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않을 용기 - 알리스 슈바르처의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모명숙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부제가 페미니즘을 뒤흔드는 11가지 독설에 맞서다, 인데 그 11가지 독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즘이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역경, 페미니즘에 덧씌워진 오해, 여성을 가르는 페미니즘 내부의 갈등, 페미니즘 화력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영역에 대해 대강이라도 알 수 있게 된다.




 



저자 알리스 슈바르처는 여성운동의 최전선에서 낙태 문제를 공론화하고 여성운동에 비판적인 여성과의 격렬한 토론도 피하지 않는 투사형의 활동가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엠마》의 발행인 겸 편집자로서 20년 가까이 그 일을 계속해온 열정과 담력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옥같은 말씀들이 너무 많아 밑줄긋기로 소중히 보관한다. 인상 깊은 문단은 여기.

 



꼭 엄마여야 하나?

 


나는 엄마와 할머니가 모성의 재능이 별로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엄마와 할머니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 토론하고, 극장에 가곤 했다. 집안일은 그분들이 잘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행복했다. 우리 가정에서는 남자, 즉 당시로서는 상당히 젊은 할아버지(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40대 중반이었다)가 집안에 굴러들어온 이 어린 여자아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채우고 양육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가게가 폭격으로 소실되고 제3제국을 위한 총알받이로 징집되기 전, 어떤 식으로든 살짝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린 나를 돌볼 시간도 있었다. (90)

 



모성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와 함께 사는 이들도 이미 알고는 있지만, 모성이 부족한 엄마,라고 말할 때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내가 그렇다는 걸 인정하는 데까지 내게도, 가족들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 알리스 슈바르처가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지칭할 때 느껴지는 이런 발랄함까지 이를 수는 없겠지만, ‘난 모성이 부족한 엄마였다는 나의 문장보다 엄마는 모성의 재능이 별로 없었다는 내 아이들의 문장이 조금 더 명랑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다음 문장도 그대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엄마는 모성의 재능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하하.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진짜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선택의 자유는 실제로 이것을 바라는 ‘모든’ 부모가 전일제 탁아소, 전일제 유치원, 전일제 학교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어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부모들이 정말로 자녀들을 가정에서 돌볼 것인지, 아니면 가정 밖의 탁아소에 맡길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95쪽)

육아휴직은 처음에는 1년이었는데, 결국 사민당과 녹색당의 활동적인 지원을 받아 3년이 되었다. 이 육아휴직은 독일 여성들의 함정 제1호가 되었다! 육아휴직을 신청할 자격이 있는 여성 중 96퍼센트가 육아휴직을 받아 직장에서 나갔다. 그리고 두 명 중 한 명은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머지 절반은 주로 시간제로, 그것도 그전보다 못한 자리로 돌아갔다. (104쪽)

성폭력과 고문, 그리고 여성 살해가 수년 전부터 팝문화와 영화, 광고사진 내지 패션사진 등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진과 영화, 텍스트가 예컨대 흑인들과 함께 연출된다면, 그러니까 천부적으로 리듬을 타며 눈동자를 굴리는 흑인이 주인을 기꺼이 섬기다가 흑인 적대적인 KKK에게 대단히 도발적으로 목매달려 죽거나 대머리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이러한 영상들은 아예 시장에 나오지 못할 게 뻔하다. 인종주의적이라고 낙인찍히고 불법적으로만 소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끔찍한 영상의 경우에도 여성들과 함께 연출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격분한 것은 이제까지 기껏해야 몇몇 페미니스트나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뿐이다. (138쪽)

슬픈 진실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즉,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문화의 한 부분이, 조형예술에서 시작되어 연극과 영화를 비롯하여 문학에까지 문화의 포르노화가 진행되는 데 선도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성들도 문화의 포르노화에 적극 참여한다. 모던한 여자로 보이고 싶거나 그 일로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150쪽)

기꺼이 매춘을 하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일단 성매매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자신과 남들을 속이고 의기양양해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이것은 예를 들면 돈을 벌지 않는 가정주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가정주부들이 "우리 남편은 상냥하고, 나는 행복해!"라고 말하는 스타일과 같다. 또는 "나는 매춘을 좋아서 하고 있어. 그 일은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여성으로서 그 일이 공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하는 데는 그다지 많은 상상력이나 감정이입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추측건대 많은 남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폐 몇 장을 받는 대신 자기의 몸과 마음에 손을 대게 한다! 그리고 여러 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다. 왜냐하면 성매매의 상황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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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4-0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성 재능 떨어지는 저에게 이 책은 위안이 되는데요? 그래도 읽을 엄두가 ;;;

단발머리 2020-04-04 09:25   좋아요 2 | URL
오랫동안 잡지를 발행해서 그런지 다른 페미니즘 책보다는 덜 딱딱하더라구요. 물론 휙휙 던지는 이야기인데 제가 그 당시 사회 배경을 모르니 이해 못 하는 구석도 많았지만요 ㅠㅠ

해가 지고 날이 바뀌고 벌써 4월인데 아이들이 집에만 있으니 그 날이 또 그 날 같고요.
그래도 주말 아침이라 모두 쿨쿨 자는 시간에 잠깐 여유를 부려 책 좋아하는 엄마가 되볼까 합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