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 그는 풍류를 아는 딴따라다. 레게 풍의 흥겨운 비트음악으로 그 당시로는 꽤나 신선했다. 무대 위를 장악하며 관객과 호흡하고 음과 악의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몇 안 되는 뮤지션임이기에 우리는 그를 국민가수로 부른다. 급기야는 특유한 창법을 따라 모방하는 가수들도 생겼으며 맹목적인 추종현상은 아니더라도 그를 아끼는 팬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강한 도전에 직면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격으로 발 디딜 곳 없는 지뢰밭을 걷고 있는 심정일 테다. 



        MBC의 대표 예능 일밤의 야심작 <나는 가수다>는 침체된 상황을 일거에 종식시키고자 야심차게 진행한 기획프로그램이다. 급기야는 왕년의 소방수 김영희 선임PD를 다시 전장에 내세우고 국내에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섭외하여 리얼버라이어티식 서바이벌게임을 표방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 자리수로 추락했던 시청률을 단박에 두 자리 수로 끌어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문제는 가수를 전업으로 하는 프로들을 상대로 서바이벌게임을 시도했다는 본질적 위험성을 안고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예견된 문제는 러시안룰렛처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김건모라 할지라도 룰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취지를 벗어나도 크게 엇나갔다. 훼손된 진정성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불치병과 같다. 더욱이 예능프로그램이라면 봐주기의 악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들은 대중성을 인정받은 프로가수다. 꼴찌를 한 당사자로서야 자존심 구기고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겠지만 겸허하게 수용하는 담대함을 보였다면 더 큰 박수와 관심으로 위상을 높였을지 모른다.  



        당사자의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디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공정하지 못한 결과와 떳떳하지 못한 자세는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다. 군중현상은 빠르고 넓게 전이되며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리얼리티를 생명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일방적인 변경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미덕을 가장한 속임수의 일종이다. 관용과 정의를 혼용해서는 아니 됨에도 이를 망각한 채 안이하게 대처한 예견할 수 있는 결과다.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신념과 결부시켰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충돌할 때, 정의는 무엇이 옳은가를 풀어주는 좋은 재료이자 키워드가 된다. 그 속에 녹아 있는 정의의 요체는 공정함에 맞닿아 있다. 공정의 프레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정작용을 하는 엄격한 심리적 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번 일련의 사건은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서 발생한 미필적 고의가 다분한 장면이다. 기회를 부여하고 규칙을 깨트릴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도 훼손되거나 어그러져서는 명분은 허상에 불과하다. 제 아무리 취지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가 끝까지 고사의 의사를 분명히 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가수의 본질이야 음악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그로부터 잉여된 관심을 먹고 공생한다. 요즘이야 인디밴드의 활성화로 대중성과는 유리된 진정한 음악에 심취하는 팬층이 두터워지긴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가수와 인기도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이것은 인기가 곧 실력이라는 등가공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기실 따지고 보면 실력이 없다면 가수로서의 생명력은 단명하기 마련이다. 아직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탄탄하게 누리는 실력 있는 가수들을 보면 설명 가능한 간단한 이치다. 물론 비주얼이 강한 빠른 템포의 아이돌스타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김건모 자신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제작진의 과감하지 못한 결단과 관중의 의견을 묵살한 행위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쌍방향 소통을 추구하는 미디어 시대에 일방적인 통행은 자칫 위험하다. 판정단의 자질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관중의 눈은 날카롭다. 예리한 그 날에 베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이제라도 관중의 눈과 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예능프로그램을 지양했다면 더욱 겸허해야 한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은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다시 김건모를 생각해 본다. 동네 개구쟁이 형처럼 소탈해 보이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그에게 이번 일로 한층 겸손해질 것으로 믿는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흐려진 물을 정화하는 일 또한 본인의 몫이다. 석연치 않은 쓴맛을 선사했지만 이렇다 할 스캔들 없이 20여년을 국민가수로 굳건하게 지켜 온 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한방이 있는 뭐니 뭐니 해도 클린업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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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2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MBC가 점점 더 싫어집니다........ ^^
(이번에 도입한 수많은 경쟁 프로그램들 보셨죠? 숨 막힙니다. 경쟁 사회, 1등만의 사회)

곡우님, 오랜만이셔요. 늦었지만 세째 축하드립니다!

