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호즈미 가즈오가 쓴 책을 번역한 책입니다.

철저히 일본 쇼와시대 (昭和時代,1926-1989)을 살아낸 작가의 관점에서 메이지의 수도, 도쿄의 생활풍속과 경관변화, 근대적 교통수단의 발달을 고증을 통해 재구성한 책입니다.

도쿄는 결혼 전 제가 가장 많은 가보았던 도시이기도 하고, 메이지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바로 그 일본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메이지의 도쿄가 어떠했을지는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더구나 제 고향이자 현재 살고 있는 서울의 현재 모습은 과거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그 밑바닥에 깔고 서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시행되었던 경성의 ‘시구개정계획’은 도쿄를 포함한 당시 일본제국의 도시계획 중 일부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경성이 일제의 수도 도쿄의 영향을 받았고, 도쿄의 경관이 이들이 당시 본받으려 했던 프로이센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전진성,2015).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유럽의 후발주자였던 프로이센은 이상적인 건축양식을 ‘ 그리스 고전주의’적 건축양식으로 보고 중부 유럽의 변방이던 베를린에 이를 이식했다는 점입니다.


메이지 초기,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를 위시한 일본의 견미사절단이 유럽과 북미를 돌아보고 일본을 서구와 동등한 ‘문명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서양을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서구의 기술자를 초빙해 철도와 건축기술을 배우면서 도쿄 긴자에 최초의 서양식 거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도쿄대학과 각쿠슈인 등을 비롯한 서양식 근대 고등교육기관을 만들어 철저하게 일본 제국주의의 국가 및 식민지 경영을 맡길 수 있는 엘리트들을 길러내기 시작합니다.

실제 이들 일본의 제국대학 출신 졸업생들은 한국의 고도성장기를 지나 2000년대까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자와 동년배인 1930년대 생들은 지금까지도 ‘국가원로’ 그룹으로 또는 ‘헌정회’의 일원으로 아직도 한국의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책은 청일전쟁 당시 일본의 조선주재 공사이던 전 외무대신 이노우에 가오루 (井上馨)를 열렬한 서구주의 추종자로 소개하는데, 그가 메이지 당시 유명한 연회장이자 사교장이던 로쿠메이칸 (鹿鳴館)의 건립을 주창해서 실제로 세워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쿄의 도시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1923년 간토대지진(関東大震災)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당시 조선에서 살 수가 없어 일본에 건너간 재일 조선인에 대한 언급이나 이 지진으로 학살당했던 조선인에 대한 언급은 이책에 일절 없습니다. 아마도 메이지 시대만 다루다 보니 쇼와시대의 대사건인 이 지진을 언급만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가볍게 읽으려고 집어든 책이지만 의외로 일본인들의 세시풍속과 관련된 설명이 상당하고 메이지 시대의 도쿄의 경관변천을 삽화로 보여주는 건 ‘도시공간’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꽤 유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번도 혁명이 없었던 나라 일본의 수도 도쿄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시니세 (老舗)가 번창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이해가 되었습니다. 조선에도 분점을 냈던 미스코시 (三越)백화점도 에도시대부터 유명한 3대 포목점 중 하나였다는 설명도 그렇고 긴자(銀座)의 유명한 제과점으로 단팥빵을 처음 만든 기무라야 (木村屋)에 대한 설명이 긴자의 시작인 ‘긴자벽돌거리’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10여년 전 긴자에 갔을 당시 늘 이 빵집에서 단팥빵을 사먹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의 구한말과 일본의 메이지 시대는 한국이 다시는 식민지 시대를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심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시대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라는 아픈 역사로 인해 더욱 그렇습니다.

가깝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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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김선주 지음, 김범 옮김 / 푸른역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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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에서 한국역사를 가르치는 김선주 교수의 ‘1812년 홍경래난’에 대한 연구서입니다.

저자가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출판한 것으로 이전까지 ‘홍경래난’을 설명했던 방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 반란을 설명합니다.

저자의 관점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청북 지역( 청천강 이북지역)에서 발생한 홍경래난은 이 지역(평안도지역) 지배층이 조선시대 내내 이어진 한양의 경화사족 (京華士族) 중심의 권력독점과 지역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청북지역의 지배층이 일으킨 반란입니다.

