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는 86년생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흠흠… 많이 어리다. 스페인 알칼라 델 리오에서 태어났고, 독일, 영국, 체코,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다.
막 열아홉 살이 되려는 해 대학에 들어간 카르멘은 일반 저널리즘의 역사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나눠준 추천 도서 목록에 여자가 단 한 명도, 단 한 명의 여성 저자도 없다는 걸 발견하고, 교수에게 묻는다. 여자 저널리스트들은 어디에 있나요? 교수는 물론 여성 저널리스트도 소수 있지만, 이 수업에서 다루지 않을 뿐이라고만 대답했다.(143쪽)
강의실을 나서려는데 누가 카르멘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인다. “너 이쪽이지, 그렇지?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가 무슨 뜻이고, 무엇을 함의하는지 몰라 카르멘은 바로 도서관으로 향한다. 미리 친해진 도서관 사서에게 페미니스트 섹션이 어디냐고 묻자, 그녀가 암호 같은 숫자가 적힌 종이를 건네며 말한다. “『제2의 성』은 일반 도서관에 있어. 행운을 빌어!” 그녀는 천 페이지가 넘는 거대하고 육중한 책, 『제2의 성』을 읽는다.
나는 『제2의 성을 열악한 상황에서 읽었다. 거의 항상 밤에 세비야에서 알칼라로 매일같이 왕복 두 시간 남짓 걸려 나를 나르던 버스 좌석에 파묻힌 채로, 내가 ˝죽음의 버스˝라고 부르곤 했던 그 버스에서 내 인생의 몇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겨우 8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나의 마을과 도시 사이의 좁은 도로를 타고,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5분마다 외떨어진 농장과 공장에 멈추는 버스에서 보냈던 시간은 평생의 경험이라 할 만했다. 15년이 더 지나는 동안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같은 버스, 같은 도로, 버스를 기다리고 오가는 여정에 한나절을 다 보내는 나처럼 낙담한 얼굴의 승객들까지 대부분은 여자였다. 젊은 여자들은 대학 통학을 위해, 중년 여자들은 도시의 집들을 청소하기 위해, 나이 든 여자들은 종합병원이나 산헤로니모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내가 『제2의 성』 표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 보면 50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곤 했다. (149쪽)
카르멘은, 시몬이 자기 자신에 대해 쓰려고 했을 때 그녀를 사로잡은 질문이 이것이라고 보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시몬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카르멘은 오히려 이 경우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열 살 때, 열다섯 살 때, 스무 살 때, 다른 여자들은 이런 질문에 봉착하지 않던가.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이런 질문이 찾아오지 않던가. 왜? 왜 안 되는 거야? 내가 여자라서? 왜 그런거야? 내가 여자라서? 그래서 그런거야?
아마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몰랐을지라도, 그 버스에 있었던 모든 여자가 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이유는 알 수 있었다. 집에 차가 있었다 해도 일하러 가기 위해 차를 쓰는 사람은 집안의 남자였기 때문일 것이고, 스무 살이 되어도 운전을 못하는 경우에는 부모나 남편이 여자가 무슨 운전면허가 필요하냐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니까. 또 나는 엄마가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열아홉 살에 나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삶이, 그녀가 가지고 싶었던 삶이 말도 안 되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아주 이른 나이부터 눈치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이 자기 길을 찾기 위해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제2의 성』을 쓰기 2년 전 즈음에 알게 되었다. 마흔 살이 넘은 몇몇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치 ˝상대적 존재˝처럼 살아왔다고 고백한 증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152쪽)
『제2의 성』은 도서관에 있다. 알라딘에서 구입하면 그 다음날 바로 집 앞까지 가져다 준다.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쉽게 이 책을 빌릴 수 있고, 구입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