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던 책입니다.

초연결사회 (hyper connected society)애 진입하면서 각 개개인이 소셜미디어로 연결되고 이는 전통적인 언론미디어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흔히 도발자 또는 선동가로 번역될 수 있는 영어의 provocateur가 이 책의 주제이며, 이들이 변화된 공론장( 公論場)을 오염시키는 주역이라는 주장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현재 변화된 한국의 언론지형에서 보수언론의 한편에 ‘받아쓰기’와 ‘인용’이 하는 일의 전부인 출세지향적 ‘기레기‘집단이 존재한다면, 그 정보의 소스 (source)로 존재하는 극우 유튜버들이나 유사언론인 등 막말과 도발을 직업으로 삼는 집단을 여기서 말하는 프로버커터라고 보면 됩니다.

프로보커터들은 ‘주목(attention)’이 돈이 되는 초연결사회에서 주목을 받기위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혐오발언과 유언비어 그리고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말과 막말 모욕스런 언사를 거리낌없이 배설합니다.

책이 비록 허무맹랑한 도발을 일삼고 조회수 장사에 혈안이 된 저급한 인터넷 시대 담론을 다루고 있지만 소수의 저급한 발언과 막말이 일상으로 침투하고 정치판을 진영논리와 대결구조로 몰고가는 상황은 결코 가볍게 볼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는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조차 없는 극우 프로보커터의 발언을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사회구성원들끼라 이해보다는 대결, 그리고 공감보다는 혐오를 하게 되고, 소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이 무방비 상태로 폭력에 노출되는 극심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런 소수 프로보커터들의 몰상식한 발언과 향태는 사회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안이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끝없이 노출되는 지금, 정보의 신뢰성(reliability)을 판단하지 못하는 많은 대중들에게 근거없는 믿음과 잘못된 오해를 끊임없이 일으키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유 정치권, 특히 소위 보수정치권이 보수언론의 기레기 집단과의 협업하의 공론장의 여론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진실을 은폐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에 출입하던 법조기자 출신이 공영방송에 낙하산으로 사장으로 임명되어 기자본연의 업무인 ’정부비판‘을 한 것을 보고 프로그램을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구성원의 의사도 묻지 않은체 자르는 무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책애도 나오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소위 주유보수언론들은 ’화장실 낙서‘에 불과한 정보가치가 없는 프로보커터들의 발언을 여과없이 인용해서 소위 민주진영 인사들을 깎아내리고 폄하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평소 극우매체들이 쏟아내는 허무맹랑한 헛소리 내지 가짜뉴스, 그리고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혐오발언들을 보면서 나라가 왜 이모양이 되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혐오‘의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자기자신이 올바른 판단력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몰상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정신차리고 살려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가 제대로 된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말고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부하지만 책을 읽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eBook이 아니고 종이책말입니다.

억만장자인 실리콘밸리의 CEO들이 왜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멀리하게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미 알려져 있듯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운명의 이기가 자식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아니까 사용제한을 두는 겁니다.


30여년 전만해도 한자를 익히기 위해 그리고 글의 논리를 익히기 위해 종이신문의 사설을 읽은 적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 기자들은 자신이 쓰는 글이 정부관료들이 불편하더라도 그냥 실어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자들의 상당수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바라보고 있고 정부가 주는 보도자료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조건( requirement)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의 타락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시절 ’종편‘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것 역시 우연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계급적 이익을 위해 언론시장을 재편해서 공론장을 사실상 악화시키고 제기능을 못하게 만든것이죠.

다시 말하지만 조회수장사를 하기 위해 막말과 혐오표현을 일삼은 극우 프로보커터들과 정부와 기득권의 입장과 주장을 받아쓰기만 하는 기레기 집단들이 언론을 자처하면 어쩔 수 없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스스로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방법이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정치문화와 언론환경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대면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고 책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읽거나 들은 혹은 시청한 정보들을 되새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벼르고 가다듬는 방법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읽으려했으나 아직 읽지 못한 책을 하나 소개합니다.

정치공론장과 ’혐오의 자유‘에 대한 부제가 인상적입니다.

김학준 지음, 보통 일베들의 시대 (오월의 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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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임기자이자 북한학자인 저자가 1990년이후 2018년까지의 남북관계 30여년을 조망한 책입니다.

이책에서 남북관계를 분석하는 프레임(Frame)으로 비대칭 탈냉전 ( 非對稱 脫冷戰)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이 틀로서 지난 30여년간의 남북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 탈냉전이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하고 이후 소련이 무너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의 오랜 대립인 냉전(Cold War)이 종식된 이후 한국은 이전까지 북한의 혈맹이었던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어 국교를 정상화한 반면, 북한은 냉전당시 적대국이었던 일본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지 못한 사실을 말합니다.

