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쉘터 공간 - 예술과 공학이 만나다 스마트 쉘터 공간 1
고경호 외 지음 / 미진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쉘터shelter'는 피난처, 은신처, 오두막, 수용소, 쉼터, 주거지, 보금자리 등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이다. '스마트 쉘터smart shelter'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기능적이고, 더 경제적이고, 더 안전하고 편안하며 지속 가능한 주거지를 말한다. 자연재해와 테러, 전쟁은 과학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고, 어떤 대책을 써 봐도 주택난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느 때보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한 때다. 그래서 2015년 9월부터 스마트 쉘터 공간을 만들기 위한 철학, 건축, 예술, 공학 분야에서의 합동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그 3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 사보이 하우스. 벽이 아닌 기둥만으로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필로티 구조는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지진에 취약하다.


  1부에서는 미술을 통해 '더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고민하고 있다.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어떤 사람은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보기에 아름다운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할 것이다. 모더니즘에서는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기능하는 공간, 이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공간, 경쾌하고 명확해서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는 공간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았다. 그러나 기능과 아름다움 모두를 갖춘다는 것은 모순이다. 건물을 벽이 아닌 기둥만으로 지탱하는 필로티piloti 구조는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건물 전체에 투명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지진에 의한 진동에는 취약하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의 획일성에 반발해 건물 하나 하나의 개성을 강조하고, 모더니즘 건물이 배제했던 장식을 다시 건물에 넣거나 한 구조가 한 가지 기능을 갖는 모더니즘 건물과 달리, 한 구조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개성적으로 보였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도 그 장소가 가지는 개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 두 건축 모두 인간의 실질적인 삶, 그 장소에서 사는 사람들 고유의 전통과 개성, 삶의 방식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하우스>. 누나 마르가레테를 위해 비트겐슈타인이 건축 전 과정을 전담한 이 저택에서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전통 양식, 화려한 장식은 배제되어 있다. 


  미술가들과 건축가들은 인간의 삶이 공간에 반영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누나 마르가레테가 살 저택 '비트겐슈타인 하우스'의 건축을 맡았다.(기초 설계는 비트겐슈타인의 친구였던 파울 엥겔만이 시작했고, 비트겐슈타인은 설계 초안의 일부를 변경하고 내부 설비 디자인과 건물의 완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전담했다.) 집의 중심이 되는 지상 1층을 예술가들이 공연하고 교류하는 장으로 만든 것은 근대 이전부터의 가문의 전통을 따른 것이었지만, 전통적인 양식과 화려한 장식은 거부했다. 그에게 윤리는 삶에서 가치 있는 것, 진실로 중요한 것을 탐구하는 것이었고, 집을 짓는 것은 거주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저택이 있던 빈의 심각한 주택난과 계급 갈등을 가리는 전통 양식과 장식을 배제했다. 그러나 이 공간조차도 비트겐슈타인에게는 거친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순수하고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 낡은 오두막집에 머물며 철학을 연구했다. 


안드레아 지텔의 작품 <A-Z 이스케이프 비히클>에 사용자가 들어가 있는 모습


 한편 미국의 미술가 안드레아 지텔은 다양한 쉘터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1997년 처음 전시되었던 <A-Z 이스케이프 비히클 A-Z Escape Vihicles>은 바퀴가 달린 욕조 모양의 스테인리스 통 두 개가 맞붙어 있는 형태의 작품이다. 작품 내부는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꾸미고 변경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 억압, 구속에서 벗어나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현대인을 위한 쉘터이다. 그녀 밖에도 여러 미술가들과 건축가들, 디자이너들이 유목민들처럼 일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 누구나 조립하고 공유하고 배포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 주택 문제에 시달리는 서민들이나 전쟁으로 집을 잃은 난민들까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안이 되어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2부에서는 공학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스마트 쉘터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건축가 김덕수는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과 보행자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 공간, 통합정보센터가 도시에서의 정보 처리의 중심 역할을 하고, 대중교통의 환승 거점에 공용 사무 시스템, 다목적 문화 시설이 설치되며 외곽 지역에는 직접 농산물을 생산해 지하 구조물로 도시 곳곳에 농산물을 배송하는 실내 재배 시스템이 설치된 도시 공간을 제안한다. 건축가 송복섭은 스마트 쉘터에서 기능성, 경제성, 지속 가능성, 안정성, 편안함, 사회적 기능, 미학적 아름다움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고려되어야 할 특성들이다. 그리고 공간을 건물-가로-시설-지구-도시-광역 등의 단위로 분류하고 공간 단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스마트 도시를 계획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가 김언용은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전 세계의 도시가 개성을 잃고 획일화될 수 있고, 효율적인 도시 관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비판들을 이야기하면서, 스마트 공간이 가진 위험성 또한 잊지 않는다. 건축가 지승열은 아직은 사람의 뇌파(뇌세포가 활동할 때 일어나는 전류)가 전달하는 정보에 기반한 자동화 시스템이 스마트 쉘터에 적용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뇌파와 뇌파를 이용하는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3년 동안의 연구 결과라지만 아직까지는 큰 그림을 제시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 큰 그림을 실질적인 세부 내용으로 채워나가는 것은 후속 연구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사람들이 주택난, 자연재해, 전쟁과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고민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예술과 공학이 서로 접점을 가진다기보다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접점을 찾으며 더 좋은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도판이 작아서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특히 공학 파트의 스마트 쉘터, 시스템에 대한 도판들) 도움이 되지 못하고, 2부의 공학 파트가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읽기에 좀 어려운 것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