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권력과 교회 ㅣ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김진호 외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지금 한국 전체 인구의 19.7퍼센트가 개신교인이다. 그런데 지금의 20대 국회의원 중 25퍼센트가 개신교인이고, 그 이전의 19대 국회에서는 개신교인 의원이 41.5퍼센트나 되었다. 2005년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 3만여 명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그 중 개신교 신자가 40.5퍼센트였다. 그리고 역대 한국의 대통령 12명 중 개신교 장로 출신의 대통령이 세 명이나 된다. 개신교가 하나의 권력으로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가 권력을 가지고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긍정적인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서 민중신학 연구자인 김진호는 신학자 강남순, 한국학자 박노자, 역사학자 한홍구, 문학 평론가 김응교와 ‘권력과 교회’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권력과 교회』는 그들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한국 개신교의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권력의 세습 문제다. 그러나 2018년 1월『뉴스엔조이』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 교회 중 아들이나 사위에게 목사직을 물려주는 혈통 세습이 일어난 교회는 0.45퍼센트에 불과하다. 김진호와 강남순은 근본적인 문제가 혈통 세습이 아닌, 교회의 권력이 성직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권력 구도에서 일반 신자와 여성, 외국인 등의 소수자는 배제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반 신자들이 교회에 의견을 제시하고 비판할 수 없는 통로가 없다. 여성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교회는 그것을 기성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를 부추긴다. 개신교계의 반대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교회의 폐쇄적이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강남순은 말한다.
한편 박노자는 대형 개신교 교회들이 거대한 인맥 네트워크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연줄로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인들에게는 혈연, 지연, 학연뿐 아니라 ‘교연’이라는 연줄이 더해진다. 교회 네트워크는 개신교인들이 사회적 엘리트로 올라설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사회적 자본이 된다. 신자들은 심리 치료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제공하는 대형교회를 선택하고, 교회 안에서도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자산이 비슷한 신자들끼리 뭉치게 된다. 끼리끼리 뭉치게 되면서 외부인들에 대한 배타성도 강해진다. 박노자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런 한국 교회 공동체의 배타성이다. 반이슬람 정서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럽의 개신교인들과 달리, 한국 교회 공동체는 이민자, 무슬림,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 한국 개신교에서 비이성과 광기가 권력 문제와 어떻게 얽혀있는지 살펴본다. 20세기 초반 들어 이성의 힘을 믿는 사회주의자들이 종교의 비과학성을 비판하자 개신교 측에서도 사회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개신교는 북한의 상공업 발달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기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회주의자들의 탄압으로 재산을 잃고 월남한 사람 중 개신교인의 비중이 컸다. 미군정은 이들을 반공주의 청년 단체 서북청년단으로 끌어들였고, 이들은 북한을 사회주의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종교적 사명감으로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했다. 그 이후 주류 개신교는 반공 기조와 독재 정권의 권력에 동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한홍구는 극우 성격을 띤 대형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좌파의 행보 또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신교 안에서 반지성주의가 너무 강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학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는 문학비평가 김응교는 권력추구형 성직주의, 건물 중심의 성장주의와 세습, 승리주의로 포장된 비겁한 낙관주의를 비판한다. 권력을 추구하기보다 거룩한 삶을 추구했던 종교개혁가들과 달리, 한국 주류 개신교의 목사들은 권력에 아첨하며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세력과 태극기 부대와 결합해 사회를 부패시켰다. 예수는 눈에 보이는 큰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한국 교회는 건물로서의 교회 성장만 중시한다. 몇몇 대형교회는 대형 쇼핑몰과 맞먹는 규모의 교회 건물을 세우고 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목사직을 세습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비겁한 낙관주의자들은 자기성찰 없이 권력에 아첨한다.
이들의 개신교 비판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잣대를 기준으로 한 일방적 비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 또한 사회 안에 있고, 신자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이다. 게다가 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처럼 교회 밖 사회의 구성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개신교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까지 막아버리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물론 종교와 사회를 함께 사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단순히 개신교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개신교가 어떤 영성을 보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강남순은 예수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모든 종류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과 환대라고 보고 있다. 그녀는 제도화되고 절대화된 종교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김응교는 한국 개신교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의 내용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가져오고 왜곡해 사람들을 세뇌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는 교회가 타자를 괴물로 만들고 응징하는 증오의 신앙을 넘어 권력을 비판하고 자기 자신을 철저히 쇄신할 수 있는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시도조차 성경의 진리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겠지만, 사회적 영성은 사회와 교회가 공존하고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 개신교인이 신자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구원은 세상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