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최고의 군주마저도 ‘소중화’에 목매여있던 노론벽파와 손잡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18세기 후반 조선의 정국상황입니다. 중도진영에서 처음 정권을 잡았던 김대중씨가 일본 육사출신이자 박정희 정권의 이인자였던 김종필씨와 연합정권을 세울 수 밖에 없었던 1990년대 말 상황과 겹쳐보입니다. 조선의 노론벽파세력이 끈질기게 자신의 이권을 사수하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 2019년 현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친일세력들은 후에 친미/반공세력으로 얼굴을 바꾸었고 아직도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향후 한국에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몇년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와 지리(地理)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더구나 그 장소( 場所)가 도읍이었다면 정치사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중국의 수도로 읽은 중국사로서 각 도읍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역추적해 각각의 수도의 역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5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이지만 대중강좌와 주간지 연재물을 기반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읽는데 큰 부담은 없습니다. 그래서 각 수도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여러 왕조의 이야기를 종횡으로 넘나듭니다. 4천년전 주(周)나라부터 신해혁명 (辛亥革命)이후의 중국 근현대사를 망라하기 때문에 자칫 산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시기를 집중적으로 고찰하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중국사 전반을 살피는데는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가장 큰 부분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즉 시안(西安)입니다.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시안을 택했기 때문이기에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을 처음통일한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의 무덤이 위치한 곳으로 잘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 현재 중국의 수도인 북경( 北京)은 제일 마지막 장에서 서술되면서 가장 최근의 큰 이벤트인 북경 올림픽을 다루고 있습니다. 북경이 중국 북부의 유목세계와 만리장성 이남의 농경세계를 통치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점도 적절한 언급 같습니다. 명이 청태종 홍타이지 (皇太極)에 의해 무너지는 것도 북경의관문인 산해관(山海關)이 무너진 것이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리적 위치가 동북쪽으로 치우쳐 있어 만주와 몽골초원으로의 접근이 유리한 것도 유목민족인 거란의 요(遼), 만주족의 금(金)과 이를 계승한 청(淸)이 북경을 수도로 삼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의 출간시기가 2018년이므로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전쟁은 이책에 다루어지지 않고 다만 G2의 일원으로서 현재의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대국굴기 (大国崛起)가 어떻게 투영되는지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난징(南京)을 배경으로 일어난 홍수전 (洪秀全)이 일으켰던 태평천국의 난 (太平天國─亂)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청나라 말기 서양의 기독교에 자극받아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 과거에 낙방했던 유생이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이 사건은 청의 멸망에 어떤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천자( 天子)로 여겼던 황제와 화이론 (華夷論)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황제국에 서구제국의 영향이 정치체제에 미친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서 그렇습니다. 중국사는 한국사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조선의 16-17세기를 읽으며 상대방인 중국에 대해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관심은 16-17세기에 있지만 차차 그 앞뒤의 시기도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조선과 중국을 지배해온 화이론 (華夷論)은 특히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한 조선은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 을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정조이후 집권한 노론중심의 외척세도가들도 이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에 갇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국을 유목민족의 입장에서 바라본 ‘반 중국역사(살림,2018)’을 읽었던 것도 중화론적 입장의 중국사를 다르게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책은 ‘반중국역사’에 비해서는 중국의 전통적 화이론적 입장의 저술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이 책이 꽤 재미있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짧은 시간 2쇄를 찍은 이유는 분명히 있는 것 같네요.
저자는 내몽골의 오르도스 출신이지만 현재는 일본으로 귀화(歸化)해서 일본인으로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1989년 이후 일본에 거주하며 규슈( 九州)의 벳부(別府)와 간사이(関西)의 오사카(大阪)에서 연구하고 현재는 시즈오카대학(静岡大学)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책내용보다 저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책이 제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결이 다른 내용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보수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기획했으며 저자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일본의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저서들로만 참고문헌이 서지목록에 가득합니다. 몽골및 유목민족에 관한 역사 및 역사관(歷史觀)을 이야기하고 한족의 중화주의 (中華主義)를 비판하는 책치고 일본학자들의 책으로만 서지가 채워진 것 자체만으로도 의구심이 충분히 들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재가 알기에 영미권 및 러시아와 유럽권에서도 중국및 중앙아시아 유목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를 비롯한 일반적인 독자들이 저자의 지적대로 중국중심적인 중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워온 것이 사실이고 중앙아시아의 역사나 ‘오랑캐’로 대표되는 중국의 변방지역에 대해 잘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가 ‘지나( 支那)’로 통칭하는 한족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고 만리장성 바깥의 세계를 ‘야만(野蠻)’으로 규정하는 중화주의적 역사서술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은 공감이 갑니다만 논의의 톤이 어쩐지 점점 보수화하는 일본의 입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몽골 및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과 그 주변을 다루면서 근세 일본의 왜구(倭寇)에 대한 역사, 몽골의 일본정벌, 일본 제국주의의 청일/러일 전쟁, 만주국 (滿洲國) 건국에 대한 역사가 아예 빠진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의 입장에 기대어 몽골인으로서 느꼈던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는 논조가 한국인으로서 매우 불편합니다.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을 새로운 군사무장을 가능케 하는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이 견제하는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자체가 특정한 시기를 다룬 책이 아니라 기원전부터 현재의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범위를 아우르기에 더욱 이런 생각이 듭니다.