한국이 경제적 정치적우위를 확실하게 점한 반면 북한은 미일과 국교정상화에 실패한 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국가체제위기는 이후 북한의 핵개발의 주요 동인(momentum)이 되었고, 냉전이후 북한의 대화를 이어가려던 클린턴 행정부이후 2000년대 들어 아들 부시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위기국면으로 가게 됩니다.

부시정권 당시 네오콘으로 불리는 골수 자유주의자들은 군산복합체를 배경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 9.11테러의 배후를 이라크라고 믿고) 북한을 악의 축( Axis of Evil)로 부르며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을 펼칩니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공을 들이고 남북경협으로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벌였으나 자유시장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극우정권인 이명박 박근혜정부는 경제적 실익도 챙기지 못한 체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하고 북한 적대시정책을 ‘아무이유도 없이’펼쳐 한국의 기업들이 극심한 손해를 입은체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 했고, 10여년간 이어져온 금강산 관광사업에서도 손을 떼었습니다.

경제적인 관건에서 봤을 때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대북경협철수는 매우 불합리한 결정입니다.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인들 중에 남북경협에서 생긴 이익이 북한의 핵개발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는 물증이 전혀 없는 그들의 ‘믿음’에 불과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의 핵개발 능력 검증처럼 개성공단의 자금에 대한 정밀 ‘감사’가 이루어져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믿음을 위해 실리를 포기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결정을 시장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보수정부에서 한 겁니다. 최소한의 어떤 합리성도 보이지 않은 결정입니다.

이후 북한은 무조건적인 핵폐기를 압박하는 미국의 네오콘을 위시한 서구자유주의자들에 맞서 핵개발을 지속하다가 전임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검찰정권인 현 윤석열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부인하면서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고,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인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면서 지난 30년간 개척한 거대시장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몰상식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외교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무능 (extremely incapable)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교를 공부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도 국익( national interest)이 외교의 목적이라는 걸 아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30년간 공들여온 중국 러시아 시장을 걷어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옹호하지 않지만 전임 정부가 북한을 잘관리해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없애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도대체 감정적으로 북한과 전쟁하자고 하는 이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눈으로 보고서도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 자체로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을 보면서 보수적인 군인 출신이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임동원씨의 회고록과 2차 북한 핵위기 당시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6개국 ( 남 북 미 일 중 러)와 6자회담을 이끈 송민순 전 외교수석의 회고록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동원, 피스메이커 (창비,2015)
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창비,2016)

그리고 미국쪽에서 북한을 오래 관찰한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의 책도 봐야할 것 같습니다.

Selig S. Harrison, Korean Endgam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북한은 남한 입장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잘 알 수 없는 이웃같은 존재입니다. 더구나 한국전쟁 이전 저희 부모세대들은 북한지역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살던 지역입니다.

70여년이 지나도록 한국전쟁의 ’망령‘ 에 붙들려서 북한을 계속 적대시하면 한국이 얻을 이득이 뭘까요?

미국에서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까 아는게 한국의 대북전략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한국이 국익이 다른 미국의 대북전략을 따라가야만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이 자신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한 주장을 하면 한국은 한국의 국익에 맞는 주장을 하면 됩니다. 주장은 일치할 수도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대화가 싫다면 소위 보수진영에서 제일먼저 할일은 한국에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회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극열한 주장을 해도 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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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 -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신규환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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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이미 지적하셨듯이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본문 270여쪽 가량인데 같은내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도시사와 사회사쪽에서 흥미있는 20세기초 북경의 하층민에 대한 연구가 될 수 있는데, 내용이 부실해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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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라프 스밀(Vaclav Smil)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캐나다 과학자는 MS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 Bill Gates)가 좋아하는 저자 중 한분이라는 그의 발언을 통해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분의 책은 이번에 읽은 책이 처음입니다.

