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 마티 / 2018년 5월
평점 :
학교에 페미니즘을. 이 말을 듣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는 이미 성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고, 오히려 여학생에게 유리한 공간인데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냐고. 페미니즘 교육은 교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중립과 공평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냐고.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모임인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저서 『학교에 페미니즘을』에서 이런 반문들에 대답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정말 남학생에게 불리할까
한국 공교육의 교육과정에는 양성평등이라는 교육 목표가 들어 있다. 심지어 학교가 여학생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남학생 출석번호는 1번부터 시작하고, 여학생 출석번호는 남학생들의 번호 뒤에서부터 시작한다. 교과서 속 엄마는 늘 앞치마를 입고 집안일을 하고 있고, 아이들은 ‘앙 기모띠(기모치 이이(기분 좋아)라는 일반적인 일본어 문장에서 유래한 표현이지만, 일본 포르노를 음지에서 소비하던 대중이 포르노 언어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알고 있는 여성에게는 성적 수치감을 일으키는 표현으로, 언어적 성희롱에 해당한다.)’ 같은 혐오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그리고 학교는 남의 눈치를 살피고 조용히 앉아 참을성 있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학생들에게 유리한데, 여성은 어릴 때부터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묵묵히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기분을 살필 것을 남성보다 더 강력하게 요구 받는다. 이런데 학교가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공간, 여학생에게 더 유리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남학생을 차별하고 남학생의 기를 꺾는 교육이 아니다. 여자다운 것과 남자다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성별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자기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 체육을 잘 하지 못하거나 다른 남학생들보다 섬세한 남학생은 교사들이나 부모에게서 남자답지 못한 아이, 유별난 아이로 취급받기 일쑤다. ‘남자답기’ 위해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가 이 정도도 못 참느냐’는 타박도 들어야 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사회에서 흔히 남자답다고, 여자답다고 생각하는 용모와 언행에서 벗어나더라도 비웃음을 당하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페미니즘 교육은 중립과 공평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만을 위한 사상으로,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만을 위한 교육으로 오해 받는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남성을 혐오하고 배척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다른 상대를 존중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억압 받는 소수자인 여성의 관점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과 연대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교육이다.
한편에서는 페미니즘 교육이 교육의 정치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여러 명이 모인 집단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다. 학급의 규칙을 정하고 지키고 집행하는 일, 교사와 학생들이 의견을 조율해 가는 일도 정치에 속한다. 오히려 학교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배우고 실습할 수 있는 곳이다.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 조율해 가는 것이 정치이고 민주주의이지, 모두가 중립만을 지키는 것이 정치, 민주주의는 아니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교사들만 읽으면 되는 책일까
그런데 이런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 나는 교사도 부모도 아니고, 앞으로도 교사나 부모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대할 일은 생긴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이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이끌 것이다. 내 눈 앞에서 아이들이 성 차별적이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 성별에 대한 편견에 갇힌 모습을 보일 때 나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 아이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지금의 성 차별과 소수자 혐오는 대대손손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나 부모가 아닌 사람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자답게, 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여자답게 살라고 요구한다. 여자는 젊고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여자는 일상생활에서, TV와 인터넷 방송에서 조롱거리가 된다. 아버지는 엄마와 나만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엄마조차 외출했을 때는 딸인 내가 아버지 밥을 차려드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꿈을 꾸고 나서 남자답게,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지 실감했다. 내 지인 중 한 명의 성별이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꿈이었다. 꿈속이지만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성별이 바뀌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성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꿈에서 깬 뒤 생각해 보았다. 내 성별만 바뀌고 다른 점들은 그대로라면 나는 많이 달라질까? 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남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여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그저 나일 뿐이니까.
남자답게, 또는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답게 살 수 있다는 것. 성별에 관계없이 상대방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폭력이라는 것,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조차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라는 것 등, 초등성평등연구회가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는 메시지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성 차별과 소수자 혐오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지금이 우리들에게도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때다. 아이들도, 우리 자신도 남자다운, 또는 여자다운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답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참고 기사: 여자 컬링팀 애칭으로 ‘앙 기모띠’ 권하는 사회(http://slownews.kr/68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