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50쪽 가까이 되는 메이지유신관련 정치경제사 책입니다.

역사가가 쓴 책이 아니라 언론인 출신 작가가 쓴 책이고 일본사료를 주로 인용했지만 각주나 인용형식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참고문헌에는 나오지 않고 본문에서만 인용된 책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서술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출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단점이 존재합니다.

출판사에서 아셔야 할 것이 이책과 같은 일본 근대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부실한 각주와 인용이 있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각주와 인용이 없기를 바라면 소설을 읽어야지 뭐하러 역사서같은 논픽션을 찿아 읽겠습니까?

이상이 이 책의 형식적인 측면이고 내용에 대해서는 두가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첫번째는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메이지유신을 본 것입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나온 규슈 (九州)의 사쓰마 (薩摩), 와 사가(佐賀) 그리고 혼슈(本州)와 규슈를 연결하는 조슈(長州)지역이 16세기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에 가장 많은 병사를 보낸지역이며 이미 15세기부터 아시아에 교역을 하러 나타난 포르투갈 상인과 교역을 시작하고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총포를 포르투갈에서 도입하고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후 카톨릭 포교를 강제하는 포르투갈과 관계를 정리한 후 네덜란드와 사가의 나가사키(長崎)를 거점으로 교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츠마에서 포르투갈 소총을 처음 도입하게 되고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와 교역하면서 근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각종 의술과 전쟁에 관련된 기술, 항해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17-18세기 규슈를 중심으로 난학(蘭學)이 발전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사쓰마와 사가지역은 에도시대 중심인 현재의 도쿄에서 멀리떨어진 변방이라 중앙 바쿠후(幕府)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한 영향도 있고, 지리상 위치가 중국의 남부해안지역과 한반도 남단 그리고 류큐(琉球), 타이완(臺灣) 등과도 멀지 않아 일찍부터 대외교역(또는 해적)활동을 많이 해온 관계로 해외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덜했던 걸로 보입니다.

현재 야마구치현(山口県)에 해당하는 조슈지역은 혼슈남부지역으로 간몬해협(關門海峽)을 사이에 두고 규슈와 연락됩니다.
오래전에 후쿠오카(福岡)-고쿠라(小倉)- 모지(門司)- 시모노세키(下關)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철도로 3-4시간내에 갈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도 기차로 2 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고 나가사키 바로 옆에 미군기지가 있는 사세보(佐世保)항이 있습니다.

나가사키 글로버 저택이 위치한 언덕에 서면 미쓰비시의 나가사키조선소가 보입니다. 과거 군함을 건조하던 곳입니다.

현재도 부산-시모노세키간 관부연락선( 關釜連絡船)이 오고가던 곳으로 한반도의 영향이 지대한 지역 중 한곳입니다.
가깝게는 얼마전 퇴임한 일본 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 그리고 그의 외할아버지로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로 불리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을사늑약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모두 죠슈 출신입니다.

역대 조슈지역 출신 총리들은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메이지유신이래 한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총리가 ‘대대로’나온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기지속의 역사로 매이지유신를 살피면서 저자가 주목한 또 한 부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이 이후 일본경제에 미친 영향입니다.

사실 도자기가 임진왜란 포로들에 의해 일본에 도입된 사실은 알아도 누구도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서 일단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진실을 찾아내는 노력은 주목할만 합니다.

서쓰마와 사가 그리고 조슈 모두 조선에서 건너온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의 도자문화의 시조가 되었으며, 이들은 일본에서 살기 위해 에도막부시절부터 각 번의 영주들에게 도자기를 납품하였습니다. 수출품이 별로 없던 당시 일본에서 각 본 지도자들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상인들에게 도자기를 수출하게 됩니다. 이렇게 도자기를 팔아 만들어진 재원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네덜란드와 영국으로부터 각종 상선과 중기선, 그리고 전함을 사들이고, 화포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유럽으로 수출한 도자기가 분명 국가재정에 큰 보탬이 된 것 같지만 설명 자체는 비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영국에 수출한 도자기가 일본의 전체 수출액 중 얼마를 차지했는지 보여주고 추이를 알려주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책에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자기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정치경제사인지 도자사인지 좀헷갈렸습나다.

다음으로 매이지유신은 결국 영국이 후견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러시아의 동진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입장이라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력은 이미 1840년 아편전쟁이후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메이지 유신 당시인 19세기 중반 나가사키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무기상인 글로버가 규슈 전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자딘 메디슨의 나가사키 지사인 글로버상회에서 일한 글로버는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井上馨) 등 조슈출신 번사들의 영국유학을 알선한 장본인이고, 사쓰마와 조슈에 매이지 유신을 위한 무기를 공급해준 사람이었고, 미쓰비시 재벌(三菱財閥)을 만든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의 동업자였고 이후 글로버상회가 파산한 후 미쓰비시의 고문으로 일하게 됩니다.

영국은 무기상인 글로버를 통해 일본을 후원했고 대륙세력인 러시아의 영향력 저지를 위한 큰 밑그림이 있었습니다.

미국도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 외무대신 가쓰라 다로(桂太郎)와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간 가쓰라 태프트 각서를 체결해 일본의 조선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합니다.

이협약으로 미국은 일본의 조선지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영미권 업무처리의 특징이 철저하게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고 이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상업적 마인드라면 이들은 약 160여년 전에도 일본과의 비지니스애서도 철저하게 그러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슈번의 유신을 이끈 정치인들의 출신에 대한 사항입니다. 놀랍게도 여기에서 메이지천황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조슈번 출신 유신 정치가들이 대부분 조선인의 피가 섞인 이들이라는 점과 매이지 천황이 조선인 부락 출신의 천민과 바뀌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부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주장이지만 저자의 글과 일본에서 출간된 책의 어주 간략한 인용밖에 없어 솔직히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놀라우면서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이 되죠. 당혹스럽기도 하고.

인용한 책의 출판년도도 1970년이니 이미 50년전에 나온 책인데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후에 유사한 내용으로 추가적인 연구발표가 있었는지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자료가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내용은 책의 마지막 정인 6장 후반부에 주로 나옵니다.

과문한 저로서는 조슈지방에 임진왜란 당시 끌려갔던 도자기 장인들의 후손들과 여러 임란 당시 포로들이 과연 조슈번에서 일대를 풍미했던 정한론(征韓論)과 관련이 있는지 주장하는 건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찿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