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근대외교사 관련서를 읽었습니다. 재미역사학자이신 故 김기혁(1924-2003)선생의 박사학위 논문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신 김범선생께서 옮겨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427쪽에 달하는 이 책은 원래 영문으로 쓰여져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University of California,Davis)에 제출된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하고 1979년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된 책을 다시 한글로 옮긴 것입니다.

아무래도 박사학위 논문이다보니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지 전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와 고종의 전기 치세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외부적으로 청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침탈을 받기 시작한 시기이고 러시아가 동진(東進)을 계속해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고 청과 재정 러시아의 국경분쟁이 지속되고, 러시아의 연해주 영향력 행사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항이 만들어지던 시기였습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하고 서양식 정치 경제개혁을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서양의 국제관계인 조약체제를 받아들입니다.

일본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인 중국을 우위에 두는 조공(朝貢)체제에 도전하고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사할린 관련 협상을 진행하고 타이완을 침공합니다.

일본이 중국의 전통적 질서에 도전한 또 한 예는 메이지 일본이 류큐(琉球)왕국을 일본에 합병한 것입니다 이 섬나라는 중국과 반조공 관계에 있었고 메이지 이전 사쓰마(薩摩)번에 복속되었지만 일본이 중앙집권 정치체제를 구축한 후 합병해 버린 겁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많이 강조되지 않지만 메이지 일본은 이미 1910년 조선을 병합하기 이전 류큐와 에조치(蝦夷地, 형 홋카이도)를 병합하고 타이완에 부대를 보내 침공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일본은 청과 청일수호조규(淸日修好條規,1871)을 맺어 전통적인 조공관계가 아닌 조약관계로 청과의 국제관계를 다시 시작하며 청과 대등한 위치에 섰으며, 이후 전함을 이끌고 조선에 나타나 문호개방을 요구합니다.

조약의 관점에서 이 책의 중심은 그래서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1875)입니다.

미국의 페리제독의 통상요구로 개항해 불평등한 조약을 맺었던 일본은 그들이 서양 당했던 그대로 조선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고 그들이 서양에서 배운 그대로 전함을 끌고 나타나 무력시위를 합니다.

대원군 집권기는 이 보수 정치가의 쇄국정책(鎖國政策)으로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독자에게 주는데 이는 조선왕조의 말기 상황을 알아야 이해가 되는 정책입니다. 대원군은 19세기를 온통 지배했던 외척의 세도정치( 勢道政治)에 염증을 느낀 인물로 양반의 과도한 힘이 욍권을 짓누르는 걸 졸 수 없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양반들의 근거지인 사원을 철폐하고 양반들의 특권을 불리는 정책을 편 이유고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경복궁을 중건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저하고 보수적인 왕족으로 유교주의자인 대원군은 18세기부터 조선에 들어온 서학(西學)과 천주교를 이단시했고 조선의 전통을 망친다고 생각한 인물입니다. 외교에서 중국과의 전통적 조공책봉관계를 중시한 대원군과 유교세력들은 따라서 조선이 개항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고종은 생각아 달랐고 청의 이홍장(李鴻章)의 조언에 따라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확장을 경계하며 사실상 그가 주도한 협상에 따라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열강들과 조약을 체결해 외세의 조선침탈을 막기 위한 외교적 장안을 마련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주목할 사안이 있습니다.

첫째, 일본과 관련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본의 공사관이 부산의 왜관이 아닌 한성과 인천에 새워졌다는 건 일본의 조선 침탈에 큰 의미를 지나는 사실입니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일본의 모든 외교업무는 부산에서 이뤄졌고 조선은 일본 외교관의 한성 주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부산만이 일본과의 유일한 교류 창구였습니다.

하지만 임오군란(壬午軍亂,1882)을 계기로 일어난 대원군의 정권 찬탈시도와 청군과 일본군의 조선 상륙을 계기로 일본은 조선을 협박하다시피 하며 한성에 일본공사관을 설치하고 부산이외 원산과 인천을 개항시킵니다.

전통적으로 쓰시마(對馬)가 부산의 동래부사를 상대로 진행된 일본 막부와 조선의 통상관계는 구한말에 이르러 조선 중앙정부와 메이지일본과의 조약관계로 바귀었고 청과의 조공관계의 의미가 퇴색했습니다. 일본은 수백년동안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한성과 인천 그리고 원산에 접근하게 되며 결국 조선을 식민지로 만듭니다.

두번째는 이홍장이 추진한 조선과 미국 영국 독일과의 수교조약 조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국제관계에 무지한 조선의 관리들은 사실상 이홍장의 조언에 따라 구미각국과 수교를 진행했고 조미수호조약의 경우 초안까지 이홍장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태 단 책에서 보지 못한 내용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홍장과 조선 그리고 미국을 중재한 어윤중과 김윤식들 초기 개화파의 역할은 너무나 수동적이었습니다.

청은 조공체제하의 종주국으로서 여태까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깨고 적극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해 조선의 개항을 위한 조약을 구미각국과 체결한 것입니다.

아무리 명목상의 사대이고 중국을 상국으로 받들어도 조선은 자체적으로 통치될 수 있다고 한들, 결국 조선은 구한말 힘이 없어 청의 내정간섭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의 사대부가 중국을 섬기고 일을 안하고 힘을 기르지 않아 생긴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19세기 조선을 주무른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일가 등의 책임이 가볍지 않습니다. 명가가 아니고 조선의 멸망에 일조한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축재를 하기 위해 군대를 기르지 않고 서학신자라는 이유로 반대파인 남인의 싹을 잘라버린 결과의 여파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추측컨데, 한국사학계에서 변방에 속하시는 해외의 연구자의 글이기 때문에 40여년이 지나도록 한국어 출판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하시다가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신 것도 그렇고 전형적인 역사학자로 사신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에 고등학교 교과서에 배운 내용과 비교해보면 솔직히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있어 낯설었습니다. 무척 밀도가 있는 내용이어서 구한말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없으면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범 선생이 옮긴 또 다른 재미 역사학자의 책을 소개합니다.

조선 변방과 반란,1812년 홍경래 난(푸른역사,2020)

저자인 김선주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옮긴 책입니다. 조선 양반들의 서북지역( 평안도지역) 차별로 왜 그 지역 지배층이 중앙에 반란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북 지역은 청으로 가는 연행사가 지나는 길목이고 오랜세월 조선의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외세의 영향도 많이 받아 한국의 기독교 중심세력들이 원래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도 합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라 해방이후 한국의 주류세력에게도 그리고 지식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지역입니다. 단순히 북한의 수도가 있는 북한의 중심지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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