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배병삼 지음 / 사계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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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다보면 필연적으로 정치와 만나게 되고 우리가 사회에서 먹고 사는 일의 모든것이 결국 정치(政治)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사회의 지도자가 (그가 왕이든, 황제이든,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관계없이) 한 결정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수없이 틀어지고 바뀝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經濟)문제는 정치를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결정권자가 모두 정치가인데 경제문제를 정치와 떼어놓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죠.

따라서 모든 경제는 정치경제(政治經濟)이며 흔히 알고있는 통계적 경제학(econometrics)를 비롯한 주류경제학에서 수학적 물리학적 설명방식을 택한 선택이 일반대중이 경제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된 주요인입니다.

기계론적 물리학적 설명방식을 택한 경제학의 방법론적인 모순이 대중의 경제 몰이해의 주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숫자를 포함하고 있어도 수학이 아니고 인간과 인간사회가 수치로서만 설명될 수는 없겠죠.

기본적으로 정치학과 경제학 모두 사회가 주된 관심대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맹자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단순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근세사를 보면 수없이 거론되는 정치철학이 바로 맹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대이후 서양의 정치체제인 자유민주주의와 전제적 채제인 파시즘(Fascism) 그리고 공산주의(Communism)을 알기 위해서는 서양의 관련서를 읽을 수 밖에 없지만 동아시아 전근대의 정치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도정치 (王道政治)의 이론을 정립한 맹자(孟子)라는 유교경전을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제가 언급할 수있는 능력은 없고 다만 배병삼 교수께서 상세하게 원문해석과 해설을 맹자가 안용한 수많은 경전과 역사서를 인용해 설명해주시고 있어서 매우 유용합니다.

다만 상세하게 설명하시다가 보니 책이 본문만 500쪽을 넘어갑니다.

이 두꺼운 책 3권이 맹자라는 경전을 해설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유교적 정치철학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결국 지나가야 할 큰 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단 일독으로 시작했지만 경전은 그 특성상 일독으로 끝날 수 없는 성격의 책입니다. 철학보다 역사와 경제에 경도된 제 독서이력에서 보면 상세한 해설에서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닙니다.

맹자가 살았던 중국의 전국시대 (戰國時代)라는 역사환경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글의맥락(context)적 이해 자체가 불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책의 마지막인 등문공 (滕文公) 상편에 나온 몇가지만 정리하고 마칠까 생각합니다.

맹자는 고대농업사회인 중국에서 직업정치가 (professional politician)가 농부로부터 분화되어 나오는 것을 역사발전의 필연으로 보았습니다. 즉 정치가는 농사를 위해 물길을 대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신노동’을 해야하는 자들이고(勞心者), 농부들은 왕을 비롯한 국가의 모든 이들을 위해 ‘육체노동’을 하는 이(努力者)로 농부들이 왕을 먹여살린다고 했습니다.
정신노동을 통한 의사결정에 시간을 쓰고 또 스트레스도 받는지라 지도자는 이상적인 ‘같이 농사짓기’를 할 여유도 없고 그래서 그래서 농부들이 지도자를 먹여살리는 주장을 했습니다.

둘째로 농경뿐만 아니라 시장(市場)의 존재도 인정해 같은 쓰임새의 물건이라도 품질에 따라 가격차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중요시해야 할 또다른 언급은 항산(恒産), 즉 살아갈 기반이 되는 물질적 생계수단이 있어야, 항심(恒心), 즉 일관된 마음이 생긴다는 주장입니다. 즉 국가는 국민들의 생계에 걱정없게 해 주는 것이 통치의 첫번째 덕목이라는 점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다시 한번 지적한 대목입니다.

생계수단을 마련해주는 수단이 시대에 따라 다를지라도 국가 통치의 기본적 역할 자체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국가가 방관하는 건 보수주의 유학자인 맹자의 관점에서 봐도 직무의 방기(放棄)에 가까운 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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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국가 3부작인 걸 모르고 읽은 책입니다. 책 뒷날개에 이어서 읽을 후속작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후속작들도 읽을 예정입니다.

