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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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출신 고대사학자인 저자가 정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사(前史)입니다.

본문 345쪽으로 총 4부로 구성된 책입니다.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초기 수장한 유물도 역시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인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제는 식민지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이론적 역사적 논거를 만들기 위해 평양의 낙랑고분과 가야 신라의 고분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그 유물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목적이 정치적인 만큼 출토된 유물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연관성, 근대를 대표하는 일본과 서구제국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조선의 문화가 지체된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조선총독부 하부 조직으로 시작되어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라는 산업박람회 미술관에서 시작되었고, 조선의 역사적 유물을 발굴 전시하는데 조선인들이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유적의 발굴과 그 보고서는 전적으로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의 예산으로 충당되었고, 발굴은 도쿄제국대학 (東京帝國大學)과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출신의 고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들이 발굴을 주도하고 발굴계획 역시 제국대학출신 조선총독부 관료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정체적 역사관에 입각해 조선의 역사를 서술한 겁니다.

1920-30년대 조선의 고분발굴을 주도하던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고고학을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는 말이지만 그 시각이 정체사관을 기반으로 해서 현재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당시 총독부 박물관 주위에 있었던 일부 유학파 출신 지식인들이 미군정의 명령에 의해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새출발을 했습니다.

당시 경성제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던 후지타 료사쿠 (藤田亮策),그를 이어 총독부 박물관 주임이었던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로부터 박물관 업무를 인계받은 이가 독일 뮌헨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던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원 (金載元)입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은 1920-30년대 당시 발굴된 가야고분의 유물로서 정립된 이론이고 일본은 왜가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가야지역을 찍어 고분발굴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보고서를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발굴보고서 작성과 연구에 일본 최고의 두뇌들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고고학 초기 전사가 모두 일본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의 고고학과 역사학은 이런 식민사관의 학맥과 끊을 수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이를 계승한 서울대 역사학 학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이책의 총평을 하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선 최근에 나온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라는 점이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중복되는 내용이 많이 발견되는 건 흠입니다.

두번째 일제의 고적발굴조사의 의사결정과정, 즉 학자와 총독부 관료들의 입장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입니다. 이들은 조선의 고적발굴업무에 결코 일사불란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조선의 고고학 발굴사업이 철저히 일본의 제국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물론 발굴목적은 조선의 ‘정체성(停滯性)’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진 고대사’라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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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신 작가 최예선의 세번째 책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오래전에 ‘청춘남녀 백년전 세상을 탐하다 (모요사,2010)’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막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의 저작으로 생각되는데 제 서가에서 잠자다 얼마전 읽었습니다. 이 책이 대체로 알려진 공공건물 위주의 근대 건축유산을 답사하는 경우라면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촛점이 온전히 가정집에 맞추어져 있고 집에 대한 건축 뿐만 아니라 주거생활, 인테리어, 가구 등도 같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의 디자인도 대단히 강렬합니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雲峴宮)의 기와지붕과 운현궁 양관(洋館)이 겹쳐진 흑백사진의 배경으로 보라색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책의 디자인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관을 구성하는 건물들의 현재모습은 직접적으로 일제시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게 현실이고, 한국의 대부분의 서양식 건물들은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일제에 의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소위 ‘근대’라고 불리는 시기의 건물들과 도시계획 등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을 이루는 공간과 장소의 기원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축물의 경우 궁궐이나 영사관 등 공공건물에 대부분 촛점이 맞춰져 당시 사람들이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런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합니다.

총 380여쪽에 이르는 이책은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6장과 에필로그는 거의 집에 대한 저자의 수필로 보아도 무방하며, 건축 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 당시 문화계, 특히 문인들과 모던 취미 등에 대한 글들은 모두 1-5장을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즉 1920-30년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조선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양장을 차려입고 입식샹활을 하며 클래식을 축음기로 듣고 커피를 마시며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모던한 생활공간이 필요했고, 이 필요가 도시형 한옥부터 불란서 양관 그리고 문화주택에 이르는 다양한 주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모던한 생활은 곧 서구적인 생활로 인식되어 조선의 고위관리나 귀족들이 그들의 서구취향에 맞춰 대거 서구의 가구를 외국에서 들여왔기, 정동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호기심어리게 조선의 전통가구를 집에서 사용해 왔다는 겁니다.

