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 그는 풍류를 아는 딴따라다. 레게 풍의 흥겨운 비트음악으로 그 당시로는 꽤나 신선했다. 무대 위를 장악하며 관객과 호흡하고 음과 악의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몇 안 되는 뮤지션임이기에 우리는 그를 국민가수로 부른다. 급기야는 특유한 창법을 따라 모방하는 가수들도 생겼으며 맹목적인 추종현상은 아니더라도 그를 아끼는 팬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강한 도전에 직면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격으로 발 디딜 곳 없는 지뢰밭을 걷고 있는 심정일 테다. 



        MBC의 대표 예능 일밤의 야심작 <나는 가수다>는 침체된 상황을 일거에 종식시키고자 야심차게 진행한 기획프로그램이다. 급기야는 왕년의 소방수 김영희 선임PD를 다시 전장에 내세우고 국내에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섭외하여 리얼버라이어티식 서바이벌게임을 표방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 자리수로 추락했던 시청률을 단박에 두 자리 수로 끌어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문제는 가수를 전업으로 하는 프로들을 상대로 서바이벌게임을 시도했다는 본질적 위험성을 안고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예견된 문제는 러시안룰렛처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김건모라 할지라도 룰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취지를 벗어나도 크게 엇나갔다. 훼손된 진정성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불치병과 같다. 더욱이 예능프로그램이라면 봐주기의 악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들은 대중성을 인정받은 프로가수다. 꼴찌를 한 당사자로서야 자존심 구기고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겠지만 겸허하게 수용하는 담대함을 보였다면 더 큰 박수와 관심으로 위상을 높였을지 모른다.  



        당사자의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디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공정하지 못한 결과와 떳떳하지 못한 자세는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다. 군중현상은 빠르고 넓게 전이되며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리얼리티를 생명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일방적인 변경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미덕을 가장한 속임수의 일종이다. 관용과 정의를 혼용해서는 아니 됨에도 이를 망각한 채 안이하게 대처한 예견할 수 있는 결과다.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신념과 결부시켰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충돌할 때, 정의는 무엇이 옳은가를 풀어주는 좋은 재료이자 키워드가 된다. 그 속에 녹아 있는 정의의 요체는 공정함에 맞닿아 있다. 공정의 프레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정작용을 하는 엄격한 심리적 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번 일련의 사건은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서 발생한 미필적 고의가 다분한 장면이다. 기회를 부여하고 규칙을 깨트릴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도 훼손되거나 어그러져서는 명분은 허상에 불과하다. 제 아무리 취지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가 끝까지 고사의 의사를 분명히 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가수의 본질이야 음악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그로부터 잉여된 관심을 먹고 공생한다. 요즘이야 인디밴드의 활성화로 대중성과는 유리된 진정한 음악에 심취하는 팬층이 두터워지긴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가수와 인기도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이것은 인기가 곧 실력이라는 등가공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기실 따지고 보면 실력이 없다면 가수로서의 생명력은 단명하기 마련이다. 아직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탄탄하게 누리는 실력 있는 가수들을 보면 설명 가능한 간단한 이치다. 물론 비주얼이 강한 빠른 템포의 아이돌스타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김건모 자신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제작진의 과감하지 못한 결단과 관중의 의견을 묵살한 행위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쌍방향 소통을 추구하는 미디어 시대에 일방적인 통행은 자칫 위험하다. 판정단의 자질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관중의 눈은 날카롭다. 예리한 그 날에 베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이제라도 관중의 눈과 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예능프로그램을 지양했다면 더욱 겸허해야 한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은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다시 김건모를 생각해 본다. 동네 개구쟁이 형처럼 소탈해 보이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그에게 이번 일로 한층 겸손해질 것으로 믿는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흐려진 물을 정화하는 일 또한 본인의 몫이다. 석연치 않은 쓴맛을 선사했지만 이렇다 할 스캔들 없이 20여년을 국민가수로 굳건하게 지켜 온 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한방이 있는 뭐니 뭐니 해도 클린업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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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2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MBC가 점점 더 싫어집니다........ ^^
(이번에 도입한 수많은 경쟁 프로그램들 보셨죠? 숨 막힙니다. 경쟁 사회, 1등만의 사회)

곡우님, 오랜만이셔요. 늦었지만 세째 축하드립니다!

穀雨(곡우) 2011-03-23 17:16   좋아요 0 | URL
tv를 잘 보질 않는데, 집사람 몸조리하는 덕에 보게 되었어요.
취지도 그렇고 발상이 극을 달해 도를 넘었다는 생각에 안타깝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축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