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원작자인 에코교수도 번역가인 이윤기 소설가도 모두 고인 (故人)이 되었지만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모두에게 기억될 듯 합니다. 암흑의 시대 (Dark Age)로 알려져 왔던 서양의 중세를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빌러 소환한 당시로서는 무척 충격적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1990년대 초 이 소설을 만나고 이미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당시 중년의 숀 코너리와 앳된 크리스찬 슬레이터를 만날 수 있었던 이소설의 영화판도 같이 기억되었으면 합니다.제임스 본드로 이름을 떨친 숀 코너리가 007이외의 작품을 시작한 때로 기억하며 이후 인디애나 존스에서 코믹한 인디애나 아버지로 주가를 올리지요. 소설의 영문판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여서 한번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조선최고의 군주마저도 ‘소중화’에 목매여있던 노론벽파와 손잡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18세기 후반 조선의 정국상황입니다. 중도진영에서 처음 정권을 잡았던 김대중씨가 일본 육사출신이자 박정희 정권의 이인자였던 김종필씨와 연합정권을 세울 수 밖에 없었던 1990년대 말 상황과 겹쳐보입니다. 조선의 노론벽파세력이 끈질기게 자신의 이권을 사수하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 2019년 현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친일세력들은 후에 친미/반공세력으로 얼굴을 바꾸었고 아직도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향후 한국에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몇년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와 지리(地理)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더구나 그 장소( 場所)가 도읍이었다면 정치사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중국의 수도로 읽은 중국사로서 각 도읍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역추적해 각각의 수도의 역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5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이지만 대중강좌와 주간지 연재물을 기반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읽는데 큰 부담은 없습니다. 그래서 각 수도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여러 왕조의 이야기를 종횡으로 넘나듭니다. 4천년전 주(周)나라부터 신해혁명 (辛亥革命)이후의 중국 근현대사를 망라하기 때문에 자칫 산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시기를 집중적으로 고찰하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중국사 전반을 살피는데는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가장 큰 부분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즉 시안(西安)입니다.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시안을 택했기 때문이기에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을 처음통일한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의 무덤이 위치한 곳으로 잘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 현재 중국의 수도인 북경( 北京)은 제일 마지막 장에서 서술되면서 가장 최근의 큰 이벤트인 북경 올림픽을 다루고 있습니다. 북경이 중국 북부의 유목세계와 만리장성 이남의 농경세계를 통치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점도 적절한 언급 같습니다. 명이 청태종 홍타이지 (皇太極)에 의해 무너지는 것도 북경의관문인 산해관(山海關)이 무너진 것이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리적 위치가 동북쪽으로 치우쳐 있어 만주와 몽골초원으로의 접근이 유리한 것도 유목민족인 거란의 요(遼), 만주족의 금(金)과 이를 계승한 청(淸)이 북경을 수도로 삼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의 출간시기가 2018년이므로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전쟁은 이책에 다루어지지 않고 다만 G2의 일원으로서 현재의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대국굴기 (大国崛起)가 어떻게 투영되는지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난징(南京)을 배경으로 일어난 홍수전 (洪秀全)이 일으켰던 태평천국의 난 (太平天國─亂)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청나라 말기 서양의 기독교에 자극받아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 과거에 낙방했던 유생이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이 사건은 청의 멸망에 어떤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천자( 天子)로 여겼던 황제와 화이론 (華夷論)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황제국에 서구제국의 영향이 정치체제에 미친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서 그렇습니다. 중국사는 한국사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조선의 16-17세기를 읽으며 상대방인 중국에 대해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관심은 16-17세기에 있지만 차차 그 앞뒤의 시기도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조선과 중국을 지배해온 화이론 (華夷論)은 특히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한 조선은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 을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정조이후 집권한 노론중심의 외척세도가들도 이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에 갇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국을 유목민족의 입장에서 바라본 ‘반 중국역사(살림,2018)’을 읽었던 것도 중화론적 입장의 중국사를 다르게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책은 ‘반중국역사’에 비해서는 중국의 전통적 화이론적 입장의 저술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이 책이 꽤 재미있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짧은 시간 2쇄를 찍은 이유는 분명히 있는 것 같네요.
저자는 내몽골의 오르도스 출신이지만 현재는 일본으로 귀화(歸化)해서 일본인으로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1989년 이후 일본에 거주하며 규슈( 九州)의 벳부(別府)와 간사이(関西)의 오사카(大阪)에서 연구하고 현재는 시즈오카대학(静岡大学)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책내용보다 저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책이 제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결이 다른 내용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보수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기획했으며 저자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일본의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저서들로만 참고문헌이 서지목록에 가득합니다. 몽골및 유목민족에 관한 역사 및 역사관(歷史觀)을 이야기하고 한족의 중화주의 (中華主義)를 비판하는 책치고 일본학자들의 책으로만 서지가 채워진 것 자체만으로도 의구심이 충분히 들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재가 알기에 영미권 및 러시아와 유럽권에서도 중국및 중앙아시아 유목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를 비롯한 일반적인 독자들이 저자의 지적대로 중국중심적인 중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워온 것이 사실이고 중앙아시아의 역사나 ‘오랑캐’로 대표되는 중국의 변방지역에 대해 잘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가 ‘지나( 支那)’로 통칭하는 한족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고 만리장성 바깥의 세계를 ‘야만(野蠻)’으로 규정하는 중화주의적 역사서술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은 공감이 갑니다만 논의의 톤이 어쩐지 점점 보수화하는 일본의 입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몽골 및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과 그 주변을 다루면서 근세 일본의 왜구(倭寇)에 대한 역사, 몽골의 일본정벌, 일본 제국주의의 청일/러일 전쟁, 만주국 (滿洲國) 건국에 대한 역사가 아예 빠진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의 입장에 기대어 몽골인으로서 느꼈던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는 논조가 한국인으로서 매우 불편합니다.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을 새로운 군사무장을 가능케 하는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이 견제하는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자체가 특정한 시기를 다룬 책이 아니라 기원전부터 현재의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범위를 아우르기에 더욱 이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