이책이 번역출판된 해는 2017년이지만 중국어판이 출판된 해는 2010년으로 7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더구나 저는 2022년에야 이 책을 읽었으니 책의 내용과 현재 상황의 괴리를 감안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이 출간된 2017년은 아직 코로나 팬데믹을 겪기 전이고 한국과 중국간에 현재와 같은 신냉전 구도가 시작되기 전입니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블록의 붕괴이후 덩샤오핑 (鄧小平)이래 개혁 개방을 추진한 중국에게 2002년 중국의 WTO가입을 승인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상호공존하면서 세계화된 국제경제체제를 유지하던 시기가 2008년 전후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중국배제 정책이 시행되고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미국편에 가담하면서 이 책이 쓰여진 2010년의 세계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1976년 생으로 베이징대학 졸업한 젊은 지식인인 저자는 하지만 대학에 적을 두는 아카데미아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시각으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합니다.

청조(淸朝)의 몰락에서부터 군벌시대, 중일전쟁, 장제스(蔣介石), 중국 공산당 창당, 마오쩌뚱 (毛澤東), 그리고 덩샤오핑 (鄧小平)의 개혁개방까지를 일별하고 이후 공산주의의 정체(政體)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가진 중국 사회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서양의 중국전문가들이 바라본 중국의 사회를 인용한 부분이 상당하고, 내부에서 중국인들이 보는 중국의 역사 사회도 같이 있어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이 쓴 책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중국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각과 논평을 보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용합니다.

에세이 형식이라 본문에서 인용된 수많은 책들은 ‘중국근현대사 강의(한울아카데미,2021)’ 각 장 말미에 붙은 참고도서와 상당수 중복됩니다.
지금 미국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미국이 중국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실 수 있는데 그 반대가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하버드의 페어뱅크 교수가 바라본 중국읽기는 현재까지도 서구와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에 공산주의 봉쇄를 위해 장제스를 서구가 지원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꼭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다른 분들도 언급하셨듯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미성숙한 나라’라는 언명이 어찌 중국에만 해당될 수 있겠습니까?

성숙한 나라가 반드시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일 필요는 없지만 한국이 1948년 건국이후 70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같이사는’ 사회가 되지 못한 건 한국의 엘리트 기득권층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나라나?’ 고 질문하던 박근혜 정부 당시의 한국의 사회 정치 상황이 또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입니다.

복합재난상황에 직면한 한국의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정부는 난데없이 균형재정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경제정책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가 주류 경제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데도 현재 한국 정부는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자본가와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부를 독점했다(p326)

는 지적은 현재의 상황을 마치 눈앞이 본 것처럼 보여줍니다.

중국사회와 그 이전 100여년 간의 과거사를 보며 한국사회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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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50년 일제강점 해방 후 5년간의 대한민국의 국가형성의 역사를 취약국가( vulnerable state)의 개념으로 바라본 연구서.

저자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참고도서 목록에 저자의 동일 제목 박사학위 논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논문을 기반으로 지은 책으로 추정합니다.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자원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이 있는데( RBV;Resource Based View),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논의의 촛점도 RBV와 유사합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 두 연합국 점령군(occupied force)이 한반도에 진주하고 소련과 미국이 당시 일본땅이던 한반도에 점령통치를 시작합니다.

해방이후 많은 국민들이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 단일정부를 세우기 원했지만 북쪽은 이미 소련의 지원으로 국가형성을 시작하고 있었고 남한은 뒤늦게 국가건설을 시작합니다.

패전후 한반도에서 물러난 일본은 이땅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 사회인프라를 비롯한 물적자원과 인재의 부족이 심각하여 국가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겁니다.

대륙참략기지로 한반도의 경제체제를 만들어 놓은 일제 덕분에 전기발전 시설과 각종 공장들이 모두 북한지역에 몰려있어 남한은 분단이 되고 각각의 정부가 들어섰어도 북한으로부터 송전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한제국시기부터 박정희 군사정부시기까지 한국의 전력산업발달애 대해서는 ‘한국근현대 전력산업사,1898-1961(푸른역사,2021)’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국가형성에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이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여 치안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해야 한다는 점인데, 해방이후 바로 시작된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시기 한국은 특히 치안의 공백상황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1공화국 초기 대한민국 밈시정부를 계승하고 반일세력 척결을 기치로 내걸었던 대한민국은 인재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부일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군대와 경찰의 경우 인재부족이 심각하고 광복군 출신자들의 무능으로 국가운영이 어려워지자 받아들이게 된 지점이라고 합니다.

