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간된 신간입니다.

구한말 고종 재임시 서울에서 초대 러시아 공사를 지냈던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의 평전입니다.

내용은 거의 90%이상 베베르가 조선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 1860년대부터 1890년대 말에 이르는 기간을 다룹니다.

이 책은 러시아 외교관의 외교활동을 러시아 사료를 통해 접근했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한국계 러시아 역사연구자인 벨라 보리소브나 박의 러시아어 저서를 한러관계사를 전공한 두 전공자께서 한국어로 번역한 책입니다.

글의 대부분이 외교문서의 인용이 많은데다 번역투도 있어 아무래도 한국 연구자가 직접 저술한 책처럼 가독성이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1840년 아편전쟁이후 영국이 영향력을 동아시아지역으로 점차 넓히고 있었고 시베리아로 동진을 해서 연해주에까지 진출한 러시아도 조선과 함경도에서 국경을 맞대면서 조선문제의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베베르라는 러시아 외교관은 중국전문가로 외교관에 들어선 인물로 최초에 중국으로 부임했다 조선에 초대 러시아공사로 부임해 1884년 조선과 러시아와의 수교조약을 체결한 실무자였으며 조선과 러시아와의 육로교역을 위한 조러육로통상장정을 체결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후 조선에 눈독을 들이던 일본이 조건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갑신정변(甲申政變,1884), 갑오개혁(甲午改革,1894), 을미사변 (乙未事變,1895), 춘생문 사건(春生門事件,1895) 등을 현장에서 지켜본 외교관 중 한명이었습니다.

아마 외교관 베베르가 한국 근대사에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인 것은 그 자신이 고종과 가까운 고종의 정책자문을 해왔다는 사실과 최초 조선에 러시아공사관을 개설하고 제정러시아와 조선간에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역사적 고비마다 일제의 조선의 주권 침해에 맞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고 그 다음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1896)이 일어나는데 이 정치적 행위로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을 점령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게 됩니다.

을미사변이라 사실상 경복궁에 감금상태였던 고종은 자신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었고 동학농민봉기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들어온 일본군은 궁궐을 에워싸는 등 그들의 침략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관파천과 러시아의 개입은 갑오개혁을 주도하던 친일내각을 붕괴시키고, 정국의 반전을 이루게 되고, 고종은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친일내각을 경질하고 러시아 니콜라이2세 대관식에 민영환과 윤치호를 특사로 보내 러시아 군사고문과 러시아 병력지원을 요청합니다.

러시아 외무성은 한반도에서 이익이 서로 부딪치는 일본과 무력충돌을 피하려 했지만 일본이 조선을 그대로 점령하게 놔둘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외교 기조를 이어갑니다.

고종의 러시아 병력 요청도 일본군과의 충돌을 우려하여 베베르의 오랜 요청 끝에 성사됩니다.

하지만 1890년대 후반 러시아는 조선보다 만주와 연해주에 더 많은 외교적 관심을 가지게 되고 조선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됩니다.

베베르가 일본의 영향력 강화에 맞서는 러시아의 외교정책 전환을 촉구했지만 러시아 외무성은 조선에서의 일본의 이익우위를 인정하면서 대조선정책을 소극적으로 일관합니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일본과 다시 맞붙을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걸 1890년대 말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와 일본은 1880년대 청의 대조선 간섭이 강화되어 조선을 속국처럼 대할 당시는 모두 청국에 대항하여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었고 청일전쟁(1894-1895)를 치룬 이후에도 일본은 유럽 열강 중 하나인 러시아를 매우 버거워 했습니다

하지만 청이 조선에서 물러나자 러시아와 조선은 대조선 정책을 두고 러시아와 맞서지만 일본은 러시아를 상대하면서 교묘하게 러시아를 회피합니다.

