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에서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조영헌 교수의 연구서를 읽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께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책을 집필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책의 자매편과 같은 좀더 대중적인 책이 얼마전 나왔는데, 지금 소개하는 책과 어떤면에서 다른지 아래의 저자의 최근 저작도 시간이 되면 읽고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조영헌, 대운하 시대 1415-1784 ( 민음사,2021)
아무튼 이책의 물리적인 외관을 좀더 정리하면 본문이 423쪽으로 통상의 300쪽 내외의 연구서보다 분량이 조금 됩니다. 그리고 각주와 참고문헌 서지목록이 약 200여쪽을 차지합니다. 일단 책의 체제나 글의 밀도 면에서 깊이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특정분야에 깊이있는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통사위주로 역사서를 읽어오신 분들에게는 책내용이 어려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책 제목이 명시해주듯, 이책은 중국의 근세, 즉 명청시대 대운하와 두 왕조의 조운정책(漕運政策)과 그 참가자들인 상인계층 중 특히 양자강과 황하(黃河)와 회하(淮河)가 만나는 지역인 회양지역에서 활동하던 현재의 안후이성(安徽省)의 휘주(徽州)출신 상인들의 사회경제적 역할에 대해 연구한 연구서입니다.
따라서 책은 중국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이자 명과 청이 주면의 국가와 각 지방으로부터 조공(朝貢)과 세금을 납부하는데 꼭 필요한 대륙운송로인 대운하의 역할에 대한 물류( logistics)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근대 시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황제에게 진상되는 각 특산품이 현물로 조달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곡물과 소금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회안과 양주에 거점을 둔 휘주상인들은 특히 소금거래를 장악했던 이들로 명 청 두 왕조를 대신해 소금을 운반하는 사업을 해왔습니다.
이 책이 커버하는 15-18세기는 서양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알려진 시기와 겹치는데, 중국의 경우 명초기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남경(南京)에서 북경(北京)으로 천도한 이후 수당 시대 이미 건설해놓은 대운하를 이용하기 위하여 그리고 강남지역의 풍부한 물산을 수도 북경으로 운송하기 위해 대운하를 준설하고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 이 운하는 강남의 항주(杭州)에서 시작하여 북경까지 중국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중간에 중국의 큰 강인 양자강과 황하를 가로질러 건너갑니다.
조세를 징수하기 위해 거대한 물길을 뚫은거죠.
명나라 중기때인 15세기, 명은 동쪽해안에 나타난 왜구로 인해 해상교역을 원활히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영향으로 항행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정책을 펼쳐 원나라 당시만 해도 바다를 통해 각종 세곡을 받았던 해운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조세물품은 전적으로 대운하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닷길을 통해 강남의 세곡과 물산들이 이동하지 못하게 되자 대운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왕조의 관려들이나 대운하의 수운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역시 대운하의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과 청 조정은 특히 양주와 회안 지역에서 3가지 중요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것은 조운( 즉 소금을 북경까지 운송하는 것), 하공( 운하 관리, 운하의 범람을 대비해 운하 준성과 제방을 쌓는 것) 그리고 염정( 국가의 전매품인 소금에 대한 통제)입니다.
북경이 북쪽에 치우쳐 대운하를 통해 올라온 곡식과 소금 등 먹거리에 대한 수급은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문제였고 이는 청나라 시기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 두 황제가 친히 대운하를 타고 남쪽에 내려오는 남순(南巡)을 행했다는 사실로 그 중요성이 입증됩니다. 두 청의 황제는 재위기간 중 각각 6차례나 대운하를 타고 강남지역 시찰을 했고, 특히 대운하의 중간에 해당하고 수해에 취약한 지역인 회양지역의 치수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농공상이 분명하던 근세시기 회안과 양주에 자리잡은 휘주상인들이 염업으로 사업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공사업에 참여하고 운하와 관련된 고위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문사계층인 신사(紳士)층과 거의 동등한 사회적 위상을 가진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휘주출신 상인집안 중에서 과거 신사로서 문인계급이었던 자손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자 객지로 나가 장사를 하는 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중국적 특징으로 보입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사회인 명나라였지만 조선처럼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책에서 잠깐 언급이 나오지만 조선에서 금기시된 양명학(陽明學)의 영향을 받은 신사와 상인계층이 있어서 문사계층이 상업활동을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에 국제정치학자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교수의 중국에 대한 언급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전쟁에 직면해 있으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전략적 우위는 아시아에 있고 미국의 가장 큰 라이벌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기 때문에 아시아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유명하신 이 분이 중국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하셨는데 최근의 한국의 중국 경시풍조는 임계점을 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익을 생각하면 중국을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를 그만두어야 하고 중국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굳이 병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하고 국가전략을 짜는 고위관료라면 중국을 무시하는 행위 그 자체가 국익훼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경제에서 배제하고자 하지만 이건 미국의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그 레토릭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