즉 일본군으로 중국에서 중일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일본군 출신들이 군대에 들어가 한반도 남부에서 벌어진 내란을 진압하게 되고, 일본 순사로 일했던 이들이 경찰로 다시 기용되어 치안유지를 위해 일했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 의문이 남는게, 일본경찰로 일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특별히 더 필요한 전문지식이 무엇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혹시 국가폭력인 고문기술 같은 걸 의미하는 건지 불분명합니다.

이에 비하면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에 일본군 출신이 등용된건 다소 이해는 됩니다. 독립투사와 중국의
팔로군을 토벌하기 위해 실전경험을 가진 것이라면 그리고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것이라면 일본 군사학교 출신자들이 당시 혼란스런 상황에서 유용했음 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일세력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도 문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미군정시기 해방이후 제대로된 물적 인적 기반없이 한반도 남부가 공산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유지되어야 했는데,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생각하는 전략적 우위에서 한국은 유럽과 일본에 비해 뒤쳐져 있어 미국의 원조가 충분치 않았던 겁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코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미국은 유럽과 일본을 전략적으로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미군정은 누가해도 상관없는 한국의 행정업무와 치안업무에 일제시대에 일했던 이들을 거의 그대로 쓰려고 했습니다.

미국입장에서는 한반도와 일본 모두 일제를 점령한 것이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이런 결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초기 임정을 계승하고 균등주의를 주장하며 사회민주주의 색채를 띈 것도 이런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남한은 자본가 계층이 존재하지 않았고 경장 전의 원칙에 따른 이승만 정부와 중도파의 토지개혁으로 지주층은 몰락하게 됩니다.

이 빈자리에 서북지역(주로 평안도)출신 자본가들이 나타나 정부로부터 적산 (敵産)을 배분받아 자본가 계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실 일제시기를 거치고 해방의 혼란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자본가 계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현재 한국의 사회를 규명하는 중요한 사항 중 하나입니다.

제헌헌법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계획경제와 사회민주주의, 기업의 국유화, 기회균등, 8시간 노동 등을 명시하고 있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의 대재벌기업들이 형성되었는지를 규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안을 잘 이해해야 왜 2023년 현재 지난 2008년 이후 철지나 폐기된 지 오래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적 규제완화정책을 왜 재계에서 아직도 주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추측입니다만 애초 일제의 경제적 독점으로 자본가 계급이 생성되지 않았던 한국에 갑자기 대기업이 나타나는 방법은 국유기업이 민간불하 방법 이외에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주의적 시장주의 경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와 경제의 유착으로 보지 않고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한국의 자본가 계층 형성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별도로 다시 다룰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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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개정판 중국근현대사 강의(한울 아카데미,2021)은 한국의 중국연구자들이 교과서적인 입장에서 중국의 근현대사를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은 미국에서 연구하는 중국인 학자 입장에서 저술된 책입니다.

충북대 김승욱 교수께서 번역을 하시면서 중국적 입장에서 저술된 부분을 중립적인 용어로 바꾸면서 번역을 하셨지만 그라도 중국입장의 역사서술이라는 입장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과서적으로 중국의 근대를 나누는 기점으로 흔히 아편전쟁(1840-1842,1856-1860)을 꼽는데, 이 책은 임진왜란을 근대의 기점으로 잡습니다.

아편전쟁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는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폐쇄’된 중국에 문호개방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항전으로 벌인 전쟁이 아편전쟁이고, 이 전쟁의 결과로 중국이 개항하고 ‘유럽의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로 나가게 되었다는 시각입니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이 시각은 다분히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에 기반한 시각으로 유럽이 정상이고 비유럽은 정상이 아니라는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도 포함된 설명입니다.