2022년도에 출판된 책으로 저자가 코로나 펜데믹 (COVID 19 Pandemic)기간 중 책을 집필했다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본문 230여쪽에 잘하는 소책자이지만 저자는 전체 7장으로 이루어진 각 장에 대해 사실 각각의 단독저서를 집필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내용을 모아 좀더 쉽게 풀어쓴 대중적인 과학책 내지는 기술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유명한 에너지 전문가 이기도 한데, 지금 자동차업계에서 일어나는 전기차 제조열풍을 그다지 현실성있는 석유 석탄에너지 대체의 방법으로 보지 않습니다. 모든 내영기관 자동차들이 일시에 전기차로 바뀌기도 어렵지민, 베터리를 위한 소재인 코발트가 아프리카 콩고에 집중되어 있어 현지의 노동착취와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그다지 긍정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식량생산에 있어서는 현재처럼 적은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암모니아와 질소를 기반으로 한 비료생산이 시급하고, 농업 생산력을 올리는데 질소기반 비료를 생산하고 공급하지 않는 이상 주요 식향지원인 밀과 쌀을 생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이나 도시농업을 주장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수경재배는 입사귀 식물밖에 생산 못하고 사람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삼기는 빈약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세상의 산업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네가지로 암모니아, 철, 콘크리트 그리고 플라스틱을 뽑았습니다.

모두 현재 대체가 불가능한 소재들로, 암모니아 없이는 비료생산이 불가하고, 철이 없이는 어떤 중휴장대한 구조물도 만들 수 없으며, 콘크리트가 없이 내구성이 강한 건축물 짓기가 블가하고, 플라스틱없이는 어떠한 의료기기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물질적 기반에 대해 현실적인 현재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에 환견우선주의자들의 비현실적이고 비관적인 미래상에 대해 경고를 보냅니다.

또한 세계화에 대해서도 석유를 기반으로 한 디젤엔진과 마찬가지로 원거리 비행을 가능하게 한 항공기용 터보엔진 없이 1990년대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되었던 세계화(globalization)을 생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설명관점은 전형적 경제학자들이 무시하거나 설명하지 못했던 경제가 굴러가는 주요요인으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를 실제 생산활동에 사용하기 위한 구동기의 발달이 있지만 이런 경제가 굴러가는 원리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경제학자는 매우 드뭅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중요성이 자주 언급되지만 그외에 혁신(innovation)을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영국판으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이미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츠라프 스밀 지음, 김주헌 옮김 (김영사,2023)

책을 일고나서 이분의 전작이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이분이 에너지 전문가이기 때문에 에너지 관련된 책은 꼭 읽고 싶네요.

Energy and Civilization: A History ,Vaclav Smil (MIT Press,2018)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자동차업계는 내연엔진이 발명된 이후 100여년을 지배하던 기술적인 패러다임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역사적시점(A Historic Moment)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처음 있는 변화이고, 항공기쪽도 제가 알기론 전기앤진구동을 연구하는 걸로 아는데 아마 항공기 엔진 출력이 자동차보다 훨씬 강해 실용화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입니다( 세계화관련된 편에서 저자도 언급한 사항입니다).

아무튼 석유때문에 중동지역에서 100여년 가까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그리고 아직도 석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게 가격이라면 그 다음 누가 어느국가가 시장을 좌우하는지를 알아보는게 순서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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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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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에 출간된 서울의 ‘재개발’관련된 일종의 르포입니다.

저자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일을 하다 경향신문 기자가 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책은 아파트가 아닌 공간에서의 삶의 쾌적을 추적합니다. 즉, 중계동 백사마을, 동대문 상권에 위치한 창신동, 남산 밑의 다산동, 세운상가 일대와 을지로의 공구거리의 삶을 추적하죠.

흔히 아파트단지가 뒤덮은 서울은 공동체(community)가 사라진 거주공간이고 사실상 마을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70년대까지 있었던 같은 동네주민, 이웃이라는 말은 이제 점점 더 쓰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저역시도 인생의 절반이상을 아파트단지에 살아 그 외의 공간에서의 삶이 어떠한지 어릴때의 기억 뿐 지금은 어떨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이 책은 한국 특유의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무시’한체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속도’에 집착해서 ‘실현 불가능한’계획을 남발하고 있는지 드러냅니다.

오래전부터 거리에 사진을 찍으러 나갈때마다 느꼈던 것은 서울의 ‘경관’이 너무 빨리 바뀐다는 것이고 또 과거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나라도 한국처럼 하나 들여다 보면 이런 과거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리는 전면 재개발은 한국에서만 행해지는 행위였습니다.

