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9일의 레시피 ㅣ 키친앤소울 시리즈 Kitchen & Soul series 1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예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는 고유명사다. 그러나 엄마의 속은 모든 것을 품는다. 엄마를 떠올리면 엇비슷한 관념이 떠오르는 것은 엄마가 가진 공통점이자 속성이다.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고 모성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강하다. 엄마는 그렇다. 엄마가 가진 본성은 시나브로 밝고 따스하다. 그래서 엄마를 연상하면 대개 정성이 담긴 음식과 매개된다. 엄마의 손맛으로 빚어낸 음식은 특별한 레시피나 식재료가 아니어도 최고가 된다. 왜? 엄마가 만들었으니까.
<49일의 레시피>는 오토미, 엄마를 다룬 이야기다. 그것도 가슴으로 낳은 엄마의 이야기다. 일본작가 이부키 유키의 정갈한 이야기는 NHK드라마로 각색되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엄마라는 상징성을 통해 해체된 가족구성원이 응집하며 구심점을 찾아가는 감성적인 이야기다. 그 속에 담긴 엄마는 당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햇살 같은 어머니로 그려진다. 닳아도 다시 샘솟는 화수분처럼 ‘엄마‘에 관한 레시피는 뭉클하기만 하다.
실제 이야기 속 가족구성원들은 현대인들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겹쳐진다. 가족이 결합하고 해체되고 다시 결집되는 그 과정을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타고 매끄럽게 흐른다. 그 속에서 찾은 믿음과 사랑,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정리는 경쾌하다. 게다가 일본 특유의 정갈하고 깔끔한 배려가 곳곳에 드러난 설정은 순조롭다. 하지만 칼칼하지 못한 것은 정서적 차이일까?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레시피를 준비하고 49일의 기간 동안 일어나는 해프닝을 통해 사랑의 참의미를 되새긴다는 발상은 참신하나 어색한 상황설정이 거슬린다.
밑도 끝도 없이 출연하는 주변 인물들을 도려내고 정돈하면 결국 엄마를 향한 가족구성원들의 본질은 “엄마의 재발견”으로 해석된다. 엄마와 매개된 그들은 편협한 시선을 교정하고 매몰된 사랑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얼개의 탄탄함에 비해 조금은 지나치게 밀고 나간 상황적 설정에 반감된 느낌이다. 엄마의 사적 영역에서 풀려난 파랑새처럼 다소 비현실적이며 몽환적인 구조다. 분명 문화적, 기질적 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간극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취약한 약점을 지니고도 울 샘을 자극하는 이유는 엄마라는 이유다. 가슴으로 낳았다지만 엄마 오토미는 먹먹해지는 그런 존재다. 당신의 부재가 주는 공백을 메워주기 위해 꼼꼼하게 레시피를 만들고 그림동화를 만든 이유는 가족을 견인하는 엄마의 위대한 사랑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49일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개하는 레시피의 효능은 놀랍다. 꺼져 가는 불씨를 지피고 해체된 가족을 끌어안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마 작가 이부키 유키는 엄마를 통해 가족이 주는 역할을 되새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자유분방한 시대상황 속에서 진정한 사랑만이 가치 있다는 명제를 진하게 우려낸다. 하지만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외도를 합리화하는 모습은 거슬린다. 설령 명분이 있다 해도 다시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회복한다는 소재는 설득력이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갈등을 해소하고 각자의 삶과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듯 엄마가 남겨둔 유산을 통해 잊힌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와 이어지고 끊어진 연결고리가 다시 매듭지어 지는 이야기가 따사롭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지만 엄마를 알지 못한다. 엄마는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무모한 믿음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에서 엄마라는 관념을 잊힌 감성의 우듬지에서 들춰 내 엄마를 정의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