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노트 - 알고 싶은 클래식 듣고 싶은 클래식
진회숙 지음 / 샘터사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됐을 때 '책에 실린 QR 코드로 클래식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갔다. 종이로 된 책 중에서 QR 코드를 활용하는 책은 처음 봤으니까. 음악은 백 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직접 듣는 것이 더 나으니, 음악을 주제로 하는 책으로서는 음악을 직접 들려주는 게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이미 3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신기한 신제품을 처음 써 보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친절하게도 책 서두에서부터 QR 코드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QR 코드를 비교적 정확히 인식해 주는 앱들까지 추천해 준다. 사용법대로 QR 코드를 인식하니 정말 해당 곡의 유튜브 영상이 뜬다.


책에 실린 QR 코드를 QR 코드 앱으로 스캔하면 해당 곡의 유튜브 영상 링크와 연결된다.


실제로 책 속 QR 코드를 스캔하면 이런 영상 링크가 뜬다. 이 영상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남주인공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안타까운 것은 유튜브의 특성상, 해당 계정이 사라졌거나 저작권 문제로 영상이 삭제되는 등의 문제로 지금은 연결되지 않는 링크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이다. 해당 링크가 보전되도록 수시로 점검, 업데이트하겠다지만, 출판사가 마냥 이 책만 관리할 수는 없으니 힘든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QR 코드는 320여 개나 된다. 그래서 링크가 연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내가 직접 유튜브에서 곡 이름으로 검색해서 다른 버전을 찾아 들었다. 320여 개의 곡을 다 듣다 보니 이 책을 다 읽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덕분에 한 달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 


책에 실린 QR 코드로 볼 수 있는 영상 중 하나.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림피아의 아리아'. 기계 인형 올림피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인데, 올림피아 역 소프라노의 기계 인형 연기가 인상적이다.


 QR 코드로 직접 해당 곡을 들으니 텍스트로 된 설명만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프시코드 같은 옛 클래식 악기 연주를 직접 들으니 그 악기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연주하며 어떤 음색을 지녔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들에서 피아노 멜로디 자체는 아름답지만 오케스트라 파트는 피아노의 반주 수준으로 빈약하다는 이야기도 직접 들으니 납득이 됐고. 아리아의 경우는 그 곡이 오페라 안의 어떤 장면에서 나오는지를 직접 볼 수 있어, 그 곡이 어떤 맥락에서 불리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오페라 속 성악가들의 연기와 의상, 무대를 함께 볼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은 QR 코드라는 장치에만 기대지 않는다. 클래식 곡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나, 클래식 음악가들의 사생활 이야기로 내용을 채우는 책들과 달리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의 ABC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부터 클래식 악기들, 음악 이론과 곡의 형식, 음악 상식들까지. 오케스트라에는 왜 지휘자가 필요한지, 왜 오보에의 A음으로 오케스트라 악기 전체를 조율하는지, 현대에 탄생한 12음 기법은 어떤 거인지, 실내악, 환상곡, 교향곡, 협주곡은 어떤 형식의 곡인지 등등. 초중고등학교 음악 시간 이후로 음악 이론은 잊어버렸어도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내용의 질에 있어서나 QR 코드라는 새로운 장치에 있어서나 다른 클래식 책들과 차별화되는 책이다. 
한 번만 본 지식은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지니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으면 좋을 것이다. 워낙 많은 곡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곡을 종종 꺼내 들어도 좋을 것이고. 한 번 읽어보고 끝내기보다는 곁에 두고 오래 읽어 보고 싶다. 

P.S 1. 저자는 미술 비평가 진중권의 누나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닮지는 않지만, 누나나 동생이나 각자의 분야를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데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멜라니 C가 부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넘버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정선아가 부른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한국어 버전 '어떻게 사랑하나'


P. S. 2. 오페라를 원어로 공연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넘버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원곡과 한국어 버전을 예로 들었는데, "...하나, ...했어, 라는 유아적인 뉘앙스의 종결어미 때문인지,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갈등하는 마리아의 고뇌가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라는 말에서 한국어 버전을 깎아내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원어 공연의 중요성으로 든 근거들은 납득이 되지만 '유아적인 뉘앙스'의 종결어미라니. 

  오페라와 같은 이유로 수입 뮤지컬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원어로 공연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라이센스 뮤지컬도 좋아하는 뮤덕으로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가 예시로 든 두 영상 중에서는 나는 오히려 한국어 버전에 더 공감하고 감동했다. 한국어로 개사되면서 원어 가사에 맞춘 리듬과 강세가 어그러지고 가사 속 미묘한 뉘앙스, 의미가 뭉뚱그려지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국어로 가사를 들었을 때 노래의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의미 전달은 한국어 자막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했지만, 무대와 한국어 자막으로 시선이 분산되는 것보다 한국어로 바로 듣는 것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 유리하다. 그리고 프랑스 뮤지컬의 라이센스인 <노트르담 드 파리>나 미국 뮤지컬의 라이센스인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넘버들처럼 의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음악적인 운율 모두를 살리는 번역이 있다. 이런 좋은 번역, 좋은 라이센스 공연도 필요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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