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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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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표지의 일러스트부터 범상치 않다배경의 남산타워를 보아 서울로 추정되는 도심의 한 높은 건물 옥상에서한 청년이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줄도 없는 번지점프로 이 헬조선을 탈출하려는 것이다그림 속 청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이렇게라도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X세대, 88만 원 세대, N포세대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그들을 정의하려 했다하지만 이 책을 쓴 청년들은 청년들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명명되고 정의되는 것을 거부한다지금까지 붙여진 온갖 이름들 대신 그저 미운 청년 새끼라고 스스로를 부른다그리고 자신들이 청년세대를 대표한다고 자부하지도 않고그저 ’ 이야기일 뿐이고 거기서 우리를 발견한다면 다행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저자들의 바람대로그들의 ’ 이야기는 많은 청년들의 ’ 이야기와 겹쳐지며 우리를 발견하게 한다.

 

  그들의 솔직한 ’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푸념에 그치지 않는다저자들과 우리는 지금의 한국이라는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성공한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성공 신화를 과시하며, ‘노오력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는 청년들이 한심하다고 이야기한다그러나 저자들도 우리들도 안다. “좋아하는 일꿈이라는 허울을 위해 그 외의 것들을 모두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피폐해져 간다는 것을.”(p. 95.) 일상을 포기하고 마른 걸레처럼 자신을 쥐어짜며 온갖 스펙을 쌓아도 창의성 있으면서도 순종적인 인재라는 모순된 인재상에 미치지 못해 좌절하고겨우 취직을 해도 노동의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며 자신을 소진시키는 삶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청년들의 나약함에 대한 질타로 마무리되는 소위 멘토들의 충고를 듣는 것보다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하는 것이 훨씬 더 위로가 된다.

 

  저자들은 또한 청년들 중에서도 여성들이 약자가 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여성은 아름다워야 하고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드는 여성들은 못생긴 여성들로 치부된다. 1910년대 모던걸들은 사치와 허영성적 방종의 주범으로 지목되었었다. 100년 전부터 차별과 억압은 계속되어, 2010년대의 여성들은 ‘-로 일반화되고 범주화되며 정부가 만든 전국 가임기 여성 분포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로 치부된다같은 청년인 젊은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이 자신이 겪은 차별과 폭력을 이야기해도 듣지 않고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저자들은 청년이자 한 여성으로서 자기답게 살 권리가 혐오할 권리를 앞서는 사회를 꿈꾸고다른 존재가 나를 규정하고 억압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저자들의 이러한 소망과 다짐이 실현되길 함께 바라게 된다.


  이렇게 청년들은 사방이 둘러싸인 것처럼 갑갑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그 현실을 이야기하는 저자들의 문체는 유쾌하고 발랄하다. ‘노오력이 부족하다며 훈계를 늘어놓는 꼰대들열정을 착취하는 고용주들여성들을 잠재적인 연애 대상결혼 대상으로만 보고 평가하는 남자들저자들은 청년들의 일상까지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팍팍한 삶도 웃음으로 승화시키지만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악한다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연대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솔직한 이야기가 밉고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바르고 건실하게 표백된 청년의 이미지만을 진정한 청춘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특히 그럴 것이다하지만 이 책은 누군가가 규정한 청년의 예쁘고 바른 모습을 거부한다누구에게도 규정되거나 정의되지 않고그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그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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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회학 - 서울의 공간, 일상 그리고 사람들 나남신서 1915
김미영 외 지음, 서우석 외 옮김 / 나남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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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서울이 한국 그 자체라고 한다서울은 한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고한국 인구의 5분의 1이 서울에서 산다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쪽방촌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호화로운 호텔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서울은 다채롭고 복합적인 공간이 되었다서울을 도시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책들은 많았지만서울의 다양한 면모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책은 드물었다그래서 이 책서울사회학은 서울의 복합적인 현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그 결과를 연구자들뿐 아니라 대중 독자들과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흔히 서울을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서 분석하곤 한다주민들의 투표 성향에서부터 학생들의 교복 패션까지저자들은 이렇게 단순한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한다사실 강남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강남은 말 그대로 한강 이남의 11개 구를 가리키기도 하고행정구역으로서의 강남구를 가리키기도 한다또는 강남구와 서초구의 ‘8학군을 가리키기도 하고서울의 경계를 넘어 과천시성남시 분당구와 판교 일대까지 포함하기도 한다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적 금 긋기가 풍요롭고 세련된 강남또는 과시적이고 졸부 같은 강남 대 강북의 구도로만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서울을 이루는 25개 구는 주민들의 평균 수명종교적 성향소득 계층의 분포까지 서로 매우 다르다한 도시 안의 지역들임에도.