전통과 모던의 혼성모방이 일어났고, 이에 발맞춰 종로와 을지로의 가구점 및 서양잡화수입업체들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1945년 이전까지 주로 경성을 중심으로 운현궁을 포함해 잘 알려진 근대 가옥에 대한 건축 그리고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시도한 책으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씨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은과모음,2011)’ 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시기가 근대가 아니고 1970년대 후반 이후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환경을 디자인, 문화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으며 당시 아파트 인테리어 및 가구 등의 생활문화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소개하는 이 책이 우리 조부모 세대의 주거에 대한 글이라면 박해천 교수의 책은 국가주의 산업화 시대 주거에 대한 책으로 지금 한국전쟁을 겪으신 우리 부모세대의 주거에 대한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도 산업화 시대 집에 대한 후속작을 펴낼 예정이라고 하니 어떤 글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일제시대 건축사 및 도시사와 관련해 몇가지 언급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도시답사에 대한 글들이 많지만, 서울의 근대적 도시계획이나 일제가 만든 신도시 영등포, 흑석동 등에 대해서 저는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님의 책을 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경성 전도(大京城精圖,1936)에 대해서 처음 본 책도 김시덕 교수의 책입니다. 김교수의 도시답사 시리즈 중 첫번째 책 ‘서울선언(열린책들,2018)’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경성전도에 대해서 책에서 언급했듯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도판으로 출판했다고 했지만 사실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발행부수가 얼마 되지 않아 쉽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도시계획 및 일제시대 도시개발역사에 대한 선구자이셨던 서울시립대 고(故) 손정목 교수의 책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 최초로 일제시대의 서울 도시개발계획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분 책이 대부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발표되었는데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개발계획은 그 자체로 근대화, 경제발전과 연동돼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생각할 수 없는데, 아무튼 선구적 책들이 절판되고 구할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시경관은 사진가들과 인문학자, 문학가들의 관조의 대상이었고 그 자체로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도 현재 서울의 풍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또는 도시계획의 입장을 뛰어넘는 사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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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noa 2024-01-07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모던의 시대 우리집>의 저자 최예선입니다. 책을 꼼꼼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료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근대서울 자료 중 하나인 <대경성부대관>의 내용을
보실 수 있는 링크를 적어둡니다. 근현대 도시에 관심이 많으시니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https://museum.seoul.go.kr/CHM_HOME/ebook/ecatalog.jsp?Dir=67&catimage=

혹 링크가 깨진다면 서울역사박물관>학술자료>발간도서 에서 검색해보시면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연구 자료들이 더 많이 공공화되어야 더 즐거운 연구들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들의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인하대학교 정종현 교수의 책으로 제가 읽은 두번 째 책입니다.

전작,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2019)’가 워낙 강렬하게 다가온 탓으로 같은 저자의 이 책도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국대학 출신의 지식인들의 계보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이래 한국 기득권층의 사회적 기원을 밝힌 역작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저자도 이 책이 전작의 후속적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셨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전작보다는 평가를 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한국역사연구회의 웹진 <역사랑(歷史廊)>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기 대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짧은 글들이 연재되기 때문에 각 인물들에 대한 삶과 시대에 대한 서술이 생략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의 삶이 일제시대와 해방 분단에 걸쳐있다보니 각 시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패망과정이나 한국의 분단과정이 간단하게 서술될 성격도 아니고 특히 일제패망이후 미군정 진주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기, 미군정 시기, 그리고 정부수립과 한국전쟁 시기까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냥 별다른 언급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역사연구자가 아닌 국문학 연구자의 글이기 때문에 어떤 전문성을 더 바라기는 어렵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지식사회학의 관점애서 바라본 일제하 기득권층 연구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다룬 많은 글들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 경력이 있는 군사독재정권이 의도적으로 역사서술에서 제외해 버려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도 받지 못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삶이 복원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파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김사국, 김사민 형제의 글을 역사 복원 측면에서 의의가 있고, 정반대편에서 일제에 철저하게 부역한 밀정(密偵), 선우순 선우갑 형제의 일화도 일제부역자들이 끼친 악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눈여겨 봐야할 인물로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세웠고 정부수립 후 우파인 한민당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김성수와 일제시대 최대기업 중 하나였던 경성방직과 삼양사를 세운 김연수 형제에 대한 글입니다.

근본적으로 당시 조선을 통치했던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그런 큰 기업과 언론사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 자명한데, 과연 이들을 ‘민족자본가’, ‘민족언론’을 세운 위인이라고 치켜세우는게 맞느냐 하는 의심입니다.