穀雨(곡우) 2011-03-23 17:16   좋아요 0 | URL
tv를 잘 보질 않는데, 집사람 몸조리하는 덕에 보게 되었어요.
취지도 그렇고 발상이 극을 달해 도를 넘었다는 생각에 안타깝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축하 감사합니다.^^
 
49일의 레시피 키친앤소울 시리즈 Kitchen & Soul series 1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예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는 고유명사다. 그러나 엄마의 속은 모든 것을 품는다. 엄마를 떠올리면 엇비슷한 관념이 떠오르는 것은 엄마가 가진 공통점이자 속성이다.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고 모성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강하다. 엄마는 그렇다. 엄마가 가진 본성은 시나브로 밝고 따스하다. 그래서 엄마를 연상하면 대개 정성이 담긴 음식과 매개된다. 엄마의 손맛으로 빚어낸 음식은 특별한 레시피나 식재료가 아니어도 최고가 된다. 왜? 엄마가 만들었으니까.




        <49일의 레시피>는 오토미, 엄마를 다룬 이야기다. 그것도 가슴으로 낳은 엄마의 이야기다. 일본작가 이부키 유키의 정갈한 이야기는 NHK드라마로 각색되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엄마라는 상징성을 통해 해체된 가족구성원이 응집하며 구심점을 찾아가는 감성적인 이야기다. 그 속에 담긴 엄마는 당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햇살 같은 어머니로 그려진다. 닳아도 다시 샘솟는 화수분처럼 ‘엄마‘에 관한 레시피는 뭉클하기만 하다. 




        실제 이야기 속 가족구성원들은 현대인들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겹쳐진다. 가족이 결합하고 해체되고 다시 결집되는 그 과정을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타고 매끄럽게 흐른다. 그 속에서 찾은 믿음과 사랑,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정리는 경쾌하다. 게다가 일본 특유의 정갈하고 깔끔한 배려가 곳곳에 드러난 설정은 순조롭다. 하지만 칼칼하지 못한 것은 정서적 차이일까?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레시피를 준비하고 49일의 기간 동안 일어나는 해프닝을 통해 사랑의 참의미를 되새긴다는 발상은 참신하나 어색한 상황설정이 거슬린다.




        밑도 끝도 없이 출연하는 주변 인물들을 도려내고 정돈하면 결국 엄마를 향한 가족구성원들의 본질은 “엄마의 재발견”으로 해석된다. 엄마와 매개된 그들은 편협한 시선을 교정하고 매몰된 사랑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얼개의 탄탄함에 비해 조금은 지나치게 밀고 나간 상황적 설정에 반감된 느낌이다. 엄마의 사적 영역에서 풀려난 파랑새처럼 다소 비현실적이며 몽환적인 구조다. 분명 문화적, 기질적 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간극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취약한 약점을 지니고도 울 샘을 자극하는 이유는 엄마라는 이유다. 가슴으로 낳았다지만 엄마 오토미는 먹먹해지는 그런 존재다. 당신의 부재가 주는 공백을 메워주기 위해 꼼꼼하게 레시피를 만들고 그림동화를 만든 이유는 가족을 견인하는 엄마의 위대한 사랑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49일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개하는 레시피의 효능은 놀랍다. 꺼져 가는 불씨를 지피고 해체된 가족을 끌어안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마 작가 이부키 유키는 엄마를 통해 가족이 주는 역할을 되새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자유분방한 시대상황 속에서 진정한 사랑만이 가치 있다는 명제를 진하게 우려낸다. 하지만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외도를 합리화하는 모습은 거슬린다. 설령 명분이 있다 해도 다시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회복한다는 소재는 설득력이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갈등을 해소하고 각자의 삶과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듯 엄마가 남겨둔 유산을 통해 잊힌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와 이어지고 끊어진 연결고리가 다시 매듭지어 지는 이야기가 따사롭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지만 엄마를 알지 못한다. 엄마는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무모한 믿음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에서 엄마라는 관념을 잊힌 감성의 우듬지에서 들춰 내 엄마를 정의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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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3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요리책, 진짜 요리책이 아니고 요리에 관한 책에 관심이 좀 많아서...
이 책 장바구니에 있어요~

