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읽기에 빠진 요즘이다. 밤 늦게 찾아 든 적막의 시간을 오롯이 소비했다. 하지만 읽어 내는 속도에 비해 쓰기는 시원찮다. 눈으로 가둔 것이 많아서일테고, 선명하게 접붙지 못한 생각의 얄팍함이다. 어느 님의 포스팅처럼 설익은 글은 젠체하거나 알은체하는 글로 공해를 유발할테니 말이다.
이럴 때 일수록 나는 읽기에 더 매진한다. 읽는 것에 대한 목적이 무엇이든 읽다보면 읽다에 스민 가치, 공감한다에 맞닿는다. 공감은 때론 진한 커피향처럼 그윽하기도 하고 신선한 과즙처럼 탄성을 자아내곤 한다. 최근 몰아 읽은 작가들의 향연이 적확하게 그 상황을 재연했다.
<위저리 베이커리>로 유명짜한 구병모 작가의 신간이다. 아가미가 소생한 한 남자의 삶을 꿈꾸듯 뒤쫓으며 암울한 현실과 조화롭게 버무린 내공이 전해오는 작품이다. 그녀가 쓴 글에는 생활인의 아쉬움과 현실의 차가움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더욱 현실적이게 도드라지게 한 것이 이 작품의 고갱이다. <아가미>를 통해 실재와 희망의 대척점을 발견했다. 청구하지 못한 현실의 가혹함, 궁지에 몰린 아픔의 적체로 변신을 거듭한 결과, 아가미가 자라고 비늘이 돋은게 아닐까? 결과야 어떻든 퇴화된 유전자의 기억이 두 개의 호흡기를 부여하는 돌연변이로 바꾸었더라도 그것이 위안이 되기도 할지 모르겠다.
정유정, 그녀가 사고를 칠 것이라 감은 있었지만 이렇게나 단시간에 원투펀치를 날릴 줄 몰랐다. 그녀의 전작 <내 심장을 쏴라>의 폭풍같은 흡입력보다 몇 단계 격상한 메가톤급이다. 젊은 영혼에게 창공을 훨훨 나는 희망을 <내 심장을 쏴라>에서 발산했다면 <7년의 밤>은 오밀조밀하게 엮인 스도쿠의 치밀함처럼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몽치로 내리치듯 강하게 날린다. 확연하게 변신한 그녀의 이야기에 정말 시간의 분초가 쏜살같이 스르륵 지나간다. 제 아무리 전문가의 경험과 확증을 통해 이 글을 집필했다고 하지만 그녀의 박학다식한 지식의 카니발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편견을 한 방에 그로기시켜 버린 그녀의 이야기, 대단하다는 수식어 외에는 달리 형용할 길이 없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물을 소재로 한다. 변신했거나 수몰되거나 교교히 흐른다. 방류된 물꼬를 따라 유영하다보니 어느새 피로도 함께 소멸되었다. 색깔이 다른 두 여성작가의 글에 소설읽는 재미에 몰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