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동 교수의 근대건축기행
김정동 지음 / 푸른역사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목원대 김정동 교수님께서 1999년에 펴내신 책입니다.
잡지 기고문을 모아내신 책이고, 대중적인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내용이 일관되지는 않지만 서울에 현존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의 이면(裏面)과 내력을 알 수 있어 입문용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책입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이 되서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초창기에 출판했던 책이고 20여년 전에는 근대사적 관점에서 조망한 건측이나 도시의 내력에 대해 해설하는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꽤 신선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글에 소개된 건물 중 명동의 국립극장은 처음에 메이지좌 (明治座)라는 극장으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남촌에 가까운 지역의 특성 상 일본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일본영화 상영관으로 개관했고 해방 이후 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이 극장은 증권사 사무실로 사용되었고 제 부모님 뻘 되는 어르신들은 이 극장을 시공관(市公館)으로 불르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공공극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명칭은 해방후 국립극장이 되기 전 명칭이라고 합니다.

이 극장은 다행히 보전이 되어서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성공회 대성당도 얼마전 성당 앞을 가리던 건물이 철거되어 그 모습을 태평로에 내보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종로2가 보신각 건너편에 있었던 화신 백화점이 사라진 것입니다.

회신의 박흥식이 새운 최초의 백화점으로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종로2가 앞 사거리를 ‘화신 앞’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건물이 사라지고 삼성에서 고층빌딩을 지어놓아 현재 아무도 그 장소에 화신백화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조선사람이 만든 화신백화점은 없어지고 미스코시(三越) 경성점이던 신세계백화점과 조지야 (丁字屋)백화점이었던 미도파백화점은 사라졌지만 롯데영플라자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서도 문화유산이 왜 꼭 조선시대 지배층이 살던 건물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같은 의문과 근대적 건축물의 보전을 김교수께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 오셨네요.

근대의 역사가 일제 강점기와 중첩되어 있어 경원시되는 대상이라고 해도 바로 현재를 이루고 있는 기반이라고 볼 수 있고, 일제의 조선 강점도 그들이 남기고 간 ‘증거’로서 건축물이 눈앞에 있어야 비판을 하든 긍정을 하든 할 수 있지만 돈만을 쫓고 편리함만 쫓는 세태는 그 흔적을 너무나 손쉽게 없애버립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이전에 너무 과격하게 일제의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사람들은 혹시 과거의 친일행적을 없애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도시가 여러시대의 삶이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어야 한다면 이미 지나가 돌이킬 수 없는 일제강점기 역시 그이전 조선과 같이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소가 있어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이죠. 기록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반쪽밖에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또한 책에서 조선 최초의 엘리트 건축가 박길룡에 대해 소개해 주셨는데 처음 알게된 분이고, 화신백화점의 설계를 담당하셨던 분이라고 하셔서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워도 조선총독부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도 그렇고 자신의 이름으로 건축설계를 하기 위해 건축사무소를 새운 일화도 모두 아무도 끌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최초의 인물이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 책은 건축의 역사에 관한 책이지만 이 분야가 경제사와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대구 삼성상회 사옥 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이 초기 대구에서 제분업(製粉業)과 제면업 (製麵業)을 하기 위해 사옥 겸 공장을 지었는데 1930년대 말 대공황 시기 부족한 식량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이 비지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삼성의 창립자 이병철씨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도쿄와 그 인근 지역의 경제 사정을 둘러보면서 사업에 적당한 업종을 찿는 모습도 같이 소개됩니다.

저자는 이런 과거의 기록들이 모두 한국 재벌 역사의 아주 초창기부분에 해당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의 거치면서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을까가 궁금하긴 하지만 의외로 이 주제를 다룬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어딘가 기록이 있고 연구서가 있겠지만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1970년대 이후 국가의 개입으로 현재의 거대기업군이 형성된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궁금한 건 그 전사(前史)입니다.

정말 실력으로 그 거대기업의 터전울 마련했을지 그 시대의 운이 작용되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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