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연구한 학자가 펴낸 연구서로 285쪽에 달하는 작은 책입니다.
저자의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논문이 책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왜 일본인의 악행을 들추는 연구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 작업이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를 위하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p285).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동아시아 역사와 한국사를 공부한 저자가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제상황에 대해 저술한 책입니다.
이책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경제정책 중
첫째 철도건설
둘째 수리조합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작성한 통계와 토목관련 잡지와 신문기사, 일본에서 발간된 토목관련 회고록과 당시 토목관련 법률제정과 재조 토목청부업자들의 정계로비 관련 기록들을 망라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제의 경제수탈은 토목청부업자들의 이익을 통해 나타날 것이기에 이들 사업의 수익성 구조분석을 진행했고, 조선총독부 공식통계상 약 57%에 이를 것이라는 노무비가 실제로 그만큼 지급되었는지 검증을 실시했습니다. 노무비가 중요한 이유는 토목공사에서 인부들에게 지급하는 노무비가 사업을 진행하는 가장 큰 비용 중 하나라는 일반적 이해와 이 돈이 실제로 토목일을 한 조선인들에게 지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조선총독부의 공식통계와 다르게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20%내외의 노무비만 조선인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약 37%는 부당이득으로 본인들이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대규모 토목공사인 철도공사 (경부선 경의선 등 당시 이루어진 철도건설)를 일본의 자체적 필요- 즉 러일전쟁의 보급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에 의해 더 속성으로 건설할 필요가 있었고 1890년 당시 일본의 철도 인프라는 어느정도 정비가 되어 새로운 시장이 필요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일제가 경인선을 건설할 당시만 해도 철도의 속성 건설의 필요가 없어 조선인 토목청부업자와 같이 일을 진행시켰으나 전쟁의 급박한 준비로 이전과 같이 철도건설를 진행할 이유가 없어졌고, 이런 외부상황의 변화는 일본인 토목청부업자가 더 독점적으로 사업이윤을 수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에다 조선총독부는 대부분의 토목관련 수주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하였고 1921년 일본의 회계법 개정으로 모든 입찰을 자유경쟁입찰로 하게 되자 재조 토목청부업자들은 일본의 정치가들과 의회에 로비를 하여 조선에 한해 수의계약 방식이나 지명경쟁입찰방식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제도적 법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조선에서 활약했던 토목청부업자 중 상당수는 제국대학 출신에 일본과 조선에서 토목이나 건설관련 관리를 지낸 자들이 많아 로비와 함께 위에서 말한 제도적 이익 보장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당시 언론에서 묘사하는 조선인들의 빈곤은 심각한 수준으로 조선총독부 통계가 과장하듯이 토목분야의 절반 정도가 조선인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경과 관가인맥등에서 훨씬 우월한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철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량 증산계획과 맞물려 있던 수리조합사업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가져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리조합은 식량증산을 위해 관개시설을 건설하는 토목사업으로 대체로 일본인 지주들은 찬성하고 한국인 지주들은 반대하던 사업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수리조합 연구는 순수한 농업사업으로만 보고 실제 쌀을 얼마나 더 증산해서 얼마를 일본으로 유출했느냐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수리조합의 건설이 조선에서 활동하는 토목청부업자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나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철도건설이 어느정도 완성된 이후 새로운 일거리를 찿고 있었으며, 수리조합 사업에 관한 일본 정부의 예산을 더 받아내기 위해 철도와 마찬가지로 도쿄의 중앙정계에 로비를 벌였고 조선총독부에서 확대된 수리조합관련 예산의 상당한 부분을 본인들이 거두어갔습니다.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빈곤한 생활을 했었다는 여러 선행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관련하여 어떤식으로 일본인 지배 엘리트들에게 수탈당했는지 실증하는 연구가 나온 건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점은 일제가 조선경제에 직접 관여한 재정부문을 통해 어떻게 수탈구조를 만들었는지 실증한 점에 있습니다.
일제는 일본 본토의 산업이 조선의 산업발달로 경쟁력을 잃는 것이 두려워 조선에 일체의 산업발달을 허용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들이 만든 상품의 시장과 원료공급처로의 역할만을 강요했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려 하자 군사적 필요에 의해 경부선과 경의선 원산선 등 한반도 북부 지방에 철도 건설을 하였고, 조선을 식량공급기지 역할로만 한정해 전반적으로 균형된 발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현재 한국경제가 고민하는 도농격차의 문제, 지방소멸의 문제가 1930년 당시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데 있습니다.
책에 보면 당시 조선 총독부 관리조차 농업과 공업이 같이 발전해야 사회적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 2021년의 지배엘리트들은 과연 얼마나 지금과 같은 불균형발전의 시정에 고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각종 관급공사를 일본인들이 독점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건축업자들이 주택사업을 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책에서 경성의 주택왕 ‘정세권 ‘에 관한 언급이 잠시 나옵니다. 1920-30년대를 통틀어 조선인들 가운데 토목청부업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주택사업과 달리 이들은 철도건설이나 교량공사 제방 공사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수치와 통계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세권에 대해서는 김경민 교수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이마,2017)’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