하지만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회가 ‘정체’되어 제국주의 유럽에 넘어갔다는 시각은 근래 수정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임진왜란(1592-1598)을 동아시아 근대의 기점으로 보는 시각은 일견 타당합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처들어온 일본의 군인 중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카톨릭 다이묘(大名)였다는 사실도 있고, 임진왜란 이전 이미 일본이 포르투갈을 통해 화승총 기술을 전해 받아 이미 임진왜란에서 조총으로 실전배치를 끝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이미 마르코폴로 이후 마테오 리치를 대표로 하는 서양의 선교사들과 교류를 진행해 상당한 서양지식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명말 타이완을 차지했던 정성공 (鄭成功)은 청 제국 초기 남명 정권을 세우는데 일조한 군인으로 네덜란드의 수중에 있던 타이완을 탈환합니다.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어 동아시아에 나타난 네덜란드는 일본과는 나가사키를 통해 교역하고 있었고, 타이완을 점령하고 무려 40여년을 그 섬에서 보냈습니다.

동아시아가 ‘패쇄적’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왜곡의 여지가 큽니다. 알려지지 않아서 모르는 상황을 일반적인 대외쇄국과 정체로 파악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 ‘이라는 동아시아 전쟁이 가지는 의미가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순히 조선사애서 조선 전기와 후기를 구분짓는 분기점만이 아니고, 동아시아 역사의 맥락(context)애서 봤을 때 말입니다.

사상적 견지에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쿠데타인 인조반정(仁祖反正,1623)이 일어나 서인정권이 들어섰고 제조지은 (再造之恩)을 명목으로 쇠퇴하고 있는 명에 대한 무조건적 사대를 주장합니다.

오랑캐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외교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실책을 범합니다.

결과는 병자호란이고 조선은 패했습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층을 지배했지만 그들의 사상은 그들의 사회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사상적으로 좀 달랐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주희 (朱熹)의 유교 경전해석은 그저 유교경전을 읽는 한 방법이지 조선에서처럼 절대시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청의 강건성세(康乾盛世)시기, 즉 강희제가 ‘삼번의 난’을 진압한 1681년부터 옹정제 그리고 건륭제 치하의 시기에, 청은 대외적으로 팽창하여 러시아와 국경선을 획정하였고 중앙아시아의 준가르 평원까지 정복해 오이라트 몽골을 복속하기까지 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동북에서 몽골과 러시아와 마주하고 교류하고 외교협상을 하고 군사정복을 하던 청은 청대 아담 술을 비롯한 유럽의 지식도 같이 흡수 했습니다.

그러니 주희가 해석한 근본주의적 성리학은 여러 해석 중 하나였고 이미 당시 중국에서조차 뜬구름 잡는 추상적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선과 다르게 중국에서는 양명학(陽明學)과 고증학(考證學)이 발전해 왔는데, 고증학의 경우도 전적에 파묻혀 사회현실을 진단하고 참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조선에서 송시열 (宋時烈)로 대표되는 서인 노론계 근본주의적 성리학이 대책없이 경직된 유학이며 허상을 쫓는 학문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이변태(華夷變態)라는 표현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중국이 고대로부터 한족(漢族)을 화(華)로 그 외 다른 민족은 오랑캐인 이(夷)로 여겨져 왔습니다. 중원의 한족국가인 황제에게 주변의 제후국들은 조공관계를 맺고 왕위를 책봉(冊封)받아 정치적 권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동북의 오랑캐인 만주족이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명실상부하게 중원을 장악하고 심지어 타이완까지 차지하게 되어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한족 중심이라던 화이론(華夷論)자체의 전제가 흔들리게 된 겁니다.

조선과 일본은 이 중대한 중국의 변화에 다른 입장을 취했습니다.
조선은 전통적 한족국가인 명에 대한 사대를 고집했고 일본은 스스로 중화(中華)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두 국가의 이 다른 선택이 조선과 일본이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만든 분기점이었습니다. 일본은 이 선택으로부터 20세기에 이르러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고 조선과 중국, 만주지역과 동남아시아,타이완까지 침략하게 되고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게 됩니다.

중원이 더이상 중화가 아니라는 자각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다른 대응이 역사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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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사 강의 (양장) - 개정판 중국근현대사학회 강의총서 1
중국근현대사학회 엮음, 배경한 책임편집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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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청나라 말기부터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까지의 중국의 역사를 개관한 책입니다.

각 장이 하나의 주제로 단행본을 구성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한권에 모아서 처음 읽기 적합한 책입니다.

각 장 말미에 붙은 참고문헌이 구미와 일본 그리고 중국과 한국 학계의 연구목록을 망라한 듯해 유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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