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안젤루의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읽는다.

 


외할머니 백스터 부인은 흑인 피가 4분의 1이나 8분의 1 섞인 여자로 어찌 됐든 거의 백인과 다름없었다. … 외할머니는 (막연하게나마 흑인이라고 부를 만한 특징이 없는) 백인 같은 여자였고, 외할아버지는 흑인이었다. (81)

 


얼굴을 몰라 엄마가 그리울 때면 동그란 원 안에 눈, , 입을 그려 넣지 않은 채 엄마를 상상했던 마야는 갑작스레 찾아온 아빠를 따라나서고, 외할머니 백스터 부인의 집에서 엄마를 만난다. 오빠와 자신을 버린 엄마, 세 살과 네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꼬리표를 달아 기차에 태워 보냈던 엄마. 그 엄마를 만난다. 삶을 의문투성이로 만들었던 엄마, 짧은 인생에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계속 묻게 만들었던 엄마를 만난다.

 


곧바로 어머니가 왜 우리를 떠나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이제껏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베일리는 베일리대로 그 즉시 그리고 영원히 어머니를 사랑하게 됐다. (80)   



아름다운 엄마와 달리 마야는 흑인의 특성을 물려받았다. 아빠를 닮아 의심할 필요 없이 흑인이다. 흑인 여자아이다. 엄마는 백인 같은 여자이고, 외할머니는 더 백인 같았다. 백인을 감히 인간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여덟 살 마야의 눈에 엄마는 완벽한 여자였다. 완벽한 여자, 백인 여자. 그건 마야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마야가 속한 마을, 마야가 사는 세상의 말이었다. 더 밝은 피부색의 여자가 더 아름답다. 백인이 흑인보다 더 아름답다.

 

흑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그웬돌린 브룩스는 흑인여성 사이에도 백인성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서 등급을 매기는 위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흑인 페미니즘 사상』, 166). 밝은 피부"의 흑인여성이 더 검은" 피부의 흑인여성보다 모든 상황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 언급된 인종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렇다. 1977년 미국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던 수지 길로리 핍스는 남미로 여행을 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평생 백인인 줄 알았던 자신이 흑인이라고 기재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수지는 주정부에 자신의 인종 구분을 바꿔달라고 청원을 접수한다. 주정부는 계보학자를 고용해 그녀의 가계를 추적하다가 그녀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great-great-great-great grandmother가 마가리타라는 이름의 흑인노예였고, 그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백인 농장주였던 존 그레고리 길로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당시 법으로는 흑인 피가 32분의 1(1/32) 이상이 섞이면 흑인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수지는 재판에서 패소했다. 32분의 29(29/32)에 해당하는 백인 피보다는 32분의 1(1/32)의 흑인 피가 인종 결정에 더 주요한 요소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인종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백인은 백인과 흑인과의 혼혈 물라토를 흑인으로 규정함으로써 백인의 인종적 순수성을 지키려 했고, 노예 숫자를 확보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 백인과 흑인간의 혼혈인을 흑인으로 규정한 것도 백인들이고,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말한 사람들도 백인들이었다. 흑인은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백인은 흑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했다. 이 모든 과정은 종교의 이름으로, 문화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구체화되었지만, 그 정점은 과학이었다. 과학 역시 사회와 문화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단어를 독점함으로써 백인의 논리를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흑인 억압의 최종 수단은 과학이었다. 백인의 과학은 흑인의 열등함을 과학적으로증명할 수 있었다. ‘객관적이라는 단어와 중립적이라는 단어를 마음껏 사용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인이며 백인인 사람, 백인이면서 동시에 흑인인 어떤 사람을 흑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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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야 안젤루의 저 책,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단발머리님 벌써!

단발머리 2020-05-23 14:02   좋아요 0 | URL
지금 반 정도 읽었는데요. 너무 좋으네요. 마야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있어요.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