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어머니 이야기 1-4
『내 어머니 이야기』 1-4는 소설가 김영하가 ‘진짜 이야기다. 사라져서는 안 되는 책이다.’라고 소개해서 더 유명해진 책이다. 십 여년에 걸쳐 어머니의 이야기를 녹취하여 만화로 그렸는데, 대사와 내레이션에 어머니의 입말을 최대한 살려냈다. 일제 강점기 함경도 북청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1부와 놋새(작가의 어머니)의 혼인 및 광복, 그리고 6.25 전쟁상이 그려지는 2부. 거제 수용소에서의 피난민 시절을 거쳐 논산에 터를 잡은 모습을 그린 3부와 70년대말 서울에 올라온 뒤 가족사를 그린 4부가 이어진다.
나는 『분노의 포도』를 읽지 않았다. 작품 내, 문제적 장면의 문제성에 대해 다락방님과 syo님의 페이퍼를 통해 짐작했을 뿐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 시리즈 프롤로그에 가까운 1권 앞부분에 문제적 장면이 펼쳐진다. 충격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더 큰 충격은 이것은 『분노의 포도』처럼 설정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 역사라는 것. 나는 한 여성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한, 그런 희생을 자초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에 절망할 뿐이다. 그런 장면이, 이 작품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느낀 낙담과 슬픔을 이렇게 몇 문장으로 남겨둔다.
2. 뱀이 깨어나는 마을/희생양의 섬
나는 시동을 걸면서 어떤 그럴듯한 변명을 들먹여야 할지 생각했다. 나는 야생동물을 다루는 일을 한다. 가장 외딴 마을에서 가장 적막한 거리의 맨 끝에 살고 있다. 의도적으로 이웃들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쇼핑도 우편 주문만 이용했다. 혼자 있기 위해 뭘 더 해야 한단 말인가? (103쪽)
머리가 꽉 차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때, 책보다 스마트폰이 더 위안이 되려고 할 때, 이 책을 펼쳤다. 바른 선택이었다. 책제목이 스포인데, 소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진짜 ‘뱀이 깨어난다’. 화자의 말과 화자의 행동을 통해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비밀이 있는지 드러내는 방식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세련됐다. 그녀의 다른 책 <희생양의 섬>도 읽어봐야겠다.
3. 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
성경을 읽는 데 자신이 더 의롭게 느껴진다면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우리를 겸허하게 하고, 비판하고, 우리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격려할 때만 성경을 제대로 읽고 바르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41쪽)
나는 주로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해라’, ‘이러해야 한다’는 성경 말씀에 ‘그래, 내가 바로 그렇게 살고 있잖아.’라고 응수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겸허하게 하고, 비판하는 말씀을 외면하는 내가 있다.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거라고, 팀 켈러가 말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
4. 일할 수 없는 여자들
이 책의 부제는 ‘공부하는 여자들은 왜 밀려나는가’이고, 북저널리즘의 31번째 책이다. B6의 크기에 106쪽이다.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저자는 한국의 여성 고학력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과 여성에게 가사 노동을 전가하는 구조를 파헤친다. 국가에서 여성의 고용을 강력하게 보호할수록, 기업은 여성이 이탈할 경우 더 큰 손실을 보기 때문에 처음부터 여성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16쪽), 일하는 여성이라 하더라도 직장 경력을 위해 출산을 포기하거나, 노동 시장에서 이탈해 주부로 남는 옵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지적이다.(43쪽)
말끔한 매무새에 안도했던 것도 잠시, 아이의 발을 보고 끝내 주저앉아 울었다. 발바닥 전체가 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당시 나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아동 보육 담당 입법조사관보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동과 보육 정책을 논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내 자식을 돌보지 못한 죄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57쪽)
십수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던 건, ‘아이를 내가 키우고 싶다’는 게 제일 주요한 이유였다. 그 때는 아직 젊은 패기에 넘쳐, 아이를 내가 직접 키우면 더 잘 키울 수 있다, 더 특별한 아이로 키워낼 수 있다,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 세상에 우리집 아이 같은 아이는 딱 하나뿐이니 내 아이가 특별하기는 하지만, 내가 키운다고 더 특별해지지 않을 것이나, 내가 퇴사한 즈음에 아이의 말문이 터지고 노래와 율동 실력이 거침없이 나아지면서, 한동안은 그런 신화를 나 역시 믿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모성’이나 ‘전업주부’는 역사적인 개념입니다. 본질적이거나 실제로 있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모성, 아동기, 전업주부 같은 단어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인류 역사상 300여년 밖에 안 됩니다. ('남자'의 거짓말과 말의 권력관계 - 정의하는 자와 정의당하는 자 : 정희진, 293쪽)
5. 12개의 테마로 읽는 페미니즘 도서 목록
지금 손 안에 책이 없어 확인은 어려우나, <thema 1-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페미니즘 교양]>의 책들은 모두 다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읽고 싶은’이거나 ‘읽고 있는’ 책 중에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싶은 책은 이렇게 4권. 『성정치학』,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사람, 장소, 환대』, 『왜 여성사인가』.
이 책의 백미는 사진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시인 고정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의 수잔 브라운 밀러, 『혁명의 영점』의 실비아 페데리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패트리샤 힐 콜린스, 그리고 『가부장제의 창조』의 거다 러너.
오늘은 여기까지......... 충분히 길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