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의 서양사학자께서 쓰신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이책이 故 이영석 교수님의 유고(遺稿 )라니 안타깝습니다.

서양사 특히 영미권의 책은 사실 영어판을 읽어온 터라 한글로 한국학자가 쓴 책은 많이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책은 저자가 과거에 발표하신 논문과 저서 그리고 번역서를 기반으로 쓰신 역사에세이입니다.

따라서 통상적인 다른 역사서처럼 특정한 시기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일관적으로 서술된 책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역사서술방법이 도입되고 있는데도 주분야이신 사회사(Social History) 분야를 집착해오셨다는 고백이 놀랍습니다 (p8). 유행에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주분야에 대해 계속 파고드는 인문학 연구는 지금처럼 학문의 실용성이 강조되고 모든 학문이 인스턴트식품처럼 변해버린 세태에 귀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두가지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3장 공습과 피난의 사회사
6장 19세기 유럽사를 보는 시각

위에 언급한 두 글이 저에게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3장이 나찌 독일의 영국 대공습 (The Blitz)에 관한 이야기이고 6장은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Eric Hobsbaum)과 리처드 에반스(Richard Evans)가 쓴 19세기 유럽사에 대한 서평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개전 초기, 영국은 전시 수상으로 처칠( Winston Churchill)이 수상으로 당선된 이후 당시 프랑스를 침공해 영국 침공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결사항전을 독려하는 한편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참전을 계속 종용합니다. 독일공군의 영국공습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가장 최근 것으로는

The Splendid and the Vile,Erik Larson( William Collins,2020)

참조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글은 공습 자체보다 이 공습에 대한 경험이 당시 영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살피고, 영국인들이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까지 총화단결하여 싸운 것이 일종의 신화(Myth)가 아닌지 점검합니다.

전후 세계질서를 만드는 데 영국의 정치가 처칠의 영향력이 커서 그의 나찌에 대한 항전에 대한 이야기가 정치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독일의 대공습 당시 도시에서 시골로 피난 갔던 여성들과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전쟁이후 경험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공중폭격에 대한 연구는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에서도 거의 전무한 상황인데, 폭격이 북한지역에 집중되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학자가 쓴 미공군의 공중폭격에 대한 책은 제가 아는 한 이 책이 유일합니다.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 창비, 2013)

위의 연구서는 이전부터 읽으려 했지만 읽을 기회가 쉽게 오진 않습니다.

다음 6장 19세기 유럽사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책에 대한 서평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특히 얼마전 세상을 떠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19세기 삼부작 ( 한국에도 오래전에 한길사에서 번역을 해서 한국어 판본이 존재합니다)에 대한 서술방식을 비평하고 최근 출간된 리처드 에반스 교수의 19세기 유럽사인 ’힘의추구 (The Pursuit of Power)’에 대한 글을 평가했습니다.

The Pursuit of Power , Richard Evans ( Penguin,2017)

영국의 유명한 현대사가 (Modern Historian)로 알려진 리처드 에반스는 독일사가 전문인데 저자에 따르면 특히 19세기 독일사회사가 전문이라고 합니다.

19세기 100여년의 시간은 서구에서 보나 동아시아의 한국에서 보나 매우 중요한 시기로 생각합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반세기는 산업혁명이후 제국주의로 팽창을 계속하던 서구세력이 러시아와 일본제국주의와 마주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장기 19세기‘는 자본주의의 팽창과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 경영이 극에 달한 시기이고, 후발로 자본주의 근대화를 받아들인 일본이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에서 이권을 계속 차지하자 이를 모방하기 위해 정치부심하던 시기였고, 20세기 초 대만과 홋카이도 병합을 시작하고 오키나와를 복속하고 이후 조건을 침략합니다. 그리고 조선을 병참기지로 삼은 뒤 중국대륙을 침략하고 만주에 괴뢰국을 세웁니다.

길게 보아 19세기는 그야말로 전쟁과 갈등의 세기였던 20세기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서구의 시각에서든 한국의 시각에서든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서양사가 더이상 한국사회에 귀감이 된 모델로서의 필요는 예전보다 덜해졌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정치적 사회적 조직과 제도의 원산지로서 그리고 이런 외국에서 도입된 제도가 한국에서 제대로 적용이 되는지 보려면 그 비교대상으로서의 가치는 아직도 유용한 것 같습니다.

호흡이 긴 책보다 짦은 글모음이 편하다면 일독을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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