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출신 재미사학자 장융전의 책을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이화승 교수께서 옮기신 책입니다.

책의 원제목은 礎材晉育, 즉 ‘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교육시키다’입니다.

춘추전국시대 강남의 한 ‘오랑캐’국가였던 초나라의 인재를 초기 춤추시대 강국인 진나라에서 교육시킨다는 의미로 산업화에 뒤쳐진 중국이 당시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던 미국으로 인재를 보내 교육시킨다는 의미가 있는 제목이죠.

중국출신이 아닌 타이완출신 학자의 책이고, 역자분도 타이완에서 공부하신 분입니다.

미중갈등이 첨예한 2024년 현재 중국인 엘리트들이 미국유학을 열망하고 심지어 미국인처럼 되려고 했다는 지난시절 중국의 이야기는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접하는 공산주의 중국의 모습만으로 중국의 실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전 만주족이 지배하던 전제주의적 중국이 있었고, 개항이후 나름 서구화 근대화를 이루려고 발버둥치는 중국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서양의 중국진출에 어떻게 대비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결과의 일부가 이책에 있습니다.

책은 1872-1931년까지 19세기말에서 중일전쟁 전까지의 중국인들의 미국유학사를 다루고 있고, 청대 말기부터 위안스카이의 독재정치, 군벌정치와 중화민국의 개국시기까지를 포괄하며 당시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국의 엘리트 학생들이 중국과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두 나라를 바라보았는지 이들이 쓴 논설과 여러 글들을 분석하며 이들의 생각을 되짚어 봅니다.

이시기는 미국에 아직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로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없어 중국으로 귀국했어야 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부분 중국의 부유한 상류층 출신으로 남자들은 대부분 국비로 장학금을 받았고 10% 남짓한 여학생들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의 자비유학생이었습니다.

책을 보면 미국은 매우 배타적인 인종주의 국가로서 심지어 중국 국적의 유학생과 결혼한 미국 출생의 화교들마저 미국 국적을 박탈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이민을 혐오하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상당수의 미국출신 회교들이 중국인과 결혼 후 중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차별이 완화된 시기가 1960년대라고 하니 미국 주류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그 역사가 꽤나 깊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 유학하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의 동부 해안지대 출신으로 광동성(廣東省)출신이 가장 많았고 죽경등 동북부 출신들은 광동, 장쑤, 저장성 등 중국 남부출신들을 업신여기고 심지어 이들이 쓰는 언어가 달라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워 영어로만 소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원래 중국에서도 대부분 상류층이거나 광동의 부유한 성인집안의 자제였던 이들은 미국 유학으로 배타적인 엘리트 의식을 더 키워 갔으면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 따라 많이 배우면 출사를 하는 그래서 정부의 고위관료가 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중국의 과거 사대부들이 유학공부를 한후 과거시험에 합격후 관직에 진출하는 출세경로가 20세기가 된 후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겁니다. 그래서 초기 유학생들은 청 정부에 자신들을 임용하라고 요구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기득권 층에 속했던 중국의 미국유학생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적이었고, 이건 그들이 향후 중국의 관료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유학출신 중엔 20세기 초반을 휩쓸던 사회주의에 경도된 이들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책은 본문 475쪽으로 약간 부담될 수도 있는 두께이고, 상당부분 중국 유학생 관련 통계자료 등이 나오고 여러장의 20세기 초 중국 유학생들의 동창회나 여름캠프 사진 자료가 나옵니다.

심지어 초기 유학생들은 중고등학교부터 대학 또는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나와 심지어 대학을 세곳 정도 다닌 이들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는 코스가 아니라서 당시 중국유학생들이 ‘미국화’된 정도는 현재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중국인들의 미국 유학의 역사 혹은 유학생들의 사회사 내지 사상사라고 볼 수 있고 이렇게 근대화 초기 일부 학생들을 뽑아 선진국에서 교육을 시킨 경우는 물론 중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당시 청말의 중국의 경우도 두가지 유학경로가 있었는데 그중 한곳이 일본( 매이지 일본)이고 또다른 곳이 미국입니다. 비용면에서 일본이 저렴해 집안 배경이 낮은 많은 이들이 일본을 택했다고 하고 그중에는 현대 중국문학의 비조로 불리는 루쉰(魯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도 일제시대 많은 수재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조선땅에 1925년까지 제대로 된 대학이 없어 많은 조선 유학생들도 일본에서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의 초기 미국유학의 경우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조선의 초기 일본유학생들도 일본에서 10여년씩 공부를 하다보니 지나치게 일본화되는 경우가 속출했는데 중국의 초기 미국 유학생들도 지나치게 미국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대화와 경제발전 초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catch up)일정부분 선진국의 이론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이제 한국의 경우도 경제발전계획을 세우고 따라잡기 전략으로 경제정책을 세운지 반세기가 넘어가 이제는 따라잡기를 넘어선 뭔가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하고 또 독자적 사고체계와 이론체계를 갖추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틀을 서구에만 의존하는 건 매우 안이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과거처럼 마냥 서양 이론만 수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현대를 통틀어서 기득권을 구성하는 지식인들의 유학과 그들의 괘적을 추적한 책들이 몇권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지식인의 일본 유학에 관한 책으로는

옌안성, 한영혜 옮김, 신산을 찿아 동쪽으로 향하네 (일조각,2005)

오래된 책이지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책입니다.

다음으로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본제국대학 유학에 대한 책입니다.

정종헌,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이책은 일재강점기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들이 해방이후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는 등 그들의 졸업 후 행적이 초기 대한만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돌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이책에는 일제시대 조선인 법조인들이 왜 공인된 친일파였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학가 이광수의 일본유학과 그의 일생에 대한 책입니다.

하타노 세츠코, 최주한 옮김,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 푸른역사,2016)

최초의 근대문학가 이광수가 일본 유학이후 어떻게 찬일파로 변해가는지를 일본의 이광수 연구자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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