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계승범 교수님께서 최근 펴내신 책입니다.

저자께서 밝혔듯이 이 책은 이전의 연구논문들을 모아서 펴내신 책으로 조선 중기이후 조선사대부들을 집어삼켰던 이데올로기인 사대주의(事大主義)특히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보내 조선을 구했다고 여겨 명나라를 아버지로 조선을 자식으로 생각하는 부자관계로 보는 강상(綱常)의 의리가 양국의 외교관계를 규정지었고, 이는 또 근본주의적 성리학을 신봉하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지배엘리트인 양반사대부들의 정체성(identity)를 규정해 대청제국과 새로운 관계를 전혀 정립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의 이런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피할수 있었던 전쟁인 병자호란을 피하지 못한 원인이었고, 조선은 청나라에게 삼전도에서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해군이 선조의 마지막 왕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켜 강상(綱常)의 의리를 저버렸다는 명목으로 반정을 일으키고 집권한 인조는 반정의 명목이 무색하게도 아버지인 명을 버리고 짐승처럼 여겨지던 오랑캐인 여진족인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의 예를 다하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인 사대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일이 발생한 것이었고 수직적 계급사회였던 양반사대부들은 사회의 기강이 무너져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칠까봐 매우 두려워한 상태였습니다.

중국 한족입장에서는 동쪽의 오랑캐(東夷)일 뿐으로 여겨진 조선이 스스로 소중화( 小中華)를 자처하고 이미 민주족이 중원을 장악한 중국에서도 중국문화전통이 이어지지 않아 조선만이 중화의 후예라고 자처한 인식은 너무 과도한 근본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제활동과 군사력 증강을 소홀히 여기고 윤리와 명분만 중요시 여기는 심약한 척화주의자(斥和主義者)들이 경전이나 인용하면 허황된 논박을 이어가는 사이 배고픈 백성들은 굶어죽고 전쟁터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선은 일 안하는 세습귀족인 양반과 경제활동과 군사력 모두 감당해야 하는 평민들로 갈라진 사실상 두개의 사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조선중기사회를 평가할수는 없지만 분명히 힘을 잃어가는 나라인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 강조하고 중국의 현실적 지배자인 만주족의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하며 상대하지 않는 처사는 분명히 이상한 처신입니다. 더구나 전쟁을 하면 질줄 알면서도 전쟁불사를 외치는 상소를 한다는 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책에는 힘이 없어 오랑캐로 여겨온 청나라에 굴복을 한 뒤 조선의 사대부들이 청나라에서 보내온 국서의 내용을 위조(僞造)하며 대명사대주의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안타까운 역사왜곡, 기억조작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현실적 준비를 게을리해서 나라를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료의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합니다. 헛된 명분없이는 권력도 유지하지 못할만큼 무능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승범 교수님은 조선중기 광해군, 인조 시기에 대한 책을 여러권 쓰셨는데 제가 읽었던 몇권을 소개합니다.

모후의 반역(역사비평사,2021)

위에서 언급한 인목대비유폐와 인조반정에 대한 책입니다.

중종의 시대(역사비평사,2014)

조선이 어떻게 유교국가가 되었는지를 고찰한 책입니다.

그리고 책후반부에 언급한 대보단(大報壇)과 19세기까지 이어진 대명사대의식에 대한 책도 있습니다

정지된 시간: 조선의 대보단과 근대의 문턱 (서강대 출판부,2011)

위의 책을 읽으면서 명나라가 망했는데도 대명사대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청나라 몰래 명나라 군주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조선의 지배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9세기 말인 고종 당시까지 제사가 이어졌다는 사실에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군주에 대한 충성은 바뀔 수가 있고, 시원찮은 군주는 백성의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는 정치사상이 유교입니다. 특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인정한 맹자같은 선진유교(先秦儒敎)의 관점에서 볼때 근본주의적 성리학(性理學)은 너무 사변적이고 경직적이며 지나친 윤리학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유교경전에 대한 해석도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각주본이 나오는 게 이런 성리학의 경직성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병자호란과 척화파의 명분론을 읽게되면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답답한 마음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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