탕평 (蕩平) 군주로 알려진 정조 이후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연간의 공론 (公論) 정치와 정치체계를 다룬 논문집입니다. 각 장마다 하나의 독립된 논문으로서 사실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무방해 보입니다. 이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래와 같은 구성입니다. 1. 영 정조 시대의 공론정치 2. 정조 사후 세도정치기의 공론정치3. 세도정치기 이후 대한제국기의 정치로 일별할 수 있습니다.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등으로 대표되는 순조이래의 세도정치(勢道政治) 시대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지만 세도정치기와의 비교를 위해 영조. 정조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의 통치체제도 같이 고찰합니다. 따라서 조선 통치체제의 기본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조선의 정치구조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고찰하며 논의를 진행합니다. 조선은 국내정치적으로 국왕이 모든 결정을 단독적으로 내릴 수 없었던 나라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전제주의 국가임에도 왕권을 견제하는 신권이 강했던 나라입니다. 주요 결정사안들은 모두 어전회의와 비변사회의와 경연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사간원과 사헌부로 대표되는 대간 (臺諫)을 통해 인사권 개입이 이루어지는 구조였습니다. 지방의 유생이나 산림 (山林)들도 상소 (上疏) 등을 통해 조정에 직접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권신(權臣)들에게 국왕의 정치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의 통치체제를 가진 조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래의 통치방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당쟁(黨爭)에 따른 공론정치의 변질입니다. 국왕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공론정치체제는 사대부들의 당파로 인해 변질되어 간쟁(諫爭)을 주도하는 청요직(淸要職), 즉 대간(臺諫)의 자리에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을 천거해 반대파 당인들을 탄핵하고 사실상 민생을 도외시하는 폐단이 나타납니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20대 국회에서 정쟁을 일삼으며 민생법안을 전혀 처리하지 않고 발목잡기하고 있는 상황과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임진왜란 당시인 선조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사대부들간의 당파는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지고 나서 다시 서인세력간에도 노론과 소론으로 그리고 노론도 시파와 벽파로 갈립니다. 영조와 정조 두 임금은 사실상 서인세력과 권력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임금들로 서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비극인 임오화변(壬午禍變)도 결과적으로 이런 권력투쟁의 결과였습니다. 특히 정조는 조선의 간쟁(諫爭)제도가 사대부들의 당쟁에 악용되었다고 보고 왕권의 강화책의 일환으로 간쟁제도를 약화시키고 억압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조 자신이 당대 최고의 철인군주(哲人君主)이기에 가능한 왕권강화책이었습니다. 당대최고의 학자인 정조 자신은 노회한 서인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당파이익을 위해 어떠한 간쟁을 하고 상소를 하더라도 이를 논리적으로 막아낼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권의 강화를 선대왕들의 묘지를 찿아가는 능행을 진행함으로써 이루었습니다. 정조는 능행 행차를 통해 백성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민원을 들음으로써 중간의 사대부들이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왜곡할 가능성을 차단한 것입니다. 이렇게 정조 당대에는 공론정치 기능을 약화시키고 왕권강화를 하면서 효과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지만 바로 다음 임금인 순조때부터 공론정치 약화의 폐단이 나타납니다. 군주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철인정치를 전제로 하는 왕권강화책은 임금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순간 약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임금인 순조때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외척(外戚)에 의한 세도정치(勢道政治)입니다. 정조이후 네 임금이 모두 어린나이에 즉위하면서 대왕대비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이 불가피했고 이런 상황은 소수의 외척세력이 국정을 마음대로 농락하는 국정농단(國政壟斷)으로 이어지게됩니다. 비선(秘線)의 실세들이 조선의 정치를 무려 100여년간 주무릅니다. 망국으로 갈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도정치기 조선정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1. 조정은 노론 벽파(老論僻派)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2. 보수적인 원리주의적 성리학을 대변하는 노론벽파는 명이 멸망했음에도 대명사대주의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중적으로 청나라에도 사대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조선이 중국의 제후국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이 여기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3. 이런 중국우선의 사대주의 외교와 다르게 일본과는 소극적인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했습니다. 4. 서양과의 외교는 중국의 속방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사고방식은 쇄국( 鎖國)정책으로 나타났습니다. 5. 서양과의 외교통상을 거부하는 상황과 함께 정조 이전부터 받아들였던 서학과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시작합니다. 특히 프랑스 신부의 죽음으로 프랑스와 외교적 마찰이 생기고 이는 병인양요의 발발원인이 됩니다. 조선은 1800년 정조의 죽음이후 세도정치기를 거치며 조선의 전통적인 경국대전 체제하의 정치도 재대로 실행할 수 없는 상항에 봉착했고 때마침 아시아에 불어닥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의 기미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체 오로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의 틀에 갇혀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로지 12세기 송나라 유학자 주희 (朱熹)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았고 국내정치는 외척들의 전횡에 무기력해진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19세기의 민중들은 무능한 조정과 세도정 치가들에게 반기를 들어 수많은 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세기 정치를 무력화시킨 노론벽파 세력들( 특히 이들 중 왕가의 외척이었던 세도정치가들)아 조선을 국치의 길로 끌고 갔다고 하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동 김씨, 반남 박씨, 풍양 조씨 그리고 경주 김씨 가문이 19세기를 풍미한 세도정치의 주역들입니다. P.S. 이전에 읽었던 안동 김씨 가문에 대한 문중역사서 한권을 같이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