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가 자신의 여성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107쪽).
‘여성성의 신화’는 가정이라는 구조 안에 어머니, 아내, 주부라는 역할로 여성을 가둔다. 여성에게 자기 완성이란 아름다운 외모와 아름다운 외모의 ‘추구’이며,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강제하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핫한 드라마라고 한다면 역시 <부부의 세계>일텐데, 나는 <부부의 세계>를 보지 않았는데(TV 시청), 본거나 마찬가지다(유튜브). 4화였던 것 같은데 퇴근한 김희애가 남편을 기다리며 다림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에서 김희애는 00병원 부원장이다. 나는 직장 여성이라면 다림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다림질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세탁 후에 어떤 옷은 다림질이 필요하고,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스스로 다림질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림질해야만 한다. 무한 가격 경쟁으로 이전보다는 저렴해진 ㅋㄹㅌㅍㅇ를 이용할 수도 있고, 세탁 비용이 부담되고 오고 가기 귀찮다면 집에서 다림질하면 된다. 내가 할 수도 있는 일이고, 적절한 비용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김희애가 다림질을 하고 있는 설정, 그 그림 자체다.
극중에서 김희애는 00병원 부원장이다. <백래시>, 정확히는 몇 쪽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에 대한 조사 결과, 가장 적게 타격을 입는 직업이 ‘의사’라는 결과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전문적인 직업군 중에서도 가장 전문적인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사’다. 그럼에도, 의사이며 병원에서 신망 받는 부원장인 김희애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다림질을 한다. 물론 드라마 속 그녀가 정말 다림질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자기 말만 하려고 하는 환자들, 행정직원, 동료의사들과의 신경전 등 전쟁의 소용돌이를 마치고 돌아와, 하얀 셔츠를 단 하나의 주름 없이 완벽하게 다림질하노라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재충전의 시간으로… 가 말이 되는가.
의사이며 부원장인 김희애가 다림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의사이며 게다가 부원장이라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림질을 해야한다는 것. 완벽한 워킹맘을 구현하는 김희애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다림질을 해야만 한다는 것. 여성은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여느 평범한 주부와 같이 다림질을 해야한다는 것.
김희애의 다림질을 보면서 느꼈던 짧은 감상이다. 여성성의 신화가 현재까지 되풀이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미디어를 통해 알게 모르게 이런 신화가 우리에게 ‘학습’되고 있다는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