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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평점 :
* 스포일러 포함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가 앞에 두 청년이 있다. 한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고 있고, 다른 청년은 서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도서관 풍경이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한 달에 600여 차례의 폭격이 쏟아지는 도시 한복판에 있다.

폐허가 된 다라야 시내
이 도서관이 있는 도시 다라야는 8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중심에 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과 그 밖의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시작되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은 50여 년째, 2대에 걸친 아사드 일가의 독재가 계속되어 왔던 시리아에도 찾아왔다. 다라야 시민들이 독재에 저항하는 비폭력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사드 정부는 다라야를 봉쇄하고 매일 쉴 새 없이 폭격을 퍼부었다. 다라야의 시민들은 식량과 의약품도 보급 받지 못한 채 매 순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었다.

다라야의 젊은이들이 세운 지하 비밀 도서관의 모습
많은 시민들이 견디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 모든 진실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도시에 남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폭격이 시작된 지 1년쯤 지난 2013년 말, 그들은 무너진 폐허에서 찾아낸 책들로 지하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책을 안전하게 둘 수 있는 지하공간을 찾아 서가와 소파, 발전기를 들여놓았다. 폐허 속에서 1만 5천여 권의 책을 모으고, 종류별로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해 서가에 꽂아 정리했다. 다라야 사람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폭격을 헤치고 지하 비밀 도서관을 찾았다.
그 뒤 2015년에,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델핀 미누이는 페이스북에 올라 온 사진을 통해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독재 정권의 폭력에 맞서 도서관을 지은 청년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2016년 8월까지 스카이프(Skype, 국제 인터넷 전화 서비스)로 다라야의 청년들과 대화했고, 그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다라야 사람들
세상 한구석에 고립된 다라야의 젊은이들에게 책은 밖을 향해 열린 문이었다. 그들은 다라야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지만, 온 세상이 책 안에 있었다. 그들은 배우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정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장 사이에서 미지의 세상을 탐험할 때 책은 견고한 성벽이자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전쟁을 멈추지는 못했지만 전쟁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그들은 정부의 검열을 거친 책을 읽어야 했고, 토론의 장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으로 사방이 막힌 뒤 그들은 지하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강의를 열고 토론을 펼치게 되었다. 책은 수많은 사상과 해방을 위한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다. 시리아의 작가 무스타파 칼리파가 12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을 그린 책『껍질』은 아사드 정권의 잔혹함을 고발하면서 강제로 갇힌 상황을 견뎌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팔레스타인의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이스라엘에게 억압당하는 현실을 그린 시들은 마치 그들 자신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식상해진 자기계발서『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도 위기 상황 속에서 자아를 지키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은 그들에게 저항의 수단이자 해방의 통로가 되었다.

폐허가 된 다라야 도서관
그러나 도서관 밖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아사드 정부는 점점 더 맹렬하게 다라야를 공격했고, 외부에서 구호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버렸다. 다라야 청년들이 기대한 것과 달리 유엔과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다라야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니, 주지 않았다. 결국 2016년 8월, 정전협정이 이루어지고 다라야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강제이주되었다. 그리고 지하 도서관은 지금까지도 폐허로 남아 있다.
책이 패배한 것일까. 그들의 저항은 실패한 것일까. 그러나 책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책의 힘을 믿고 책이 심어준 것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파괴할 수 없다. 지하 도서관은 폐허가 되었지만 도서관을 세운 젊은이들은 살아남아 더 나은 삶, 더 나은 시리아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작가는 그들에게 약속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 세상에 나와 그 도서관에 있는 다른 책들과 나란히 놓이게 될 거라고. 그 약속은 반만 지켜졌다. 시리아가 자유로워지는 날, 다라야에 다시 도서관이 세워지고 이 책이 그곳의 서가에 꽂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의 야만 앞에서도 여전히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P. S. 1. https://edition.cnn.com/videos/world/2016/10/06/daraya-syria-secret-underground-library-orig.cnn/video/playlists/atv-syria-civil-war/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다룬 CNN 뉴스의 영상 링크. 지하 도서관의 모습과 친구들에게 '사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도서관을 사랑했던 소년 암자드,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지만 정부군에게 희생된 청년 오마르의 모습이 나온다. 오마르는 이 책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암자드도 적은 분량이지만 등장한다.
P. S. 2. 지하 도서관에서 다라야의 젊은이들이 함께 보았던 단편영화 <2+2=5>(원제 Two & Two). 이란 출신 영국 감독 바바크 안바리 Babak Anvari 의 작품이다.(책에는 바바크 아미리 Babak Amiri 로 잘못 나와 있다.) 2+2=5라는 잘못된 답을 강요하는 수학 교사에게 저항하는 영화 속 학생들에게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