠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 현상이죠?
홍기빈 : 그러면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우리가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에요. 그건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의 미래를 만들고 싶은가라고 하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까라는 그림을 우리 스스로가 결단하고 만들어야 됩니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일: 2020년 4월 20일 월요일)
읽고 싶은 책도 걸어둔다. 여기는 내 방인지라, 그래도 좀 되겠다.
기본소득, 2050 거주불능지구, 불혹의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