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알라딘에 놀러오지 않으시는 그리운 ㅎ님이 선물해주신 책은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이다. 마르크스 공부를 운동이라 비유했을 때 스트레칭과 같은 느낌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분홍분홍하고 너무 예뻐 마음에 쏙 드는 이 책을 너무 소중히 여기다 보니 아직 다 읽지 못 했다. 애지중지 너무 소중히 여기다 보니.
자타공인 알라딘 공식 빨갱이, 분노의 알갱이 syo님이 읽었던 어마무시한 마르크스 독서 이력에 감탄하며 가장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은 뭘까 궁금해하던 내게 syo님이 권해 주신 책은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이다. 마음으로는 벌써 10독을 했겠지만, 아직 실물도 못지 못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과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를 뒤로 하고(혹은 아껴 두고) 어제부터 읽는 책은 고병권의 『다시 자본을 읽자』이다. 책날개를 펼친다.
[고병권] –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사회사상과 사회운동에 늘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아,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건 얼마나 간단한 저자 소개인가. 나도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해왔는데. 그런데 고병권 저자 소개에 ‘책읽기를 좋아하고’가 쓰여 있으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그 책은, 좋아하는 책은 『자본』 같은 책이어야 하는가. 얼만큼 좋아해야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보다 유투브보다 정국이보다.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책읽기를 좋아해야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병권의 저자소개는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낸다. 철학자의 저자소개라 그런가. 저자 소개에서부터 나를 부수고 나를 깨뜨리는가.
강의록을 묶어 나온 이 책은 2020년 6월까지 총 12권으로 출간될 자본 읽기 시리즈 중 첫번째 책이다. 고병권의 문체는 뭐랄까. 공부를 무지 잘 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착해서, 뭐 세상에 이런 애가 다 있어? 묻게 하는 문과 전교 1등의 느낌이 묻어나는 문체다. 강의를 옮긴 책이다 보니 착한 문체가 더 도드라져 편히 읽힌다. 챕터 1. 『자본』 나를 긴장시키며 나를 매혹하는 책.
내게 책을 읽는 것과 공부란 어떤 의미인지,
내 앎을 추동하는 의지는 무엇인지,
나에게 되묻게 될 겁니다.
그러면 나는 많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한 쪽, 정확히 한 페이지를 읽고 나는 슬프다. 책을 읽는 것과 공부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한다는 고병권을 대할 때, 나는 슬퍼진다. 제발 하나라도 남겨 주세요. ‘책읽기를 좋아하고’는 제가 포기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요,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페이스북을, 유투브를, 팟캐스트를, 그리고 정국이를 좋아해요. 그러니, 제발 부끄러움은 저한테 주세요. 부끄러움마저 가져가지 마세요. 부끄러움은 제 몫으로 남겨 주세요. 제가, 저만 부끄러워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부끄러움은 제 몫이에요.
부끄러움은 제 것이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