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정종현 교수의 책으로 제가 읽은 두번 째 책입니다.

전작,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2019)’가 워낙 강렬하게 다가온 탓으로 같은 저자의 이 책도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국대학 출신의 지식인들의 계보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이래 한국 기득권층의 사회적 기원을 밝힌 역작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저자도 이 책이 전작의 후속적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셨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전작보다는 평가를 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한국역사연구회의 웹진 <역사랑(歷史廊)>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기 대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짧은 글들이 연재되기 때문에 각 인물들에 대한 삶과 시대에 대한 서술이 생략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의 삶이 일제시대와 해방 분단에 걸쳐있다보니 각 시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패망과정이나 한국의 분단과정이 간단하게 서술될 성격도 아니고 특히 일제패망이후 미군정 진주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기, 미군정 시기, 그리고 정부수립과 한국전쟁 시기까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냥 별다른 언급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역사연구자가 아닌 국문학 연구자의 글이기 때문에 어떤 전문성을 더 바라기는 어렵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지식사회학의 관점애서 바라본 일제하 기득권층 연구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다룬 많은 글들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 경력이 있는 군사독재정권이 의도적으로 역사서술에서 제외해 버려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도 받지 못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삶이 복원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파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김사국, 김사민 형제의 글을 역사 복원 측면에서 의의가 있고, 정반대편에서 일제에 철저하게 부역한 밀정(密偵), 선우순 선우갑 형제의 일화도 일제부역자들이 끼친 악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눈여겨 봐야할 인물로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세웠고 정부수립 후 우파인 한민당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김성수와 일제시대 최대기업 중 하나였던 경성방직과 삼양사를 세운 김연수 형제에 대한 글입니다.

근본적으로 당시 조선을 통치했던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그런 큰 기업과 언론사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 자명한데, 과연 이들을 ‘민족자본가’, ‘민족언론’을 세운 위인이라고 치켜세우는게 맞느냐 하는 의심입니다.

저는 이들이 모호하게 처신해서 나름 부와 명예를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들의 친일 행적은 논란이 있을지언정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위 국산품 애용 캠페인을 벌려 품질이 일본 제품보다 좋지 않은 경성방직의 제품을 국민들이 구매해서 부를 축적했눈데 그 후손들이 아무런 공헌도 없이 그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일제 패망이후 산업시설이 북한지역보다 현저하게 적었던 남한에서 해방이후 어떻게 큰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현재 한국 재벌들의 기원을 밝히는 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남긴 적산 (敵産)이 미군정에 의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대략 280쪽에 이르는 작은 책으로 앞으로 좀 더 내용 보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제시기와 해방이후를 다루는 책으로 현대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입문으로 일독하기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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