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민족 트랜스 소시올로지 11
니라 유발-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 / 그린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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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여성들 간의 차이 그 자체에 관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상이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게 공통된 것이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어떻게 페미니즘을 이 모두를 떠안을 수 있는 정치 운동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32)  



『젠더와 민족』은 젠더 관계와 국가 기획 과정 및 그 영향에 관한 글이다. 여성women의 위치position와 위치설정positioning에 주안점을 두었다.(14) 이론적 요점들을 설명할 때 저자는 다양한 입장의 학자와 활동가들의 책과 논문을 폭넓게 인용했지만, 지식은 상황적이며, 한 가지 입장에서 나오는 지식은 완성되지 못한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음 역시 밝히고 있다.(15) 민족이라는 친족 관계가 젠더와는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에 반해, 저자는 여성이 생물학적, 문화적, 상징적으로 민족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또한 여성들이 민족주의 현상의 다양한 이론화 작업 속에서 은폐되어 왔음을 고발하며, 공정 영역의 장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그 결과로서 공정 영역의 담론에서 여성이 배제되었음을 밝혀낸다.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y’라는 자신의 민족구성물을 제시한 앤더슨과 모더니스트들에 의하면 민족은 영원하고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유럽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비롯된 특수한 산물이다(39). 오토 바우어는 같은 운명 common destiny’를 민족 구성에 중요한 요소로 보았는데, 특정 민족 안에서의 개인과 공동체의 동화 이상을 같은 운명이라고 설명했다.(47)


재생산권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은 페미니즘 운동 시작단계에서부터 투쟁의 중심에 있었는데,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가임 연령 집단에 속하는 모든 여성들은 자녀를 더 많게 혹은 더 적게 갖기를 요구받고, 가끔은 회유당하고, 심지어 강요받기도 했다.(51) ‘인구의 힘담론은 민족 집단체의 유지와 확대가 국익에 중요하다고 보는데, 우생학 담론은 혈통과 계급의 측면에서 적합한 이들에게는 더 많은 자녀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자녀를 낳지 못하게 함으로써 민족혈통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52)


우생학적 국민 재생산 구성물들은 다음 세대의 신체적 건강보다 민족 혈통의 개념들과 생물학화된 문화적 특성에 집중되는데, 이를 가장 강력하게 시행하는 나라 중 하나가 싱가포르이다. 수상 리콴유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에게는 유전적으로 우월한 아이를 생산하는 애국적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고, 교육받지 못한 어머니들에게는 불임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불의 상금을 현찰로 지급했다.(67) 미국은 흑인 생활 보호대상 어머니들이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는 이유로 노플랜트 패치(장기간 천천히 투여하는 화학 피임약이 포함된 자궁 피임약)를 시술하는 여성들에게 시술 시 500, 매년 50불을 지불하고 있으며, 영국, 호주 및 여러 서방 국가들도 안전하지 않은 불임시술을 거의 빈민 소수민족 여성들에게만 실시하고 있다(68).


민족성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과정이다. 민족성이 구성하는 집단체와 그 이익은 구체적으로 민족적 정치에 관여하는 이들이 이 집단체 내부에 있는 타자들과 갖는 관계들의 결과이기도 하다.(86) 여성들은 집단 상상력을 통해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에 따라 가족의 미래 뿐 아니라 집단의 미래와도 연결되기에, 집단체의 정체성과 미래의 운명은 여성에게 재현의 짐을 요구한다. 문화 전통과 전통의 ()발명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통제와 억압이 합법적 수단으로 이용되며, 남성들 뿐 아니라 집단체 전체가 타자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이러한 현상은 강화된다.(90) 이는 여성이 집단체 안에서 양가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여성은 집단체의 통일, 명예, 참전(여성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과 같은 특정 국가 및 민족 기획의 이유임과 동시에, 정치 통일체인 우리라는 집합에서 배제되고, 주체의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91)


캐럴 페이트먼은 사회 계약 이론가들의 저술을 검토하면서 사회 계약이 성적sexual 계약에 즉 남성이 여성 위에서 행사하는 권력에 근거하여 적법화되었다고 보았다. , 우애를 통해 남성들은 사적 영역에서 자기 여성들을 위에서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대신 공적인 정치 영역에서 자신들끼리의 평등이라는 사회질서의 계약에 동의했다는 것이다.(147)


젠더와 군대는 가장 첨예한 이슈다.


젠더와 민족의 다른 모든 측면들에서처럼, 군대에서의 여성과 남성은 동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상이한 집단이 자리 잡은 위치 또한 상이하며, 이들은 군대와 전쟁에 상이하게 참여한다. 대부분의 다른 측면보다도 전쟁과 관련한 이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바로 모든 사회분야에서 전사warrior로서의 남성 (그리고 걱정거리worrier로서의 여성?) 구성이 자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171)



과거 전쟁터에서 여성에 주어진 고유한 역할이란 사상자를 돌보거나 반대로 승자들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방후방이 일단 분리되고, 사회 집단체가 전쟁과 국내 전선을 떠난 전사들의 부재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잉여가치를 축적하게 되면, 인근 부족과 마을을 절기에 따라 잠깐 급습할 때는 더욱 군대 내 남녀 성별 분업이 정례화되는 경우가 많았다.(174) 전쟁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여성들, ‘여성적 역할을 넘어서 전투에서 남성을 이끌었던 신화적 혹은 역사적 여성 인물들은 낭만적이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군대 참여와 시민권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사회 안에서 누군가의 권리와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군 참여 여부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그리고 시민 권력의 원천이 될 어떤 대안을 지니고 있는가로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177) 군이 흑인으로 넘쳐나고, 현대전의 일대일 전투 참여의 비중이 군사행위에서 줄어듦으로써 현대전의 성격이 변화했을 때, 미군은 여성들에게 군 계급을 개방했다.(180) 군이 군사적이지 못하게 하려면 여성이 군에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여성이 남성 옆에 존재함으로써 적어도 마초주의 신화의 기반을 다소 허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7)


저자는 정체성 정치의 대안으로 횡단의 정치를 제안한다. 대화에 경계 없이. 모든 이해갈등이 각기 화해 가능하다고 가정하지 않으면서. 공통의 가치체계를 공유하고. 차별적 입장과 정체성을 가로지르면서. 억압과 차별에 대해 투쟁하며. 특정범주에 한정되지 않으며 존재하기. 


정의대로라면 우리가 하기 위해 착수한 일들을 결코 완수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투쟁의 와중에도 어떻게 즐겁게 지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고 가끔은 축하도 할 수 있을까이다. 옘마 골드만Emma Goldman이 말했듯, “내가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 (238)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읽어가면서, 읽기 힘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내가 생각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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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2-0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 오래된 리뷰에 땡투 들어갑니다.. 슝-

아, 그리고 캐럴 페이트먼은 우리 2월 도서의 작가네요? 훗.

단발머리 2021-02-04 09:1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땡투를 모아모아 제가 건물을 지으려고 해요 ㅎㅎㅎㅎ
2월의 책 준비됐어요! 요이~~~~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