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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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에 출간된 서울의 ‘재개발’관련된 일종의 르포입니다.

저자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일을 하다 경향신문 기자가 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책은 아파트가 아닌 공간에서의 삶의 쾌적을 추적합니다. 즉, 중계동 백사마을, 동대문 상권에 위치한 창신동, 남산 밑의 다산동, 세운상가 일대와 을지로의 공구거리의 삶을 추적하죠.

흔히 아파트단지가 뒤덮은 서울은 공동체(community)가 사라진 거주공간이고 사실상 마을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70년대까지 있었던 같은 동네주민, 이웃이라는 말은 이제 점점 더 쓰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저역시도 인생의 절반이상을 아파트단지에 살아 그 외의 공간에서의 삶이 어떠한지 어릴때의 기억 뿐 지금은 어떨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이 책은 한국 특유의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무시’한체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속도’에 집착해서 ‘실현 불가능한’계획을 남발하고 있는지 드러냅니다.

오래전부터 거리에 사진을 찍으러 나갈때마다 느꼈던 것은 서울의 ‘경관’이 너무 빨리 바뀐다는 것이고 또 과거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나라도 한국처럼 하나 들여다 보면 이런 과거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리는 전면 재개발은 한국에서만 행해지는 행위였습니다.

서울에서는 매우 드물게 오래된 건물의 외양을 남긴체 내부를 현대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도 문화재급 군대건물이나 기념물만),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글, 특히 일제시대에 지어졌던 적산가옥이나 일제가 만든 공장건물들은 속절없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건물이 들어섭니다. 이 행위자체가 그 공간에 대한 ‘역사’말살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나 종로에 위치한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유네스코가 서울시의 세운상가지역 재개발에 제동을 건 사례가 책에서 나옵니다. 이 사례가 극단적이라고 한 이유는 굳이 조선초기의 건축물이라서 보존가치가 있고, 경관훼손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조선시대 유산뿐만 아니라 일제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과 종묘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조선시대 한성에서 출발했지만 현재의 서울은 일제시대 경성에서 직접적인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팩트는 팩트니까 인정하고 가야하고, 일제말기면 1930-40년대인데, 지금사점에서 이때 지어진 거의 100년이 다된 건물들 중 일부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물은 구체적인 삶의 증거고, 더구나 일제의 식민통치를 눈으로 볼수있는 증거입니다. 보존해야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이땅에서 한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친일파 저택과 일반 국민들의 가정집이 같이 남아 있어야 일제의 부당한 대우도 알수 있는데 말이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과거의 흔적을 너무 쉽게 없애버렸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시장을 비롯한 선출직 지자체장이니 건축관련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파괴하고 철거하는 건물들의 가치를 알고싶지도 않아하고 별 생각도 없는것 같습니다.

뭐 일제시대 건축물에 대해서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인문학적 관심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운상가와 을지로 공구상가 재개발편에서 보여준 공무원들 , 특히 건축관련 공무원들의 경제적 ‘무감각’은 거의 재앙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보면서 가치사슬이 뭔지 산업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배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청계천변 을지로 공구상가와 세운상가 재개발을 계획하면서 그 지역의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협업을 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건물주의 아이극대화에만 ‘편협’하게 몰두합니다. 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과 사업은 고스란히 무시한 체 낡은 건물을 헐고 새건물 올릴 생각만 하고 입만 열면 ‘첨단 산업‘이야기만 합니다.

이건 그냥 무지의 소치입니다. 보수적인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IT나 플랫폼 사업 그리고 그에 수반된 서비스산업은 몸으로 일하는 제조업과 유통업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의 기반이 제조업이고 그걸 떠받치는 게 부품 공구 산업인데 한국전쟁이후 청계천변 을지로에서 자그마치 70년 이상 대를 이어 일을 하던 기술자들의 공동체를 부수고 그 네트워크를 없앤 뒤에 새건물을 지어 나올 수 있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되길래 이런 무도한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건축관련 공무원들이 땅팔아 먹는 것만 알지 나머지는 아는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합니다.

끝으로 도시미관이라는 요상한 말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도시미관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요새식으로 말하면 판자집인 토막(土幕)문세를 거론할 때부터 나온 걸로 압니다. 지금부터 거의 100여년 전이죠. 일자리가 많은 경성에 일하러 온 총부들이 비싼 경성의 집을 사지못해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았는데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성 밖으로 이들을 이주시킵니다.

약 50여년 뒤 박정희 정부시절, 거의 판박이 같은 일이 또 일어납니다. 주로 청계천 변에 살던 빈민들을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현재 성남인 경기도 광주로 이들 빈민를 강제아주시킵니다.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허허벌판에 국민들을 버린 겁니다. 그래서 1979년 이 빈민들이 박정희 정부에 반기를 드는 ‘광주대단지 사태’가 일어납니다.

그 이후로도 도시미관을 이유로 국민을 내다버리는 폭력적 향태는 계속됩니다.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자그마치 100여년 이란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걸 보고, 도대체 한국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가, 서울시장과 건설관련 공무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데는 모르겠고, 최소 제가 가보았던 유럽의 대도시들은 건물을 함부로 부수거나 철거하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낡은 건물이 즐비한 프랑스 파리같은 도시는 보기와 다르게 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건물을 지었으면 튼튼하게 잘 지어서 오랫동안 고쳐쓰는 게 정상이지, 건물의 노후연한을 법적으로 20년으로 지정하고, 20년 지난 건물은 철거해도 된다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건 우선 건설회사와 토지주들이 너무 돈만 밝히는게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러면 한국에 왜 20세기 이후 제대로 된 역사적 건축물이 없나 불만도 제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20년 넘으면 건물철거하는게 법적으로 보장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몇백년이 지난 고건축물이 남아 있을 수 있겠어요? 20세기 이후 한국의 건축역사와 도시의 역사는 ‘소거’되는 겁니다. 나중에 20세기 서울 시민들이 아파트와 주상복합말고 어디에 살았는지 아무런 실체도 알 수 없게 되는거죠.

책은 본문 226쪽의 소책자로 서울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저자가 각주에서 소개한 재개발 관련 법령해설이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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