새엄마가 남겨준 레시피에 관한 내용이라죠~^^

穀雨(곡우) 2011-03-23 13:49   좋아요 0 | URL
전 요리는 잘 하지 못하지만 관심은 무척 많거든요.
언젠가는 잘 하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아, 일본작가의 책은 하루키외에는 그닥 정서상 맞지를
않는 건, 양철댁님이랑 비슷해요. 그나마 이 책은 따뜻한
감성이 느껴져 무난했답니다.
 

아이의 기별을 안 지 꼭 39주만에
나에게 왔다. 

아슬히 까물어지던 출산의 두려움을
살며시 밀쳐 내고 아이는 무사히 세상과
조우했다.

핏덩이에 뒤엉킨 아이, 뜨겁다.
홧홧한 또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이내
흐릿해진다. 목울대를 뻗어 조여오는
압박이 나를 타고 흐른다.

경이로운 이 순간, 나는 충만해진다.
아이가 발산하는 아우라에 오염된 모든 것이
사그라지고 순결의 중심으로 흡수된다.

사랑의 스펙트럼을 쪼갠다면 이곳이
시초이고 터전이겠다.

세상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세파에
물든 고착된 경험의 찌꺼기가 만들어낸 불안이
찰나에 교차하고 이내 뭉개진다.

그래도 벅차다. 아이의 삶의 끈이 어디로 이어
지든 나는 응원할테다. 그것이 곧, 기쁨일테니...

 


p.s) 오래도록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내의 출산이 임박하면서 손 갈 곳이 많아졌습니다. 태어난 아이외에도 이미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아내의 자리를 메꿔야 했습니다. 비록 몸은 고단하고 피로감이 엄습하지만 무거워진 몸을 지탱하느라 고생한 아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 엄마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무겁고 큰 지를 새삼 느껴봅니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공개수업에 참여하면서 아빠의 자식교육에 대한 비협조적인 현실에 올바른 교육의 본령이 어디인지를 되묻게 되었습니다. 무엇답다는 그 무엇이 아이의 세계에는 기성세대의 그늘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았나 봅니다. 물론 습관이 하루 아침에 변하겠냐마는 신선한 자극은 변화를 위한 밑거름이라 믿어 봅니다.

그리고 아내는 걱정하여 주신 님들 덕분에 순산했습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힘을 비축해야 된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고기를 구워 먹고 그 저녁을 보낸 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늦은 밤 이미 시작된 진통에도 불구하고 몸을 씻고 새사람을 맞을 준비를 마친 후 1시간만에 순풍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았답니다. 그 덕에 아내는 통증을 없애주는 무통주사를 맞을 시기를 놓쳤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시간은 다시 두 녀석의 젖먹이 시절로 회귀했습니다. 이제는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나눠주고 처분해 버린 그 모든 아기용품이 낯설기만 합니다. 마트에 진열된 아기용품에 먼저 눈이 가고 아이의 울음소리에 예민해지는 걸 보면 경험이 참 중요한가 봅니다.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이야 서툴고 덤덤해서 아내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기쁘다는 말, 외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습니다. 제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에도 기쁨이 용해되어 있었나 봅니다. 가족은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명제는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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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들이 태어나던 순간들
    from 가보지 못한 길 2011-03-23 23:14 
    오월햇살 네 엄마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문밖에서 겁 많은 네 엄마의 불안을 주워 담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가 노래 못 부르는 것은 나를 닮지 말고 뽀얀 속살은 네 엄마를 닮았으면 하다가도 저어기 네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릴때면 여자이기보다는 남자이기보다는 예쁘다기보다는 선하다기보다는 그저 너와 네 엄마가 건강하기를 햇살처럼 들풀처럼 건강하기를 병원 복도를 동동거리는 동안 창 밖엔 오월 햇살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한주 /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
 
 
Arch 2011-03-2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일테면 아빠의 출산기인데, 저는 왜 이렇게 설레일까요~

