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었습니다 - 초보 아빠의 행복한 육아 일기
신동섭 지음 / 나무수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임신, 출산, 육아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의 설렘, 기쁨, 두려움, 막막함이 교차되는 상황은 정의할 수 없는 자연스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 모든 우려를 종식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거룩하고 찬란한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아이와 교감하고 밀고 당기기의 시간을 시나브로 통과하다 보면 그 어떤 진귀하고 값진 것보다 귀중한 사랑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워낸다는 행위의 정체는 8할이 인고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참고 견디고 기다려 주기의 미학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부모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지워진 기억의 흔적을 복구하고 어떻게 자랐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겸허의 가치에 눈뜨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시 아이를 낳고 길러내 보아야 진정한 부모가 된다는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험난하고 희생의 시간만이 기다리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마른 논에 물들어 갈 때와 제 자식 입에 밥 들어 갈 때처럼 아이가 쑥쑥 자라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놀라운 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아이의 생글생글한 미소, 조합되지 못한 단어들 속에서 터져 나오는 '엄마', '아빠'의 지칭은 세상을 다 가진 기쁨과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단순한 행위의 모둠이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뚫고 나갈 힘을 그 속에서 보았을 부모로서의 기쁨이 무한히 클 테니 말입니다.

<아빠가 되었습니다>는 조금은 다른 소소하거나 투박한 아빠가 쓴 육아기록입니다. 주양육자가 아빠라는 합의나 선택이 사회적 인식을 허물기에 쉽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낸 배울 점이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실제 아이를 계획하고 낳아 기를 때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 즉 경제적 저울대에 올라서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제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며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이 도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중심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의 값어치는 물질과 교환할 수 없는 가치명제를 떠올린다면 피할 수 없는 진실이겠지요. 그러니 아이를 하나, 둘 낳아 기른다는 것의 경제적 무게보다 자녀를 늘려갈수록 기울기의 중심 추는 행복의 가치 쪽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경제적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경제적)가치의 문제가 아닌 (행복) 당위의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불안한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에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 불편한 정도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조금 더 나누고 무게를 줄이게 되며 신동섭 작가가 말한 타고난 아빠놀이터로서의 역할에 보다 더 충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됩니다. 시쳇말로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작가가 경험한 문제를 되새겨 본다면 통과해 본 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안도감이라는 단단한 연대의식이 배어 있습니다. 기실 저의 부모세대들과는 달리 지금은 아이를 돌보는 행위에 대해 지나친 관심과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비싸고 값어치가 나가는 육아용품을 선호하게 되고 아이를 위험에서 격리시키려는 노력을 더 기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지나쳐서 나쁠 것은 없지만 때로는 그것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은지아빠(지은이)도 그렇고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경험해 보게 하는 도전적 상황이 중요합니다.

알면서도 애지중지하게 되는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플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이이기 때문이겠지요. 애면글면 속을 끓이고 애간장을 녹이는 시간을 참고 견뎌내는 것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이가 주는 사랑의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관심의 단추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며 집착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유이겠지만 사실은 불안해서 입니다.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놀랬거나 삐뚤어진 행동을 보일 때면 난감하기도 하겠거니와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기력 없어 보이면 병원으로 내달리게 되고 인위적인 보호막에 가두는 고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아프고 코 흘리더라도 자연 치유과정, 면역력을 키워나가는 힘을 키워줘야 함에도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위험에 노출이 증가한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물리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절로 해결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육아의 경험을 통해 아이의 순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잡아내는 사람은 부모이며 탁월한 전문가입니다. 저는 은지아빠가 쓴 이 글을 통해 이제 제법 자라 제 목소리가 커진 두 아이를 길러 낸 순간과 지금 새록새록 살이 차오르는 아이를 함께 보며 공감의 몸짓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이를 통해 경험한 벅찬 감동의 순간보다 아빠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는가에 더 마음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은지아빠가 주양육자가 되고 은지엄마가 조력자가 되어 손발이 맞는 협업플레이를 펼쳐 나가는 동안 저는 무엇을 했을까하는 반성의 목소리와 피할 수 없는 대면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낫다는 기준에 안도되고 고취되어 이만하면 되겠지 라는 자기합리화를 방패삼아  현실의 상황을 외면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부모의 무관심, 특히 아빠의 비협조가 육아의 고통을 더욱 왜곡되고 처절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면서 말입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언제나 아이가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지 않지만 믿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아빠를 향해 두 팔 벌려 온몸을 날려 기대오는 아이들,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온전히 상대를 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테니. 이 책을 쓴 은지, 민수 아빠는 보편적인 아빠들이 경험하지 못한 순간의 달콤함을 온몸으로 체득했을 것입니다. 아이를 통해 겸손을 배우게 되고 바름에 눈 뜨게 되는 것도 우리는 아이를 지혜롭고 건강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성 따뜻한 이러한 책이 쪼개지고 분화된 현대사회의 가치판단의 왜곡현상을 바로 잡아 줄 윤활유가 되리라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은지와 민수의 해맑음, 보는 이를 절로 상쾌하게 하며 그 너머의 부모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엄마의 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보살핌이라는
직접 경험을 통해
양육에 적합한 뇌로 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양육자를
더 용감하고 똑똑하게 만든다.
-p.265, 아빠로 거듭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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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2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큰 애가 3개월이었을 때, 육아휴직(무급)을 받아서 6달동안 아기를 키웠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육아일기를 써보면 어떠냐고 해서, 몇번 끄적거린 게 있는데,
육아일기란게 쉬운게 아니더라구요.
아기와 함께 보낸 시간들.
정말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재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穀雨(곡우) 2011-04-20 16:24   좋아요 0 | URL
완전 소중한 경험하셨겠군요. 저두 끄적이다만 기록들이 여기저기...ㅋㅋ
예전에 싸이가 유행할때 사진도 업뎃하고 글도 남기고 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