저는 이들이 모호하게 처신해서 나름 부와 명예를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들의 친일 행적은 논란이 있을지언정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위 국산품 애용 캠페인을 벌려 품질이 일본 제품보다 좋지 않은 경성방직의 제품을 국민들이 구매해서 부를 축적했눈데 그 후손들이 아무런 공헌도 없이 그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일제 패망이후 산업시설이 북한지역보다 현저하게 적었던 남한에서 해방이후 어떻게 큰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현재 한국 재벌들의 기원을 밝히는 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남긴 적산 (敵産)이 미군정에 의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대략 280쪽에 이르는 작은 책으로 앞으로 좀 더 내용 보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제시기와 해방이후를 다루는 책으로 현대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입문으로 일독하기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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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조선에 관한 책입니다. 17세기 조선 현종(顯宗)때 일어난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1670-1671)’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2008년 나온 책이고 아마도 대기근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량은 320쪽 분량으로 대중역사서로 적당한 분량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2014년 초판 4쇄로 아마 기후와 연관된 17세기 역사서가 드물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나 개정판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역사학계에서 17세기를 ‘소빙기(little ice age)’로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화에 그에 따른 대기근의 영향이 농업경제(農業經濟)가 근간인 17세기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핍니다.

시기에서 보듯 이 시기는 조선이 청의 침략을 받아 굴복한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 12월-1637년 1월) 이후의 시기입니다.

병자호란 이전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유교적 이상주의, 명분론을 내세운 서인이 집권하고 그 명분론때문에 당시 후금, 즉 청나라의 침략을 받은 것이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인조이후 효종 그리고 그 이후인 현종 당시가 이 대기근의 시기로 저자인 김덕진 교수는 17세기 특히 현종 당시는 대기근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종당시 일어났던 예송논쟁도, 그리고 김육이 실시한 조세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한 것도 현종 재위 당시를 강타한 끊임없는 자연재해, 특히 경신대기근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17세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던 16세기나 18세기 철인군주였던 정조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종은 그 후대임금인 숙종보다 대중적인 주목이 덜합니다. 장희빈과 숙중 그리고 숙종 당시의 정치적 격변이 사극의 좋은 소재가 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신대기근의 참혹한 실상은 임진왜란 당시의 참혹한 실상과 견줄만한 자연재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농사를 지울 수 없게 된 농민과 여러 하층민들은 굶주려 관청으로 달려가 밥을 달라고 하고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자식을 버리거나 줄기는 사례가 나타나고 임금과 국가는 비축해둔 식량을 모두 털어 백성을 구제합니다.

고위관료들은 이 와중에도 국가의 재정을 걱정하고 재원조달 방안을 궁리하지만, 이런 모든 결정과정이 정치과정이기에 정파에 따른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백성들을 구휼(救恤)하는 과정에서 부정이 일어나고 폭리를 취하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저자가 조선후기경제사를 전공하신 분이라 현종 재위시의 진휼책(賑恤策)을 알기쉽게 설명하셨고 당시 최대 당파였던 남인과 서인과의 관계도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조선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서인(西人)의 거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이 현종이 실시하던 구휼정책을 비판하고 백성들에게 이들이 얼마나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산림의 영수이면서도 백성들의 후생은 생각하지도 않고 현종이 어떻게든 재정을 마련해 굶주린 백성을 먹으려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수하를 시켜 비판으로 일관한 송시열의 행동은 납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즉 왕실 정치에 영향력은 커도 백성의 삶에 별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조선 중기의 중요한 논쟁인 예송( 禮訟)이 최악의 자연재해가 일어나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송논쟁이라는 것이 장자가 아닌 현종이 즉위한 이후 선대왕 효종의 계비의 장례에 대한 상복의례에 대한 것인데, 이런 하등의 생산성이 없는 논쟁에 조정의 고위관료와 유생들이 논쟁하는 것이 맞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대의 입장에서 봐도 현종의 재위시가 모두 가근으로 시작해서 끝났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자식을 버리거나 죽이고 부모를 버리고 먹을 것을 찾아 유랑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고고한 유학자들의 명분논쟁을 한 것이죠. 당대 일반 백성들도 이런 고위관료들과 송시열같은 유학자들의 이해 못했을겁니다.

제가 보기에 송시열은 지나친 명분론으로 조선의 역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명나라와 주자만 숭상한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라고 평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17세기 이후 19세기 그리고 20세기초까지 서인 특히 완고한 서인 노론의 명분론과 외척세력들이 조선사회의 성장잠재력을 좀먹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시작이 송시열이기 때문입니다.

송시열과 대척점에 서서 사실상 대기근 극복을 위한 정책을 주도란 남인출신 재상 허적(許積)은 이책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실질적인 구휼정책을 주도해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해냈습니다. 국가의 복지정책의 강도는 오히려 현재보다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현 보수정부의 각자도생식 복지정책보다 말입니다.

주목할 점은 대기근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첫째 숙종때 재정확보를 위해상평통보라는 화폐를 발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찍어서 재정확보를 한 것이죠.

