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근 한달만에 이 책을 완독했습니다.
책의 저자인 세르히 플로히 ( Serhii Plokhy)교수는 하바드대학의 우크라이나 역사교수로 우크라이나 출신의 학자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마 2020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이후 전문가 패널로 영미권 미디어, 유튜브, 팟캐스트 등에서 가장 많이 불려나가는 학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약 5년째를 끌어오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저자가 패널로 참가한 대담이나 강연을 보면서 전황에 대한 정보를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2020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전 러시아는 이미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흑해의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복속(annexation) 시켰고, 우크라이나의 공업지대인 도네츠크 지방을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무렵 발발했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소련)- 우크라이나 사이에 얽힌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인 여러 고리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2020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할 당시 전세계가 놀랐던 이유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 주권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를 침공한 첫번째 사례였기 때문에 놀랐던 것이고,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이 네탄야후 총리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명목으로 가자( Gaza)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 genocide ) 하면서 극단주의 극우정치세력의 호전성과 인종주의적 잔혹함을 보여주었다면, 그 이후 아무런 명분없이 이란을 선제타격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과의 전쟁은 주권국을 침공한 두번째 사례로서 전후 오랜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전쟁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징후로 읽힙니다.
러시아의 옐친이후 오랜기간 러시아를 통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이나 극우 기득권 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먼저 공격하고 이란지도부를 날려버린 이란전쟁에서 들이 모두 독재를 추종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독재의 시대에서 민주주의의 시대로 다시 복귀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현재로서는 알수가 없다는 것이 딜레마입니다.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현대사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언제부터 존재했고, 러시아를 비롯한 이웃나라들, 즉 폴란드, 라트비아, 오스트리아, 튀르키에 등과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시대별로 보여줍니다.
러시아와 건국 초기를 공유한 우크라이나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해서 러시아 관료와 군인으로 살기도 했고,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찌 독일과 독소전쟁을 벌일 때 러시아 측 전장이 사실 대부분 우크라이나 지역이었고, 이 전쟁으로 수많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병사들이 전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2020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동일한 러시아의 일부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원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와 오랫동안 관계를 가지고 살아왔고,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아 우크라이나 땅에 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어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가 통용되는 다민족/ 이중언어국가인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관계를 맺고;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자 유럽의 동진을 두려워하던 러시아의 이해와 충돌이 일어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제정 러시아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을 거치며 러시아인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오랜기간 살아왔고, 실제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땅에 살고 있고, 러시아어를 통용하고 쓰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독립문제와 관련된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 ( identity)‘ 문제는 꽤 복잡하고 정치적이며 민감한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이지만 러시아어가 더 편한 경우도 있고, 민족으로 보면 러시아인이지만 우크라이나를 조국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에 살던 러시아 출신으로 알려졌던 모델/ 배우들이 자신이 러시아 출신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출신배경을 정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전쟁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 볼 기회를 준 것이죠.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크라이나는 이웃나라 폴란드와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오랜기간 통치주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서쪽 지방은 이웃나라와의 이해관계로 전쟁이 잦았고, 전쟁결과에 따라 통치주체가 폴란드가 되기도 ,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 되기도 했습니다.
근대 중부유럽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영향력과 흑해 이남의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제정러시아제국과 이들 제국들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가 이들 모두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을 수 있다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근대 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크라이나는 농경지대인 유럽과 중앙아시아 스텝초원의 중간지대로 13세기 몽골의 유럽침략 당시 길목에 있었고 유목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서구유럽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일원으로 보기 꺼리는 이유는 이 역이 유럽인 입장에서 야만인( Barbarian) 으로 취급되는 몽골 등 유목국가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 책에 대해 살펴보면, 이 책은 본문 28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가 읽은 미국판으로 2015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 페이퍼백으로 2021년 출간된 책입니다. 본문만 약 360페이지로 적당한 길이의 우크라이나 역사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2022년 한길사에서 허승철교수( 고려대학교)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어판은 쪽수가 646쪽에 달하는 벽돌책인것 같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전쟁이 연결될 조짐을 보이면서 중동지역 전체와 흑해를 둘러싼 우크라이나와 그 스텝지역을 둘러싼 정세가 계속 불안정합니다. 서구의 국제정치전문가들 중에는 이미 제3차세계대전의 초입에 와있다고 주장하며 경고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없었으면 이 책은 읽을 생각도 못했을겁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별개로 한국은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전쟁이 터진 이란과 중동지역과도 석유수급 측면에서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멀리 있다고 무관심하게 있을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구 소련의 주요 공업지역이던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지역과 러시아가 해상요충지로 여겨왔던 흑해의 크림반도의 관할권을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는 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두 지역의 전쟁이 어떤식으로 결말이 날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