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떠받들던 시대,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처녀시절』 같은 책을 보란 듯이 들고 다녔던 사노 요코. 그녀의 속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보부아르가 싫었다. 몸이 튼튼해서 싫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넘어져 치아가 부러지고 치아가 볼에 박혔는데도 태연하게 주일이나 여행을 계속했다. 친구 중에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이상적인 남녀관계로 신봉하고 그대로 따라하는 바람에 인생을 망친 여자도 있다. 


사람의 결사적인 철학과 행동에 대해 뭐라고 비난할 있을까? 


나는 그녀의 강인한 체력이 못마땅했을 뿐이다. 여자는 뇌나 뼈에 치아가 박혀도 태연하지 않을까? 이런 속내도 다른 사람에겐 말할 없었다. 나는 그저 약하고 머리 나쁜 여자였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보부아르를 무시할 있었다. 그래, 그래, 잘났다. 자식이 없으니 그렇게 말할 있지. 그렇게 살아. 나하곤 상관없어. 나는 사는 힘들거든. 일상이 힘들면 생활이 철학이 . (164)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았고, 그리고 일생 태반의 시간을 호텔에서 머물었던 보부아르, 강철체력에 결사적인 철학을 구가했던 보부아르를 사노 요코는 싫다고 말한다. 보부아르에게도 한계는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여성운동의 선봉에 섰던 보부아르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이끌었던 훌륭한 위인들이 모두 도덕적으로 완벽했던 아니다. 보부아르에게, 특별히 보부아르에게 엄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부아르의 장례식장에서 엘리자베스 바댕테르가 낭독했던 조사처럼 세상 모든 여성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전부 보부아르 덕택이라고까지 것도 없다. 다만, 『2 성』 통해 본성이라 여겨졌던 소극적, 의존적인 여성성이 사회적 구조와 모순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문화적 산물에 불과한 것임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여성이 본질적 타자, 완전한 타자로서 인식됨으로써 여성 억압이 강력하게 구성되었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공은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가 있다. 나는 아들 외에 다른 아이를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아들 이상으로 귀여웠다.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울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수만 있다면 30 전으로 돌아가 다시 귀여움을 느끼고 싶다. 60 전으로 돌아가 야무지고 강한 아이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젊은 아버지가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와 잃은 어린 나를 찾아내어 영화처럼 안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40 전으로 돌아가면, 배웠다고 억지 이론을 늘어놓거나 남녀평등을 외치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식구를 먹이기 위해 치즈를 만들고, 쇠똥을 태워 고기를 굽고, 쇠똥을 갖고 노는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싶다.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식사를 하면서 최소한의 필요한 말로만 소통하고 싶다. (171) 



『처녀시절』 보란 듯이 들고 다니던 사노 요코가 말한다. ‘40 전으로 돌아가면, 배웠다고 억지 이론을 늘어놓거나 남녀평등을 외치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식구를 먹이기 위해 치즈를 만들고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그녀가 보았던 영화는 <동굴에서 나온 누렁 >라는 제목의 몽골 영화이다. 푸른 초원 파오, 말을 타는 젊은 아버지, 쇠똥을 갖고 노는 아이들, 그리고 식구를 먹이기 위해 치즈를 만드는 아내.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는 아내. 



나는 사노 요코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단.  


1) 배웠다고 : 페미니즘은 배우지 않아도 있는 학문이다. 사회와 구조 속에 너무나도 깊숙이 뿌리 박힌 가부장제의 흔적을 여자들은 대부분 안다. 가부장제, 페미니즘,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남자들 그렇지 ,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라고 말할 뿐이다.  


2) 억지 이론을 늘어놓거나 : 페미니즘은 억지 이론이 아니다. 억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혹은 (희망적으로는) 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을 뿐이다.  


3) 남녀평등을 외치며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다. 남녀평등.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 남자와 여자가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게 하자. 


4)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고 : 여자를 가두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세상 일에, 정치에,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면,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면,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된다. 



보부아르가, 여성주의가, 페미니즘이 적잖이 그녀의 삶을 곤란하게 했을 거라 혼자서만 예상한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다른 이의 삶에 대해 쉽게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만, 타인은 없다. 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사노 요코의 어려움은 오로지 그녀만 있다. 『처녀시절』 들고 다녔던 사노 요코가 이렇게 말할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의외라고 한다면, 동의할 없는 문장들 옆의 이런 문장이다.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기다리는 사람이 여자냐고 물을 있겠다. 같이 말을 타고 나가지 않으려 한다거나, 멀리 나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고도 말할 있다. 나는 그저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사노 요코의마음이해한다고만 말할 있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X 민주주의』에서 정희진은 말한다. 




톰과 제리의 이야기를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로 바꾸면 어떨까요. 남성은 여성의 노동 없이 존재할 없죠. 누가 고양이고, 누가 쥐일까요? 아무리여성 상위 시대의 피해의식 시달리시는 남성도, 남성이 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고양이는 남성이고 여성이 쥐라고 말할 있겠지요. 강자와 약자. 


그런데 문제는 이거죠. 톰과 제리는 섹스를 하지 않아요. ‘재벌하고알바 섹스를 해요.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관계인데, 섹스를 합니다. (20) 







톰과 제리처럼 천적 관계, 고용주와 노동자처럼 모순 관계에서는 서로를사랑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섹스의 전제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아니다. 적대적 모순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은 섹스를 한다. 외적 존재인 상대방을 사랑하고, 서로의 진심과 사랑을 원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갈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상적 가족에 대한 기대는 깨어진 오래다. 특정한 형태, 특별한 구성의 가족만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류다. 결혼하기도 하고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에게는진지하고 헌신된 관계 대한 갈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들 역시 진지한 헌신의 관계, 사랑과 의탁의 관계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표현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를 알아온 사람. 


나의 어떤 점을 좋아해주고, 나의 어떤 점까지도 이해해주는 사람. 


작은 일에도 나를 도와주려 애쓰고,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람이 말을 타고 멀리 나갈 , 그리고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할 , 


그의 말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고 말이다.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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