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초니까 3월 아니면 4월 쯤이던가, 가깝게 지내는 집사님이 새로운 독서모임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집사님은 초등학교 독서모임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해 왔는데, 중학교 독서모임은 분위기가 다르더라는 말을 했다. 초등학교 독서모임에서 이야기의 시작은 책에 대한 의견 및 감상이지만, 말이 오가다 보면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 전반적으로는 육아 모임 분위기라 했다. 처음 나간 중학교 독서모임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 책에 대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전한다. 다시 한 번 책읽기에 대한 엄마들의 뜨거운 열정에 놀란다. 10년 가까이 아이들 독서모임을 함께 했던 언니들을 제외하고,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책을 읽는 엄마, 책을 읽는 전업주부가 내 주변에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닌가 보다. 책 읽는 엄마들은 다들 독서모임에 나가는가 보다. 독서모임이 독서를 지속하는데 좋은 동력이 되어주고 있나 보다. 알라딘이 내게 그런 것처럼.
하긴 역시 올초에 새로운 독서모임에 나가게 된 친구가 독서목록을 보내주었다. 중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모임인데,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계속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목록을 대충 살펴보는데도 헉!소리가 절로 났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시작해 『일리야스』, 『오딧세이아』는 물론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까지 보인다. 최은영, 김상섭은 물론 정희진까지 최근 베스트셀러 도서도 간간히 보여 고전과 현재를 아우르는 스펙터클 독서 스펙트럼에 한껏 감동했다.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와우! 여기 수준 장난 아니다! 이런 책을 다 같이 읽는 거야? 다 읽는 건 아니고. 나도 몇 번 안 갔어. 전부가 아니라 반만 읽어도 정말 대단하다. 대단한 독서 목록의 대단한 독서모임이다.
이디스 워튼의 단편 모음집 『징구』에는 <징구>, <로마의 열병>, <다른 두 사람> 그리고 <에이프릴 샤워> 이렇게 4개의 단편이 있다. 내가 뽑은 단편집 최고의 작품이자, 내가 뽑은 올해 최고의 단편소설로 유망한 작품은 <징구>이다. 독서모임 회원들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아주 배꼽 빠지게 재미있다.
책을 읽는 삶과 책을 읽지 않는 삶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책을 읽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책이 주는 위로, 기쁨, 즐거움, 그리고 감동이 내게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책은 많이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으냐,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영 쉽지 않을 것 같다. 책이 가진 수많은 장점,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수많은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어 정보와 지식이 풍부해도 사건 전체를 꿰뚫어 볼만한 안목이 없을 수도 있고, 책을 많이 읽어 훌륭한 문학작품의 제목과 저자, 줄거리를 훤히 알고 있다 해도 그 작품이 전하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감성, 공감, 애정을 자신의 가슴에까지 전달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디스 워튼의 독서모임에 대한 냉소는 독서모임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독서하는 ‘인간’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이 소설에서는 그 도구가 책이며, 그 공간이 독서 클럽이다. 책 좀 읽는 여유로운 부인들의 허위와 위선은 독서라는 매개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인간 본연의 민낯이 드러나는 그 과정이 그렇게나 진지하며 그래서 더욱 우습다.
추석으로 지친 감성에 1독을 권하고픈 책이다. 6개월 이내에 누가 내게 “요즘 무슨 책이 재미있어?”라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징구』, 『징구』가 재미있어. 진짜 재미있다니까.
진짜… 야, 진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