일본에게 러시아를 비롯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서울주재 서구 외교관들의 존재는 관리를 해야만 하는 걸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전반적인 책 내용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위애서 언급한 구한말의 정치적 격변은 각각의 사건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존재합니다.

러시아 사료를 중심으로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조명한 책으로는

김영수 교수의 ‘미쩰의 시기(눈보라의 시기) :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경인문화사,2012)’를 보시기 바랍니다.

민영환의 러시아 니콜라이2세 대관식 참석에 관한 김영수 교수의 책도 유익합니다.
미국을 통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러시아 차르를 알현하고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연해주를 거쳐 인천에 다다르는 사행길을 다룹니다.

100년전의 세계일주: 대한제국의 운명을 건 민영환의 비밀외교 (EBS Books,2020)

흔히 긍정적으로 해석되던 친일 개화파의 갑오개혁과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이어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연구서도 있습니다. 책분량이 상당해 그냥 참고로 소개합니다.

동국대 황태연 교수의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청계,2017)’입이다.
갑오개혁은 친일파들이 일본을 등에 없고 사실상 조선의 주권을 침해하는 또 하나의 왜란이라면 측면에서 접근한 해석으로 사실상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에서 조선을 침략했던 규슈의 삿쵸동맹(薩長同盟)의 후예들이 300여년아 지난 후 친일파 앞잡이들은 내세워 다시 난을 일으켰다는 관점으로 갑오 개혁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이어는 사실상 고종의 러시아망명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해석입니다.

해외로의 망명이 여의치 않으니 일본이 접근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인 러시아공사관으로 망명을 해서 의병들의 봉기를 지휘했다는 지점을 설명합니다.

다음으로 망국의 군주로 기억되던 고종을 근대적 군주로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책이 아마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고종시대의 재조명(태학사,2000)’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종의 우유부단한 이미지는 서양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의 조선애 관한 개괄적 역사서애서 비롯된 면이 크고 일제가 의도적으로 고종의 능력을 폄하해 유약한 군주로 만들어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고종은 재위 40년이 넘었던 통치자로 오랫동안 통치한 18세기의 영조만큼 오래 재위한 임금이기도 하고 스스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입장에서 조선을 개화로 이끈 군주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구한말은 조선의 마지막 시기이기도 하지만 조선에 처음 서양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시기이기도 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시기입니다.
일제의 흔적이 남기전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에 아직 유교적 사고방식을 지닌 상태이지만 변화하는 환경과 정세에 이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19세기를 휩쓸었던 민란이 일어난 원인이 정조 사후 발생한 세도정치라는 점에서 이들이 역사에 끼친 악영향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세기 100여년간 그 이전에 확립되었던 조선의 정치제도가 무너져내린 겁니다.


이들이 모든 걸 망가뜨려놓아 고종은 재위기간 내내 군대를 양성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된 군대가 전혀없고 국가자체 재정도 부족하니 청나라와 러시아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청나라에게 병자호란 (丙子胡亂,1636)에서 패하고 국왕이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의 예를 지내고 심양으로 왕세자도 인질로 보내고 백성들도 인질로 보냈는데도 도대체어떻게 했길래 250여년 만에 군대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저는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집권층인 양반사대부들에게 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 안하고 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무신을 천대하고 돈버는 상업활동을 천대해서 화을 자초한 것입니다.

같은 양반인데도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차별하고 문과급제의 기회를 주지 않던 나라였습니다.

19세기초를 흔들었던 ‘홍경래의 난(1811-1812)’이 평안도에서 지역 지배층의 불만으로 일어났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김선주,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난 (푸른역사, 2020)

경상도와 충청도 그리고 서울과 경기지방 출신 양반들이 국정을 좌지우지 한거죠.

19세기에도 기원전 7세기 쯤의 고대 중국 문헌 이야기만 하고 있었으니 상황이 황당하고 할 수밖에 달리 생각을 못하겠습니다.

제가 조선후기시대에 관해 읽어본 책들을 보면 결국 이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