따라서 이 반란을 봉건지주층과 농민층과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계급투쟁적 관점의 설명이 유효하지도 않고, 사료적 뒷받침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사료로 볼 때 농민층이 지배층인 양반에게 반란을 일으킨 기록은 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의한 역사설명방식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데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둘째, 한양의 중앙조정세력들은 평안도지역 지배층인 이 지역출신 양반들이 제대로된 유교적 교양도 없고 무예만을 숭상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 후기 청과의 관계가 안정되고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부를 쌓아가고 많은 이 지역 양반자재들이 문과에 급제하였는데도 이들을 고위공직에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이들을 차별해서 이들이 중앙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샛째, 이에 더해 향안을 통해 서북지역 재정에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던 서북지역 양반들의 의사에 반하여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방재정에 개입해 그들의 부를 수탈해 가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생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중앙조정은 분명히 서북지역 양반들이 가진 경제적 힘을 과소평가했고 정조 사후 안동김씨 풍양조씨 등으로 이어지는 영남 노론세력들의 일방적 권력독점 아래 당시 조선에서 한양다음으로 경제력이 컸던 평안도 양반들이 요구하는 ‘사회적 지위 보장’을 무시했던 것이 이 반란의 원인이라고 본 것입니다.

19세기 초에 일어난 홍경래난은 그래서 조선왕조의 사대부정치가 균열을 일으키고,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한양중심의 일방적 정치방식이 정조사후부터 시작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와 함께 악화일로를 걸어 지방 지배층의 반발을 일으켰고, 이일이 일어난 지역이 북쪽지방에서 가장 상업경제가 발달한 평안도 지역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홍경래난이 발생했던 평안도 정주, 박천, 선천, 철산, 용천 등은 현재도 북한지역의 요충지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지식인들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해방이후 보수의 원류를 이루었던 사상계지의 지식인들도 공교롭게도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평안도 출신들이고, 미국의 북장로교가 개항이후 일제시대에 전략적으로 선교지역으로 정한 지역도 바로 평안도 지역입니다.

예전부터 청으로 사행을 떠나려면 지나쳐야만 하는 곳이 평안도였고 특히 압록강 하구의 의주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청과의 교류가 있었고 병자호란 당시부터 청나라에 진출한 서양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입니다.
조선내내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주의 여진족들과도 교류가 있었을 것이고 이런 특성이 이 지역의 개방성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북한의 핵심지역이 평안도인데도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서북지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살펴보았는데 지역의 인문적 연구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은 충격이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시각이 어떠하든, 보수 진보를 떠나서 오랫동안 역사의 중심지였던 지역에 대해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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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김선주 지음, 김범 옮김 / 푸른역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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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홍경래난이 조선시대에 있었던 청북지역( 청천강 북부지역) 지배층에 대한 중앙조정( 한양과 그 주변 사대부 세력)의 차별과 홀대로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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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연구한 학자가 펴낸 연구서로 285쪽에 달하는 작은 책입니다.

저자의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논문이 책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왜 일본인의 악행을 들추는 연구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 작업이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를 위하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p285).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동아시아 역사와 한국사를 공부한 저자가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제상황에 대해 저술한 책입니다.

이책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경제정책 중
첫째 철도건설
둘째 수리조합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작성한 통계와 토목관련 잡지와 신문기사, 일본에서 발간된 토목관련 회고록과 당시 토목관련 법률제정과 재조 토목청부업자들의 정계로비 관련 기록들을 망라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제의 경제수탈은 토목청부업자들의 이익을 통해 나타날 것이기에 이들 사업의 수익성 구조분석을 진행했고, 조선총독부 공식통계상 약 57%에 이를 것이라는 노무비가 실제로 그만큼 지급되었는지 검증을 실시했습니다. 노무비가 중요한 이유는 토목공사에서 인부들에게 지급하는 노무비가 사업을 진행하는 가장 큰 비용 중 하나라는 일반적 이해와 이 돈이 실제로 토목일을 한 조선인들에게 지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조선총독부의 공식통계와 다르게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20%내외의 노무비만 조선인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약 37%는 부당이득으로 본인들이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대규모 토목공사인 철도공사 (경부선 경의선 등 당시 이루어진 철도건설)를 일본의 자체적 필요- 즉 러일전쟁의 보급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에 의해 더 속성으로 건설할 필요가 있었고 1890년 당시 일본의 철도 인프라는 어느정도 정비가 되어 새로운 시장이 필요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일제가 경인선을 건설할 당시만 해도 철도의 속성 건설의 필요가 없어 조선인 토목청부업자와 같이 일을 진행시켰으나 전쟁의 급박한 준비로 이전과 같이 철도건설를 진행할 이유가 없어졌고, 이런 외부상황의 변화는 일본인 토목청부업자가 더 독점적으로 사업이윤을 수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에다 조선총독부는 대부분의 토목관련 수주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하였고 1921년 일본의 회계법 개정으로 모든 입찰을 자유경쟁입찰로 하게 되자 재조 토목청부업자들은 일본의 정치가들과 의회에 로비를 하여 조선에 한해 수의계약 방식이나 지명경쟁입찰방식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제도적 법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조선에서 활약했던 토목청부업자 중 상당수는 제국대학 출신에 일본과 조선에서 토목이나 건설관련 관리를 지낸 자들이 많아 로비와 함께 위에서 말한 제도적 이익 보장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당시 언론에서 묘사하는 조선인들의 빈곤은 심각한 수준으로 조선총독부 통계가 과장하듯이 토목분야의 절반 정도가 조선인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경과 관가인맥등에서 훨씬 우월한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철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량 증산계획과 맞물려 있던 수리조합사업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가져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리조합은 식량증산을 위해 관개시설을 건설하는 토목사업으로 대체로 일본인 지주들은 찬성하고 한국인 지주들은 반대하던 사업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수리조합 연구는 순수한 농업사업으로만 보고 실제 쌀을 얼마나 더 증산해서 얼마를 일본으로 유출했느냐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수리조합의 건설이 조선에서 활동하는 토목청부업자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나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철도건설이 어느정도 완성된 이후 새로운 일거리를 찿고 있었으며, 수리조합 사업에 관한 일본 정부의 예산을 더 받아내기 위해 철도와 마찬가지로 도쿄의 중앙정계에 로비를 벌였고 조선총독부에서 확대된 수리조합관련 예산의 상당한 부분을 본인들이 거두어갔습니다.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빈곤한 생활을 했었다는 여러 선행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관련하여 어떤식으로 일본인 지배 엘리트들에게 수탈당했는지 실증하는 연구가 나온 건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점은 일제가 조선경제에 직접 관여한 재정부문을 통해 어떻게 수탈구조를 만들었는지 실증한 점에 있습니다.