穀雨(곡우) 2011-03-21 15:06   좋아요 0 | URL
arch님 감사합니다. 전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pjy 2011-03-2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이제 많이 고단하고 낮밤이 바뀌게 되고 살짝 짜증이 나겠지만, 그보다 더 행복하실거예요~

穀雨(곡우) 2011-03-21 15:07   좋아요 0 | URL
고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그리고 애국자와는 거리가 멀답니다.^^
pjy님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3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동이 딸 하나 낳아서...남편에게 이런 멋진 시도 선물받고 싶고 그런데 말이죠.
너무 너무 축하드려요, 근데 피곤하고 고단한 날들의 시작이겠군요~^^

穀雨(곡우) 2011-03-23 13:50   좋아요 0 | URL
시라고 하기에는 발로 쓴 것에 가깝습니다. ^^
축하,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양철댁님도 늦둥이를.....ㅎㅎ

감은빛 2011-03-2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저도 첫째와 둘째의 터울이 조금 있는데,
오랫만에 다시 갓난아기를 키우려니 안해본 일처럼, 낯설고 힘들더라구요!
첫째때는 이럴 때 어떻게 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잘 생각나지 않구요.
곡우님께서는 더욱 낯설것 같은데,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

穀雨(곡우) 2011-03-23 16: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낯설기도 하지만 모든 게 신기합니다.
잊힌 기억을 하나 둘 끄집어 내서 퍼즐처럼 조합해 나가는 기분처럼 말이지요..^^

위 두아이와 터울이 커서 그런가 봅니다.
감은빛님의 응원에 힘을 얻어 갑니다.^^
 
나는 아버지입니다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물고기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가 각박해지고 냉혹해질수록 따뜻함에 대한 갈망은 본능적으로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드라마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이야기나 콧방울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이야기에 끌리게 된다. 이러한 감정 인자를 구동하는 조합들은 우리 몸속에 퍼져 있는 따뜻함의 감각점을 자극하는 매개체이자 더불어 사는 것의 진정한 참 가치를 일깨워주는 좋은 재료가 된다. 그러하기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불리한 상황을 긍정으로 바꾸고 한계를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도전은 더욱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경우라면 삶은 더욱 경이로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신체적 불리함, 소위 장애에 대해 편견의 늪에 사로잡혀 차별을 구조적으로 생산해 낸다. 장애는 불편함의 허울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다름에서 오는 차별은 제대로 된 명분이나 구실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주어진 조건이 누구에게나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같다. 나는 차별에서 오는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부정적인 사회 현상이나 관점에 먼저 시선이 고정된다.

 

        이 책 <나는 아버지입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스토리다.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 릭 호이트와 아버지 닉 호이트의 믿기지 않는 마라톤 역주를 보여주는 차가워진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이야기다.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함께 레이스를 펼치고 정상인도 하기 힘든 철인3종경기를 치러 낼 때마다 그 감동의 선율은 힘차게 울려 퍼졌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의지가 빚어 만든 성공스토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기저에는 가족애, 의지, 조화의 긍정적인 요소를 위시해서 고착화된 편견의 시선을 깨트리는 집념이 어우러져 있다. 호이트 부자가 실제 포기하고 안주했다면 개인적인 일로 그쳤을 테다. 그러나 아버지 닉과 어머니 주디의 불굴의 의지가 팀 호이트를 세상으로 밀어 낸 원동력이다.

 

