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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시절 주말의 명화는 건조한 일상에 나에겐 소금처럼 위안이 되곤 했다. 할리우드식 꿈을 꾸고 희망에 달 떠 어디론가 하염없이 부유하곤 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고 언제나 정의는 굴복하지 않고 승리한다는 방정식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한 동안은 그 속에 도취되어 빠져 들었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어 나 헤어진 티셔츠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는 희석된 감동이지만 나는 크리스토퍼 리브의 강인한 체력과 시공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흠모했다.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게 이루어질 것 같고 우주 끝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한 손에 잡힐 것 같은 무모한 공상, 아니 몽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슈퍼맨을 사랑했다. 슈퍼맨은 악당을 때려잡는 영웅중의 영웅이다. 다른 모든 영웅들을 일거에 제압하고도 남을 우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말도 안 되는 비교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라는, 허덕일 때도 나는 슈퍼맨이 좋았다. 사람 좋은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우리의 여주인공 마고 키더가 분한 로이스 레인에게 보내는 강렬한 신호, 애간장을 녹였다. 로키산맥이 달리고 바람을 잠재우던 슈퍼맨의 비행은 황홀했다. 엔딩의 허무함을 위무할 만큼.
슈퍼맨이 아니었더라도 인간은 한계를 참지 못하는 유별난 종족이다. 구병모가 쓴 <아가미>와 굳이 아무런 역학관계가 없는 슈퍼맨을 끌어 온 것은 인간이 가진 한계, 그 속에 녹아 든 다양한 감각의 흐름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고 변신을 또 다시 거듭한다면 아가미가 솟아나고 눈부신 무지갯빛 지느러미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인간의 기원은 물에서 나왔으니 부인할 수는 없다. 횡격막을 사이로 나란히 한 쌍의 폐포에 덮인 공기호흡을 위한 유일한 장치에 더 해 모세혈관을 통해 용해된 산소를 채집하는 아가미가 함께 공존한다면 포세이돈의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상상은 의외로 가까운 거리에서 퍼져 나간다. 구병모의 <아가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연결고리를 가동하면 일파만파로 퍼지는 감각은 동심원처럼 끝도 없지 싶다. 그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 되었든 단련되고 고착된 시각의 거름망을 통해 자극은 시작된다. 하지만 결국 잃어버린 것, 상실의 순간을 회고하게 되리라는 공통점에 정박한다. 곤의 날렵하고 세련된 유영을 따라 물살의 저항에 감정을 끼어 맞추다 보면 매몰된 감정의 결락된 순간과 조우한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버리고 또 버리기 위해서 산다. 갖기 위해 버리는 것인지 버리기 위해 갖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감정도 과소비되어 빈곤에 허덕이는지 모른다.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제 것 그대로의 그 날것의 상태를 상실했다. 날 선 세상에 치이고 넘어지다 보니 무엇이 진실인지 안다는 것이 오히려 두렵고 현실을 담보 잡힌 비현실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러니 아가미쯤 있다고 대수겠는가. 그 아가미를 통해 저 푸른 대양으로 부여잡지 못한 진실과 마주한다면 그 시절 내가 꿈꾸었던 슈퍼맨에 대한 환상과 무엇이 다를까.
애석하게도 현실은 냉혹하다. 짝이 맞지 않는 의자를 가운데 두고 춤을 추다 앉지 못하면 기회는 박탈당하고 추락으로 점철되는 세상의 이면에 도사린 날카롭게 뻗은 아픔의 촉수를 너무도 잘 안다. 실제 곤의 아픔은 처절한 빈곤의 상처가 발화한 그 시점에서라는 설정도 모두가 수긍할 감정의 고리를 낚아챘음 이다. 그러므로 곤의 수중생물로의 변신 내지는 회귀도 충격에 따른 현상을 극복할 소망이다. 그와 매개된 모든 이들이 또 다른 아픔과 상실을 반복하는 동안 응집된 감정의 편린은 애환이었다. 공유하는 자의 맹목적인 질투는 어색하지 않다. 그것이 사랑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하도, 노인도, 강하의 어머니 이녕도 모두 물결이 쓸려간 뒤틀린 삶 속에서 아파했다. 그들의 아픔은 곧 곤을 향한 바람이었다. 던적스럽고 비루한 삶에 대한 실낱같은 바람.
곤이 품은 아픔의 지도를 관찰하는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숙달된 안내자 해류의 간결하고 건조한 태도가 없었다면 그저 그런 아가미를 단 한 남자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 해류가 가진 물속처럼 템포가 느려지고 굴절된 세상을 곤의 비현실적인 신비로움이 더해져 현실의 바람으로 변신할 추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류의 글자 그대로의 뜻처럼 시간도 공간도 모두 흐른다. 저항의 순간을 극복하는 것은 개별화된 몫이고 원죄에 가깝다. 그렇지만 나약한 현실을 거꾸로 돌려 세우는 힘은 스스로에게 내재된 능력이다.
아가미를 통해 숨을 쉬고 미끈거리도록 유영하는 공상의 시간을 선물한 구병모의 글은 기발하다. 식어 빠진 사랑이야기도 무미건조해 지루하기만한 불륜이야기도 <아가미>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행간과 행간에 숨은 희망이 오롯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강렬한 에너지다. 전작 <위저드 베이커리>로 활자의 마술을 부리던 그녀의 언어가 다시 <아가미>를 통해 폐부 깊숙이 찔러 오는 심해의 아득한 물결처럼 그 맛은, 알싸함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