일제는 일본 본토의 산업이 조선의 산업발달로 경쟁력을 잃는 것이 두려워 조선에 일체의 산업발달을 허용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들이 만든 상품의 시장과 원료공급처로의 역할만을 강요했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려 하자 군사적 필요에 의해 경부선과 경의선 원산선 등 한반도 북부 지방에 철도 건설을 하였고, 조선을 식량공급기지 역할로만 한정해 전반적으로 균형된 발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현재 한국경제가 고민하는 도농격차의 문제, 지방소멸의 문제가 1930년 당시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데 있습니다.

책에 보면 당시 조선 총독부 관리조차 농업과 공업이 같이 발전해야 사회적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 2021년의 지배엘리트들은 과연 얼마나 지금과 같은 불균형발전의 시정에 고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각종 관급공사를 일본인들이 독점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건축업자들이 주택사업을 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책에서 경성의 주택왕 ‘정세권 ‘에 관한 언급이 잠시 나옵니다. 1920-30년대를 통틀어 조선인들 가운데 토목청부업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주택사업과 달리 이들은 철도건설이나 교량공사 제방 공사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수치와 통계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세권에 대해서는 김경민 교수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이마,2017)’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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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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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인력있고 설득력있는 ‘국산’ 사회과학 서적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미국의 학계에서 활동하다 한국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돌아온 학자답게 주장에 거침이 없고 간명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이용가능한데이터( official and available data)를 이용해 현재 한국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실증해냈습니다.

데이터를 이용한 글쓰기의 전범을 한국학자의 글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에 대한 인상은 이제 그만하고 내용을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이글을 읽다보니 저의 경우 386 바로 뒷세대이고 저자도 저와 비슷한 세대로 추정되었습니다.

이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하에 한국을 한세대 만에 ‘압축적’으로 발전시켰고, 부동산 폭등을 통해 최초 자산 축적을 한 ‘산업화 세대’와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정치적 해게모니를 가져왔으며,1997-98년 IMF 금융 위기를 통해 경제적 해게모니까지 장악한 ‘386세대’가 현재 한국의 조직과 노동시장에 일반화된 ‘이중적 구조’와 이에 따른 극심한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사뭇 도발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론적으로 한국형 위계를 발전시킨 ‘네트워크 위계’에 의한 386세대의 과대 점거가 노동시장에서 세대간 불평등을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정부에서 나온 공식통계 데이터를 통해 입증합니다.
따라서 이책은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 세대 집단 뿐만 아니라 조직으로서 노조와 공장현장조직, 회사조직, 관료조직 등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세대론이자 조직론이며 또 큰 의미에서 노동시장의 구조를 조망합니다.

