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유재산이 먼저 발달하고, 이것이 “여성이라는 성의 세계사적 전복”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는 사유재산이 생기게 된 것은 여성교환을 통해서였다고 믿는다. (87쪽)
저자 거다 러너는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의 의견에 가깝다.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인구학적으로 같은 수를 이루어야 하는데,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의 조달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여성 약탈’의 전사문화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잡혀온 여성들이 그들을 잡아온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는 과정을 통해 여성을 물건과 같은 소유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여성의 사물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신석기시대 도구들은 상대적으로 단순해서 누구든 만들 수 있었고, 토지 또한 희소한 자원이 아니었기에 생물학적 재생산의 불규칙성과 생태학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 집단의 생존에 가장 주요한 요건은 “더 많은 재생산자들 – 여성들”의 확보에 달려 있었다는 해석이다. 즉 사유재산의 첫번째 전유는 재생산자인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전유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91쪽)
이는 ‘노예화’ 과정을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 다른 인종,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노예화”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쟁 포로가 발생했을 때 관리의 어려움과 잠재적 위협 때문에 대부분의 적국 남성들을 살해했던 것에 비해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전쟁 포로가 되었다. 여성들에게 굴욕을 주는 과정은 남성지배의 마지막 행위, 즉 포로여성들에 대한 강간으로 이루어졌는데(140쪽), 자신을 구해줄 가족, 친척 남성의 죽음, 강간과 성적 이용으로 인한 임신과 자녀 출산은 포로 여성으로 하여금 적국의 문화와 강압적인 지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노예제가 처음 잉태된 시기부터 이는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것을 의미했는데, 남성 노예 역시 전적으로 자율성과 명예를 상실하고 보상 없는 노동을 해야했지만, 여성 노예는 주인 혹은 주인의 대리인을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여성에게 성적 착취는 “노예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156쪽)
이 책 167쪽에서는 소유관계를 기반으로 정해지고, 군사력을 통해 강화되는 남성들 사이의 위계와 비교되는 여성 위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에게 위계는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남성의 지위를 매개로 해서 정해졌다. 위계의 맨 밑바닥에는 강력한 남성에 의해 섹슈얼리티가 마치 매매 가능한 물건처럼 처분되는 노예여성이 있었고, 중간층에는 성적 행위를 통해 상승이동하고 일부 특권과 자신의 자녀들을 위한 상속권을 얻을 수 있었던 노예첩이, 제일 상층부에는 한 남성에 대한 성적 서비스를 통해서 재산과 법적 권리를 갖게 되는 부인이 있었다. 부인보다 상위의 어느 지점에는 예외적인 여성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들의 처녀성과 종교적 서비스 덕택에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권리들을 누렸다. (167쪽)
저자도 강조했다시피 최고 지위의 부인과 노예여성의 처지를 등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최고 지위의 부인은 힘든 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다. 노예여성은 주인에게 자신의 노동력 뿐만 아니라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다. 둘 사이의 간극을 무시하는 것은 여성 계급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순진한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위의 여성조차 자신의 가정에서는 가장의 절대적인 지배 및 보호 아래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남성은 여성친족들을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부인과 자녀들 역시 그렇게 처분될 수 있는 그의 재산의 일부일 뿐이었다. (159쪽)
경제적 지위를 상실했을 때, 최고 지위의 부인이 엮는 고군분투에 대해서는 『파크애비뉴의 영장류』라는 책에 소상히 나와있다. 버킨 백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완벽한 외모, 완벽한 몸매를 꿈꾸며, 기사가 딸린 럭셔리 세단에 아이들을 태워서는 일정을 세세히 챙기는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 최상류층 여성들이 불안에 떨며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이유. 일시적 성별노동분업이 고정화되어 지배적 문화와 개인의 삶으로 구체화된 슬픈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