둘째, 역시 국가 재정확보를 위해 부자들에게 신분이동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돈을 얼마씩 내면 가령 노비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올려준 것입니다. 대기근이 사회계급의 변동을 초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돈을 주고 산 신분이동이 처음 허용된 때도 대기근 이전인 임진왜란 직후로 당시도 전쟁으로 국가재정상황이 엉망이어서 다른 재원조달방식이 없어서 이런 조치를 취했고 현종 당시가 두번째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일정하지 않은 농업생산량과 기후에 따라 변화는 작황은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기에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고 농본사회인 조선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17새기의 이런 먹고 사는 문제는 조선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였을 당시까지 길고 긴 영향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에도 농업국가였고, 대부분의 공업시설은 북한지역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업사회의 근간은 1970년대 공업화계획이 이루어져 현실화되기 전까지 한국사회의 근간은 농업이었습니다.

따라서 근세와 근대역사륵 볼 때 농업생산성은 생각보다 매우 큰 함의를 가진 걸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17세기 조선을 덮친 대기근 이외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두 대기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래 소개하는 두 책은 기근(Famine)과 관련해 꼭 읽고 싶은 책들입니다.

Red Famine(Doubleday,2018)
스탈린 시기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에서 일어난 대기근이 관한 책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근래 더욱 주목받은 책입니다. 스탈린의 계획경제정책으로 인한 참사라는 일반적 평가를 받습니다.

Mao’s Great Famine(Bloomsbury,2018)
위의 책과 비슷한 맥락( 공산주의 계획경제)이지만 1958-1962년 마오쩌뚱 치하 중국에서 일어난 기근에 대한 책입니다. 약 45백만의 중국인들이 굶어죽은 비극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한국어판도 번역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서구의 역사가들이 저술한 것으로 보수적인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서 공산주의를 평가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적 시각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젖먹이 아이들을 놔두고 어미가 죽거나하는 경우도 있고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버리거나 죽치거나 먹는 경우도 았었다고 하니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심란하고 울적했습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기본적인 먹거리가 해결되지 못해 결국은 사회가 요동치게 된다는 걸 경신대기근의 사례로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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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nial Latin America (Paperback, 7)
Stanley J. Stein / Oxford Univ Pr on Demand / 197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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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도에 출판된 책으로 한국어판이 존재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남미 역사학 교수인 스탠리& 바바라 스테인 교수의 저서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기간을 다룹니다.

남미와 북미의 차이점을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북미는 북미 원주민 사회와 백인 이주민 사회가 분리되어 서유럽의 문명적인 영향을 받아 금방 산업사회로 발전한 반면 남미는 원주민인 인디오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으로 수입된 흑인 그리고 스페인의 이주민들이 섞여 발전이 지체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다분히 인종주의적, 유럽중심적(Eurocentric)설명입니다. 1970년이라서 이런 설명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2. 두번째는 18세기 이후 북미와 영국에서 값싼 공산품이 남미 대륙으로 밀려들고, 특히 영국이 남미와 서유럽간의 대서양 무역루트를 장악해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식민지 유산을 가진 남미대륙에 산업이 상장할 기회가 줄어들었다는겁니다.

3. 즉 경제적 산업적 측면에서 스페인과 이베리아 반도는 남미를 식민지로 경영하는데도 카톨릭 교회의 영향과 함께 중세의 중상주의적 교역체제가 바뀌지 않은 상태로 서유럽보다 뒤쳐져 있었습니다. 18세기 들어 영국과 미국의 산업에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고 이 영향은 고스란히 남미 국가들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광활한 영토와 자연자원 그리고 풍부한 농산물과 목축업이 발달되었는데도 다른 공업생산이 미비해 남미 여러나라들도 뒤쳐지게 됩니다.

4. 포르투갈 제국은 이 책에서 단지 영국의 산업을 매개해 주는 중간자로서의 성격으로 설명됩니다. 포르투갈의 브라질 지배에 있어 영국의 공산품이 브라질로 침투하여 브라질은 원료공급지이자 식민지 시장으로서만 기능하고 산업 발전의 원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포르투갈의 해상권을 영국에게 빼앗긴 18세기 이후 자국의 낙후된 산업으로 인해 영국의 값싼 공산품이 대량으로 브라질로 유입되는 걸 막을 수없었고 사실상 브라질에 영국의 이권을 대리하는 정도에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영국은 산업혁명이후 거의 전세계에서 이권을 위해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은(silver)입니다.

시기로 따지면 16세기정도로 짐작되는데 남미에서 채굴된 은은 중국 대륙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중국경제에 관한 연구를 보면 16세기 명나라 당시 중국에 상당한 양의 은이 유입되었고 그 산지로 멕시코를 지목합니다.
16세기 당시 필리핀의 마닐라와 멕시코의 아카폴코항을 연결하는 무역로가 은을 유통시킨 대표적인 경로로 알려졌습니다.

풍부한 은광이 스페인 제국의 남미 식민지 개척의 주요 요인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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