따라서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논문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원임 중 하나로 386세대의 과다 권력점유를 지적히는 이 글의 입장은 386세대가 집권 중추세력인 현 집권여당에 대해서 이들의 과오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386세대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권위주의 세력에게서 획득했다고 아무 비판도 없이 ‘신화화’되어야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이후 30년이 넘게 지났고 이제 이 세대의 공과 과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제가 공감했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한국의 ‘386세대’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의 상층 의사결정층에 과다점유를 하고 있으며 1997년 이후로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실상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오랜세월 그대로 정체된 가운데 연공제에 기반한 인건비 상승분을 사실상 20대 청년층과 여성들에 기회를 주지 않은체 이들을 단기 계약직에 묶어두면서 유지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외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평등한 세상을 주장하던 20대와는 다르게 사실상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여 현재의 이중적 노동시장구조를 만드는데 방조 내지 협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학생시절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유연화를 사회안전망의 확충도 없이 진행했다는 사실은 ‘변절’로 불리기에 손색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386세대는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유지해 여성들에게 동일하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하에 철저하게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조차 같은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후배 여성들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았고, 한국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한 주체적인 이 후배 여성들은 ‘출산파업 ‘과 ‘전투적 페미니즘 ’으로 대항하며 커리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임여성 출산율이 1명이 되지 않고 이에 따른 인구감소로 구조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386세대는 이 상황을 결정한 당사자로서 책임에서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학생때부터 ‘민족’이니’통일’아니 하는 큰 주제룰 위해 일상의 소소함을 우습게 보고 남존여비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학생투사들의 한계로 보입니다.

회사원으로서 츙격적이었던 부분은 한국 100대 기업의 수익성 관련 자료였습니다.

의사결정자인 회사 상층부가 1950-1969년 출생의 경우 자본 수익율이 마이너스에서 0에 이르러 사실상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상층부의 출생년도가 1970년대 이후일 경우 자본수익율이 반전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상 무능이 입증된 치욕스러운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는 이들의 의사결정이 지난 20여년간 변화한 외부 환경에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386세대를 학창시절부터 지켜본 바와 이글의 데이터와 그 주장을 보면 공감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저자는 데이터에 근거해서 386세대가 처음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권에 입성하고 1997년 금융위기를 통해 경제계를 접수한 이후 이들이 ‘민주적이며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로 한 약속을 사실상 저버렸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주장에 수긍합니다.

상황논리에 말리고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 세대의 특성상 1998년도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유연화’를 지지한 사실은 이 세대가 단체로 변절한 첫 케이스로 생각합니다. 언행일치를 알고 20대 학생시절 한 발언과 주장을 생각하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인데 386새대 정치인들의 ‘권력의지 ‘가 자신들의 가치와 반대되는 합의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봅니다.

잘 알파시피 지금도 정치권에 ‘극우’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중견이상 정치인들 중 학생 시절 지하에서 사회주의이론가였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단한 변신이죠.

따라서 386세대가 현재 이룬 승자독식 (winners take all)은 예상가능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소위 한강의 기적을 통한 성과의 과실을 최초 자본 축적을 경험한 산업화세대와 그 자녀인 386세대만 누리고 그 아래 세대들이 누리지 못하는 건 너무 덧없습니다.

40년간 밤새 일해 서구 국가들이 200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이루고 먹기 살만해 졌는데 그 과실이 다시 30여년만 특정 세대만 누리고 다른 후배 세대는 그 과실을 전혀향유하지 못한체 미래조차 유보하고 있는 상황은 너무 슬픕니다.

젊은 세대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자의반 타의반 출산 파업을 감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도 확대재정에 인색하고 학교는 학생을 내몰라라 합니다.
어르신들은 상황도 알지 못한체 젊은이들에게 결혼 안한다고 훈계 합니다.

어르신 세대인 산업화 세대와 현재 집권층인 386세대는 현재의 이런 불합리하고 슬픈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동서양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유교적 위계 조직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현재의 상층권력을 무시하면 상층부에 의해 제거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반편, 서구에서는 관행과 전통을 무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상층권력에 도전할 경우 상층권력을 해체하고 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생긴다는 겁니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지식은 출세와 권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 그 지식의 질과 참신함을 ‘평가’하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색다른 지식에 대해 주장하고 권위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대신, 그 아이디어의 독창성(originality)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contribution)을 면밀히 따지는 ‘평가’시스템이 발전했습니다.

이책에서 경제불황에서 벗어나고 기업이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새로 젊은 인재들을 채용해 조직에 활력을 더하고 위의 서구식 앎의 체계를 도입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재가 평소에 생각하던 한국사회의 상황을 데이터로 확인해주는 역할을 해 반가웠습니다.

제 커리어 내내 불황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이러다 정말 한국이 구조적 불황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노인인구는 늘어나는데다 출생은 감소해 실제 인구감소가 현실화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은 코로나 발발 이전의 상황을 다루었자만 ‘혁신’이라는 포장 아래 노동을 갈아넣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의 상황을 추가하면 별반 달라진 것도 없어 보입니다.

끝으로, 눈만 뜨면 나오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주장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을 도와주는 구실을 할 뿐이지 대체를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계는 단순반복 작업을 잘할 뿐 교육과 같이 의사소통의 하며 감정을 교감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는데 교육계가 인공지능을 도입해 원격수업을 하겠다는 황당하고 몽상적 주장을 해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존재이고 로봇과 대체가 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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