        성공의 반대말을 실패라고 한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첩경이다. 도전하고 부딪히고 넘어지는 동안 우리는 시나브로 성공에 다가선다. 그러므로 성공의 진정한 반대말은 포기다. 포기는 모든 상황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심각한 언어장애가 있고 신체의 70%이상이 움직이지 않는 불편한 몸을 가진 릭 호이트가 포기를 했다면 아버지 닉 호이트가 장애를 가진 아들의 불행에 대해 절망 속에 갇혀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포기다. 실제 이들 부자의 영상은 유트브에 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해서 감동의 전율을 만끽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 모두 포기를 모르는 그들 부자에 대해 경이를 표했을 테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고 능력에 따라 천양지차라 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삶을 경이롭게 만들고 참가치를 되새기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아울러 차별에 대한 관점은 인식의 문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골은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 사회 전 방위 모든 영역에 차별은 침투해 있으며 무엇보다 기형화된 신체만큼 차별은 무겁다. 기실 차별은 다르다는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인식의 오류다.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과 비아냥거림, 무능력으로 격하시키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가 그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일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차별의 시선 또한 동일한 이유다. 인간답게 살 권리, 즉 행복추구권은 천부인권이다. 태어나면서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팀 호이트는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고독하고 지난한 경주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부성에 대한 위대함이나 장애를 극복한 성공스토리에 감명 받기 이전에 차별에 대한 문제는 생각을 환기시키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우리보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태도를 견지하는 사고가 강한 미국조차 이러할 진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하겠는가. 어디선가 제2, 제3의 팀 호이트가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펼치고 있겠으나 그들의 가녀린 노력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보아 알 수 있듯 사회적 편견을 허무는 따뜻한 관심이 절실하다. 장애인에 대한 소외를 그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마땅히 존중해야 할 권리로 인식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더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이행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 닉 호이트가 아들과의 소통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 붙일 수 있었던 가치의 본질은 다름의 차이를 마음의 눈으로 보았고 이해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마라톤 42.195㎞ 64차례ㆍ보스턴 마라톤 대회 26차례(1982~2005년까지 24년 연속완주, 보스턴 대회 최고 기록 2시간 40분 47초)ㆍ세계 철인3종경기 6차례ㆍ단축 철인3종경기 206차례 완주 / 미국 대륙 6000㎞ 횡단.

 

        팀 호이트가 세운 기록의 향연이다. 놀랍고 또 놀랍다. 수치상으로 드러난 기적적인 업적에 놀라기보다 그 속에 담긴 위대함에 더 놀라게 만든다. 위대함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존감과 집념, 모험, 끈기와 어우러져 직관의 힘이 발휘될 때 표출된다. 팀 호이트는 아버지의 격려와 헌신적인 사랑과 아들의 끈기, 도전정신이 뭉쳐 만든 위대함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주옥같은 가치는 바로 위대함의 근원, 긍정의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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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1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해피 뉴 이어. ^^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차 한잔과 음악과 읽기를 잘 했어요.
저런 분들에게 숙연해지고, 자신이 창피해지는 이유는.... 노력과 최선의 문제겠죠.
남들과 비교는 중요하지 않다는, 나의 상황에서 얼마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그리고...... 팀 호이트의 아버지, 아아,, 저도 저런 어머니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맨날 아이와 싸우기나 하고. ㅠ

穀雨(곡우) 2011-02-10 13:0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투닥투닥대는 여느 평범한 일상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잘 살아 가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이마저도 없는 냉혹한 무관심이나 무자비가 더욱 문제겠지요.
그래서 세상은 따뜻한가 봅니다. 마녀고양이님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말이지요....ㅎㅎㅎ

양철나무꾼 2011-03-19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세요?
곡우님 주니어는 건강하게 태어났나요?
여러가지로 분주하고 바쁘시겠네요.
건강하시구요~^^

穀雨(곡우) 2011-03-21 11: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소원했습니다.
염려하여 주신 덕에 무사히 이쁜 딸을
낳았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분주한
삶의 연속입니다.^^
 

 

        아내를 안해라고 부르는 옛말이 있다. 아내의 어원이 어디에서 유래했느냐 데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중 아내(안해)를 '집 안의 해sun'라는 좋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내에 대한 호칭이 무엇이든 생애를 통틀어 가장 밀접하고 살가운 사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감정이 무뎌지고 옅어져 남남처럼 냉랭한 사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소중함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몰라서다. 적게는 20여년 많게는 40여년을 남남으로 살다 살 부비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여간 인연이 아니다. 

 

        아내에 대해 시답잖은 썰을 푸는 이유는 지금 아내는 부재중이다. 아내는 생리학적 가임기간에 있으나 노산의 기준점에 걸려 있으며 현재 31주, 만삭이다. 복중 아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란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의 약한 몸 상태다. 배가 뭉치고 돌처럼 단단해지기를 숱해 반복되는 현상이 최근 빈번하게 일어났다. 큰일이야 있겠냐는 마음과 두 번의 출산경험이 그럴 수도 있다는 안이함을 키웠다.