서울에서는 매우 드물게 오래된 건물의 외양을 남긴체 내부를 현대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도 문화재급 군대건물이나 기념물만),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글, 특히 일제시대에 지어졌던 적산가옥이나 일제가 만든 공장건물들은 속절없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건물이 들어섭니다. 이 행위자체가 그 공간에 대한 ‘역사’말살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나 종로에 위치한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유네스코가 서울시의 세운상가지역 재개발에 제동을 건 사례가 책에서 나옵니다. 이 사례가 극단적이라고 한 이유는 굳이 조선초기의 건축물이라서 보존가치가 있고, 경관훼손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조선시대 유산뿐만 아니라 일제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과 종묘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조선시대 한성에서 출발했지만 현재의 서울은 일제시대 경성에서 직접적인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팩트는 팩트니까 인정하고 가야하고, 일제말기면 1930-40년대인데, 지금사점에서 이때 지어진 거의 100년이 다된 건물들 중 일부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물은 구체적인 삶의 증거고, 더구나 일제의 식민통치를 눈으로 볼수있는 증거입니다. 보존해야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이땅에서 한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친일파 저택과 일반 국민들의 가정집이 같이 남아 있어야 일제의 부당한 대우도 알수 있는데 말이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과거의 흔적을 너무 쉽게 없애버렸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시장을 비롯한 선출직 지자체장이니 건축관련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파괴하고 철거하는 건물들의 가치를 알고싶지도 않아하고 별 생각도 없는것 같습니다.

뭐 일제시대 건축물에 대해서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인문학적 관심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운상가와 을지로 공구상가 재개발편에서 보여준 공무원들 , 특히 건축관련 공무원들의 경제적 ‘무감각’은 거의 재앙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보면서 가치사슬이 뭔지 산업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배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청계천변 을지로 공구상가와 세운상가 재개발을 계획하면서 그 지역의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협업을 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건물주의 아이극대화에만 ‘편협’하게 몰두합니다. 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과 사업은 고스란히 무시한 체 낡은 건물을 헐고 새건물 올릴 생각만 하고 입만 열면 ‘첨단 산업‘이야기만 합니다.

이건 그냥 무지의 소치입니다. 보수적인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IT나 플랫폼 사업 그리고 그에 수반된 서비스산업은 몸으로 일하는 제조업과 유통업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의 기반이 제조업이고 그걸 떠받치는 게 부품 공구 산업인데 한국전쟁이후 청계천변 을지로에서 자그마치 70년 이상 대를 이어 일을 하던 기술자들의 공동체를 부수고 그 네트워크를 없앤 뒤에 새건물을 지어 나올 수 있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되길래 이런 무도한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건축관련 공무원들이 땅팔아 먹는 것만 알지 나머지는 아는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합니다.

끝으로 도시미관이라는 요상한 말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도시미관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요새식으로 말하면 판자집인 토막(土幕)문세를 거론할 때부터 나온 걸로 압니다. 지금부터 거의 100여년 전이죠. 일자리가 많은 경성에 일하러 온 총부들이 비싼 경성의 집을 사지못해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았는데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성 밖으로 이들을 이주시킵니다.

약 50여년 뒤 박정희 정부시절, 거의 판박이 같은 일이 또 일어납니다. 주로 청계천 변에 살던 빈민들을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현재 성남인 경기도 광주로 이들 빈민를 강제아주시킵니다.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허허벌판에 국민들을 버린 겁니다. 그래서 1979년 이 빈민들이 박정희 정부에 반기를 드는 ‘광주대단지 사태’가 일어납니다.

그 이후로도 도시미관을 이유로 국민을 내다버리는 폭력적 향태는 계속됩니다.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자그마치 100여년 이란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걸 보고, 도대체 한국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가, 서울시장과 건설관련 공무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데는 모르겠고, 최소 제가 가보았던 유럽의 대도시들은 건물을 함부로 부수거나 철거하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낡은 건물이 즐비한 프랑스 파리같은 도시는 보기와 다르게 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건물을 지었으면 튼튼하게 잘 지어서 오랫동안 고쳐쓰는 게 정상이지, 건물의 노후연한을 법적으로 20년으로 지정하고, 20년 지난 건물은 철거해도 된다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건 우선 건설회사와 토지주들이 너무 돈만 밝히는게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러면 한국에 왜 20세기 이후 제대로 된 역사적 건축물이 없나 불만도 제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20년 넘으면 건물철거하는게 법적으로 보장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몇백년이 지난 고건축물이 남아 있을 수 있겠어요? 20세기 이후 한국의 건축역사와 도시의 역사는 ‘소거’되는 겁니다. 나중에 20세기 서울 시민들이 아파트와 주상복합말고 어디에 살았는지 아무런 실체도 알 수 없게 되는거죠.

책은 본문 226쪽의 소책자로 서울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저자가 각주에서 소개한 재개발 관련 법령해설이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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