 

 이렇게 서울은 이질적인 지역들이 모여 만들어진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사회이기에저자들은 인구소득건강종교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울의 현실을 분석한다서울을 강남과 강북 둘로 나눈 통계가 아니라 25개구 전체를 서로 비교한 통계들을 근거로 삼는다지방 경제가 위축되면서 지방 젊은이들의 서울 유입이 늘고 있지만서울의 높은 부동산 가격과 생활비 대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에서는 경제적 상류층과 중산층이 줄고 하류층이 늘어나소득의 불평등이 더욱 심해졌다편의점과 호텔은 예전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하며 서울 시민들에게 복합적인 소비 공간이 되었다통계와 분석을 통해 이렇게 다채롭고 복합적인 서울의 현실과 일상을 더 촘촘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그러나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각 주제를 깊이 파고들지는 못한다사실 각 주제가 깊이 파고들면 단행본 한 권 분량이 될 수 있다특히서울의 한류 씬은 서울의 한류 공간 분석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했는데도 지면상의 한계 때문인지 각 공간을 깊이 있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각 공간의 특성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외국인 관광객 몇몇의 반응을 전하는 데 그칠 뿐이다연구자인 독자들로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것이다대중 독자들도 대상으로 하는 책이고 저자들이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는 것이 보이지만대중 독자들이 읽기에는 딱딱하다도표들과 그래프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지만 흑백 도판과 전공 교재 같은 느낌의 편집이 딱딱한 느낌을 더한다연구자들을 만족시키기도대중 독자들을 만족시키기도 어려울 것 같다.

 

  강남과 강북이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으려 하고주택 문제교육 문제 등 서울에 대해 흔히 거론되는 문제들뿐만 아니라 서울의 더 다양한 현실들을 살펴보려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 있는 시도이다하지만 너무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다 보니 어느 하나도 깊이 분석하지 못하고대중 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보기에는 딱딱하다이러한 단점을 보완해서 (연구자들과 대중 독자들 모두를 포함한)더 많은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으면서 서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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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바꾼다 - 집, 도시, 일자리에 관한 모든 쟁점
박인석 지음 / 마티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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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자우리나라의 어느 도시 어느 길을 걸어도 학교관공서어린이집은 틀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모습이다그 옆에는 겉보기에도 부실한 건물들이 가득하다주차공간은 턱없이 부족해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까지 자동차들에게 점령당하고 있다우리 건축의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고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까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건축이 바꾼다이다.

  

  저자는 다양한 통계 수치들과 법 조항들사례들을 꼼꼼히 분석하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낸다저자가 찾아낸 근본적인 원인은잘못된 건축 정책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행이다그는 건축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건축을 건설처럼 취급하는 제도와 행정이 문제라고 말한다건설은 다리항구도로 등 표준적인 성능을 갖춘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건축은 건축물의 기능과 거기에서 살고 활동하는 사람들주변 장소와의 어울림을 고려해 매번 다른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하지만 현행 제도와 행정에서는 건축물이 건설처럼 표준적인 기능만 하면 되는 것처럼 취급하며건물의 설계 공모를 할 때도 더 좋은 설계보다는 더 싼 설계를 채택한다가장 싼 설계를 채택하고도 법 조항을 교묘히 이용해 설계 대가를 더 깎는다게다가 설계자는 현행 제도상으로 설계 의도에 맞게 공사가 진행되는지 감독하는 감리자가 될 수 없어설계한 대로 지어져야 한다는 상식마저 지켜지지 않는다그리고 별다른 고민 없이 이전에 건물을 만들 때의 관행을 따라 건물을 짓는다이렇다 보니 틀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건물들만 양산되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힘들다.


  현재 건축 관련 행정관행의 문제점들을 뒤집으면 해결책이 보인다건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설과는 다른 기준으로 건축 관련 제도와 행정을 시행하는 것이다설계 공모에서 가격이 아닌 능력으로 설계자를 선저하고설계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다그리고 설계자가 공사 과정을 감리할 수 있게 해 자신의 의도대로 공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자는 건축물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개인의 삶과 공공의 삶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그렇게 하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 도시 공간 재생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그것이 건축의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이다.


 건축가나 건축 관련 행정을 처리하는 공무원행정 관료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는표와 도표법 조항들로 가득한 이 책이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그러나 저자는 이 책이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가 시민들이라고 말한다그가 이 책의 제목을건축을 바꾼다가 아닌건축이 바꾼다로 지은 것은정치 개혁경제민주화도시 재생복지 확대 등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한 과제들 모두를 관통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저자는 건축이 동네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지만그 건축을 바꾸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힘이라고 말한다이 책은 우리가 시민으로서의 힘을 키우면서건축을 바꾸고건축이 세상을 바꾸게 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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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 평양 도시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시각: 1953-2011
임동우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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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중집회. 평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평양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광장에서 행진하는 군인들의 거대한 물결대낮에도 한적한 거리겉보기엔 웅장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호텔도시로서의 면모는 갖추었지만 어딘가 연극 무대 같고 실재감이 없는 유령 도시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그리고 핵 문제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이념적 편견을 배제하고 평양을 바라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건축가 임동우는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에서 피상적이거나 이념적 편견에 물든 시각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양이라는 도시공간을 분석하려 한다.