 

        금요일 오후 아내는 정기검진차 병원에 들렀다. 요사이 일어난 변화에 대해 무덤하게 던진 말이 담당의사의 입을 통해 당장 입원하라는 급박함으로 돌아왔다. 심전도결과 부정맥이 간헐적으로 보이고 자궁이 미세하게 열린 상태라고 한다. 그렇다고 당장 출산을 한다든지 수술을 하여야 할 정도는 아니라 황망함 속에 다행이다. 아내는 그래도 꿋꿋하게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수화기 저 편 너머를 통해 흘러오는 차분한 음성이 전광판의 광고처럼 한 자 한 자 휙휙 빠르게 흐른다.

 

        아내는 아이들과 내 걱정이 우선이다. 복중태아도 소중하겠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말문이 막힌다. 별 일 아니라는 말도 입원하면 홀로 있을 가족들은 어떻게 하냐는 그 말도 누군가의 애석한 기별처럼 꺼끌거린다. 나는 아내가 여자이기 이전에 어미임을 망각했다. 어미의 넉넉하고 넓은 모성의 본질을 잊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다. 뭐라고 말을 넘겨주기도 전에 걱정의 실체를 만들어 올리는 아내의 생각이 못 마땅하기 때문이다.

 

        겨를도 없이 버럭 내 지른 까칠한 말에 아내도 나도 당황했다. 이내 후회가 태산처럼 밀려든다. 그렇게 아내는 입원했다. 주말 내 병원에 들러 아내를 위로한 후 두 아이와 아내가 없는 휑뎅그렁한 집을 지켰다. 철부지 아이들에게도 아내의 부재는 컸다. 떼를 쓸 상황, 고집을 부릴 상황에서 아이들은 눈망울을 굴리며 제 어미를 먼저 떠올리는 눈치다. 고맙고 또 고맙다. 언제 이만큼 훌쩍 자라버렸는지 아이들의 생각꼭지에 대견해진다. 무엇보다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 만큼인지를 가족들은 제 각각 깨달았다. 아름드리나무처럼 쉴 자리를 만들어주고 곰살맞게 중심을 잡아 주던 아내의 자리를 말이다.

 

        안해가 집 안의 해에 비유한 그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공감이 간다. 투닥투닥 사소한 일로 서로의 속을 상하게 하고 오기를 부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별 일 아닌 일에 웬 호들갑이냐는 주책이겠으나 무사귀환을 소망한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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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18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해’라는 말 속에 그렇게 멋진 뜻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무사귀환 하실 수 있도록 저도 기도드리겠습니다.

穀雨(곡우) 2011-01-20 09:16   좋아요 0 | URL
무사귀환했습니다. 나무꾼님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혜덕화 2011-01-1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님의 글에서 반듯하고 정선된 느낌을 받아서 가끔 들러서 읽고 갑니다.
무사히 돌아오실 거예요._()_

穀雨(곡우) 2011-01-20 09:25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꾸준하질 못 해 블로그 관리가 엉성합니다.
그러니 글도 삐뚤어지고 두서가 없는 게 많습니다. 정선된 글로 추켜 세울 바는
못 됩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즐거워진답니다.^^

볼 건 없지만 자주 놀러오세요....^^


마녀고양이 2011-01-1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세째 임신 축하드리고, 당연히 무사귀환 하실 겁니다.
그런데 맘 고생이 크시겠습니다. 날도 추운데.

가족이란게 없으면 부재가 무척 크더군요. 소중함도 느끼게 되고.
잘 해드리셔염... ㅎㅎ... 임신과 출산이란게 보통 힘든 일이어야 말이죠.

여하간.... 좋으시겠다, 세째. 부럽습니다. 저는 아이 하나인데, 너무 노산이 될지라 포기 상태거든요. ^^

穀雨(곡우) 2011-01-20 09:30   좋아요 0 | URL
세째,....아직도 현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뒤늦게 가진 아이라서 더 그런가 봅니다.

마녀고양이님, 염려해 주신 덕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11-02-01 0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