 

  저자는 평양이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려 하는 도시공간이라고 보고 있다한국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도시 인프라가 완전히 파괴된 평양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그려나갈 백지와 다름없었다이미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 사회주의자들은 대도시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다도시 환경을 개선하려 재개발을 해도 개선된 주거 공간은 부르주아들이 차지하고노동계급은 여전히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차별이 발생한다자본의 논리로 인한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고 모두가 더 나은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도시 계획의 목표이다구역마다 생산 수단을 갖추게 하기 위해 도심 가까이에도 생산 시설들이 있고모든 시민이 휴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 풍부한 녹지 공간을 갖추는 도시그리고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사회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공간들이 있는 도시북한 내부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처음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평양이 보여주는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은 자본주의 대도시의 문제점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평양이라는 도시 공간의 물리적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북한의 정치경제사회 현실을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는 저자의 의도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정치경제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도시 공간은 건축 이론에서 쓰이는 도시 모형밖에 없다저자 서문에서 말한 의도와 달리 본문에서 평양의 도시 공간은 정치경제사회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설명된다저자의 설명을 다양한 도표와 지도들이 뒷받침하는데건축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시각 자료들도 꽤 많이 있다평양의 행정구역과 주요 건축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지도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통일 후 평양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저자의 상상은 참신하지만그 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들은 고찰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평양은 겉치레만 한 유령도시’,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거대한 연극 무대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도시공학적으로 평양을 바라보려는 이 책의 시도는 참신하다하지만 동어반복적인 면이 있고북한의 정치경제사회 현실과 관련해 더 깊이 있게 도시 공간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상상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회주의의 이상이 이루어진 도시는 우리가 지고 있는 자본주의 대도시의 문제점에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줄 수 있을까평양은 어떤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통일 이후 그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에 대해 단초를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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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지음, 최다인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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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은 강간이다매우 당연한 이야기이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2017년 7월, 한 강간 피해자가 자살했다.  그녀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앱 안의 익명게시판에서 자신이 겪어온 성폭행 피해 사례를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 "꽃뱀 같고 역겹다", "남자한테 꼬리쳤는데 넘어오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해 엿먹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란 단어가 아깝다", "공론화 좀 그만 시켜라"라는 악플들이 달렸다. 9개월이 넘도록 이런 비난에 시달린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강간을 부정하는 행동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되고, 끝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미국의 여성 범죄 전담 변호사 조디 래피얼이 쓴 『강간은 강간이다』는 강간은 강간일 뿐이라는 것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증거를 통해 논증한다. 우리보다 성 문화에 있어서는 더 진보적일 것 같은 미국에도 강간 피해자들의 고발을 허위 신고로 치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인격장애가 있는 여자들이 피해자인 척하려고 애쓴 결과다", "강간 신고는 여성들의 생리 증후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여성들을 깊이 불신하는 남성들이 있다. 심지어 여성들 중에도 강간을 강간으로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단적인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성적 자유를 누리려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보수주의적인 여성들도 여성이 헤퍼서 일어난 일이라며 강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들은 오류가 있는 통계 자료를 인용한 자료들을 반복해서 인용하며 허위 강간 신고의 비율을 부풀려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최근 정정된 통계 자료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들만 선택해서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려면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저자는 강간 피해자 보호단체들이 정확하지 않은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도 경계한다. 그녀는 수많은 강간 연구와 통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확인된 수치만을 근거로 든다. 그 결과, 허위 강간 신고는 강간 신고 전체 중 2~8퍼센트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피해자의 신고 철회에 근거를 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의 신고 철회는 용의자의 협박이나 수사과정에서 겪는 압박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과 법정은 피해자를 허위 신고자로 의심할 때가 많고, 심지어 피해자의 성기 사진을 법정에서 공개하거나 피해자에게 강간 당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큰 상처를 입고 기소를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저자는 통계 분석과 함께 다섯 명의 피해 여성들의 사례도 함께 이야기한다. 저자는 피해 사례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책에 소개된 피해자들 또한 사법 당국이나 주변의 몰이해와 비난에 상처 받았지만, 강간으로 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강간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에 반박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책은 강간을 통계상의 수치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으로 이해하게 한다. 


"강간은 나쁜 섹스가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강간은 아예 섹스가 아니에요. 섹스는 합의하에 이루어지고 강간은 그렇지 않죠. ...강간범에게는 섹스일까요? 강간범은 섹스를 섹스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강간은 섹스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죠." 


“강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끔찍해요. 그런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사람들, 가해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자기를 의심하고 혐오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그 사람 편이라고 알려주세요. 명백히 잘못된 일을 목격했다면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침묵을 지키는 것은 중립이 아니에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면은 최소화되었지만, 강간당했다는 사실마저 의심당하고 피해자들이 몰이해와 비난이라는 2차 가해를 당하는 상황, 피해자들이 한 인간이라는 사실보다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급급한 강간 부정론자들의 모습 자체가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우리는 강간이 부정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강간이 부정당하는 세상에서 강간범들은 자유를 얻고 여성들은 더 큰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저자가 말하듯이, 강간은 강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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